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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것이 '무엇인가'를 아무리 완벽하게 알아도, 그것이 '실제로 있는가'는 거기서 저절로 따라 나오지 않아요. 이븐 시나는 무엇임(본질)과 있음(존재)을 둘로 갈라놓고, 있음은 반드시 바깥에서 더해져야 한다고 봤어요.
머릿속에 유니콘을 한 마리 떠올려 보세요.
이마에 뿔이 하나 있고, 하얀 말의 몸을 가졌고, 다리는 네 개예요.
이렇게 유니콘이 '무엇인지'는 아주 자세히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설명을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유니콘이 진짜로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니죠.
여기서 딱 두 가지가 갈라져요.
'무엇인가'와 '있는가'예요.
이 둘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나눈 사람이 이븐 시나(라틴명 아비센나, 약 980년~1037년)예요.
『의학전범』을 써서 동서양 의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 학자로 유명하지만, 그는 의사이기 전에 형이상학을 깊이 파고든 철학자였어요.
그가 나눈 두 가지를 원어로 이렇게 불러요.
무엇임은 본질(마히야, māhiya), 있음은 존재(우주드, wujūd)예요.
이 글은 바로 이 둘의 '구분'만 좁게 들여다봐요.
생각해 보면 신기해요.
우리는 어떤 것의 뜻을 다 알면서도 그게 있는지 없는지는 따로 물어봐야 하거든요.
'삼각형은 변이 세 개다'라는 말은 삼각형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만, 지금 내 눈앞에 삼각형이 그려져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아요.
이븐 시나는 여기서 결론을 하나 끌어냈어요.
만약 '있음'이 '무엇임' 안에 이미 들어 있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정의하는 순간 그것이 저절로 생겨나야 해요.
유니콘을 설명하기만 하면 유니콘이 튀어나와야 하죠.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요.
그러니까 있음은 본질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누군가 '넣어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가 이 '넣어 주는 힘'을 부른 이름이 동력인(efficient cause)이에요.
어떤 것의 본질에 존재를 부여하는 원인이라는 뜻이에요.
두 개념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한눈에 보여요.
| 구분 | 본질(마히야) | 존재(우주드) |
|---|---|---|
| 묻는 것 | 그것은 무엇인가 | 그것이 있는가 |
| 예 | '말에 뿔 달린 것' | 실제로 눈앞에 있음 |
| 알 수 있는 방법 | 설명·정의로 | 따로 확인해야 |
| 서로의 관계 | 있어도 존재가 안 따라옴 | 바깥에서 더해져야 함 |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하면 쉬워요.
설계도에는 방이 몇 개인지, 창문이 어디 있는지가 다 그려져 있어요.
이게 본질이에요.
그런데 설계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벽돌이 쌓이고 지붕이 올라가기 전까지 집은 '없어요'.
도면이 실제 건물이 되려면 벽돌을 나르고 쌓는 일손, 곧 바깥의 힘이 필요하죠.
그 힘이 이븐 시나가 말한 동력인의 자리예요.
이 지점에서 이븐 시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요.
세상 거의 모든 것은 본질과 존재가 이렇게 따로 놀아요.
나도, 나무도, 별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라 누군가 존재를 넣어 줘야 있게 돼요.
그런데 만약 본질 자체가 곧 존재인 것, 그래서 바깥의 힘 없이도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어떨까요.
이븐 시나는 그것을 필연적 존재(Wājib al-Wujūd)라고 불렀어요.
다만 그 이야기는 이 구분에서 뻗어 나온 다른 주제라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짚어 둘게요.
천 년 전 이야기 같지만, 이 구분은 지금도 우리 머릿속에서 매일 작동해요.
우리는 어떤 계획을 아주 자세히 짜 놓고는 '다 됐다'고 착각하곤 하죠.
하지만 설계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그것이 저절로 현실이 되지는 않아요.
무엇인지 아는 일과 그것을 실제로 있게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단계예요.
이븐 시나는 이 단순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사실을 철학의 언어로 또렷이 세워 놓았어요.
이븐 시나의 존재와 본질 구분은 딱 한 문장으로 기억하면 돼요.
'무엇인가'와 '있는가'는 다르다.
어떤 것의 본질(마히야)을 완벽히 알아도 그것의 존재(우주드)는 저절로 따라오지 않고, 반드시 바깥의 동력인이 존재를 더해 줘야 있게 돼요.
유니콘 설명이 유니콘을 만들지 못하고, 설계도가 저절로 집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이 작은 구분 하나가 훗날 서양 철학이 존재를 생각하는 큰 틀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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