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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찬드라키르티는 공(空)을 증명할 때 자기 주장을 따로 세우지 않았어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받아, 그 말대로라면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는 걸 보여 무너뜨렸지요. 이게 귀류논증이고, 반대로 자기 논리를 세워 적극 증명하자는 쪽이 자립논증이에요.
친구가 "세상 모든 고양이는 검은색이야"라고 우긴다고 해봐요.
두 가지로 반박할 수 있어요.
하나는 "아니야, 고양이는 원래 여러 색이야"라며 내 주장을 새로 세우는 방법.
다른 하나는 "네 말대로면 저기 흰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라는 거네? 그건 이상하잖아"라며 친구의 말만 가지고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방법이에요.
앞엣것이 자립논증(自立論證, 산스크리트로 svatantra), 뒤엣것이 귀류논증(歸謬論證, prāsaṅga)이에요.
찬드라키르티(月稱, 이름은 '달의 영광'이라는 뜻)는 600년쯤 인도 날란다 사원에서 활동한 중관학파 스님인데, 공을 설명할 때 오직 뒤의 방법만 써야 한다고 못 박았어요.
자기 논리를 세우지 않고 상대의 모순만 짚는 거예요.
같은 중관학파 안에서도 바비베카(Bhāviveka)라는 학자는 생각이 달랐어요.
그는 "모든 것은 공하다"는 걸 제대로 된 삼단논법(정언적 논증, prayoga)으로 딱딱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했어요.
즉 자립논증으로 우리 입장을 적극 세우자는 거였죠.
찬드라키르티는 여기에 반대했어요.
내 논리를 세워 무언가를 '이건 이렇다'라고 증명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대상에 자성(自性, svabhāva)을 슬쩍 인정하게 된다고 봤거든요.
자성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고정된 본성'이에요.
그런데 공사상은 바로 그 자성이 없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니 자성 없음을 말하려는 사람이 자성을 전제로 깔린 논증을 쓰면 앞뒤가 안 맞는 거예요.
찬드라키르티는 이 점에서 특히 엄격했어요.
그는 눈에 보이는 세속의 차원에서조차 자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기 손으로 못을 박는 자립논증 대신, 상대의 전제를 빌려와 스스로 넘어지게 하는 귀류논증만 붙들었지요.
그는 붓다팔리타(佛護)의 이런 방식을 이어받아 옹호했고, 중국 쪽 기록은 그를 귀류논증법(歸謬論證法)으로 상대를 논파한 '수응파(隨應破)'의 시조로 불러요.
두 방법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구분 | 자립논증 (바비베카) | 귀류논증 (찬드라키르티) |
|---|---|---|
| 내 주장 | 스스로 세워 적극 증명 | 따로 세우지 않음 |
| 하는 일 | 논리로 공을 입증 | 상대 전제의 모순을 드러냄 |
| 위험 | 자성을 몰래 전제할 수 있음 | 그 위험을 피함 |
| 비유 | "고양이는 여러 색이야" 증명 | "네 말대로면 이상해져" 지적 |
핵심은 이거예요.
자립논증은 내가 링 위에 올라가 상대와 똑같이 주먹을 휘둘러요.
귀류논증은 링에 오르지 않고, 상대의 발이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걸 보여주기만 해요.
찬드라키르티는 공을 다루는 사람은 링에 오르지 않는 편이 오히려 옳다고 본 거예요.
이 방법을 뒷받침하는 유명한 말이 있어요.
"나에게는 주장이 없다"예요.
사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찬드라키르티가 아니라, 중관학파의 시조 격인 나가르주나(龍樹)예요.
《회쟁론(Vigrahavyāvartanī)》에 나오죠.
찬드라키르티는 이 말을 가져와 자기 귀류논증의 근거로 삼았어요.
왜 주장이 없다고 할까요?
세울 주장이 있으면 그 주장이 자성을 붙잡게 되니까요.
논쟁에서 이기려고 새 깃발을 꽂는 게 아니라, 상대가 꽂은 깃발이 스스로 쓰러지는 걸 보여줄 뿐이라는 뜻이에요.
한 가지 짚을 게 있어요.
흔히 찬드라키르티를 '쁘라상기카(Prāsaṅgika, 귀류논증파)'라는 학파를 세운 창시자로 알지만, 이 분류 이름 자체는 그가 죽고 한참 뒤인 12세기 티베트에서 붙은 거예요.
그가 살아서 스스로 그 간판을 내걸었던 건 아니에요.
그의 방법이 워낙 뚜렷해서 후대가 이름을 지어 붙인 셈이지요.
찬드라키르티의 귀류논증은 '내 답을 내밀지 않고 상대의 답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논쟁법이에요.
반대편 바비베카의 자립논증이 내 논리로 공을 증명하려 했다면, 찬드라키르티는 그렇게 하면 없애려던 자성을 도로 끌어들인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오직 상대의 모순만 짚었고, '나에게는 주장이 없다'는 나가르주나의 말을 방패로 삼았지요.
검은 고양이 우기는 친구 앞에서, 새 주장을 세우는 대신 그 말이 왜 이상해지는지만 보여주는 태도.
그게 찬드라키르티가 공을 지킨 방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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