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증분(自證分)은 무언가를 아는 바로 그 순간, 마음이 '내가 지금 알고 있구나' 하는 사실까지 스스로 함께 안다는 뜻이에요. 대상을 비추는 앎과, 그 앎을 스스로 아는 앎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한 번에 일어난다는 이야기죠.
빨간 사과를 하나 본다고 해볼게요.
이때 여러분 마음속에는 '빨갛다'는 앎이 생겨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 사과를 보고 있네' 하는 것도 알아요.
누가 옆에서 알려주지 않았는데도요.
이 두 번째 앎,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마음'을 디그나가는 자증분이라고 불렀어요.
디그나가는 5세기 무렵 인도에서 불교 인식론과 논리학의 체계를 처음 세운 철학자예요.
그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어요.
마음은 바깥 사물만 아는 걸까, 아니면 아는 그 순간 자기 자신도 아는 걸까?
그의 답은 뒤쪽이었어요.
마음은 대상을 아는 동시에, 그 앎 자체를 스스로 비춘다는 거예요.
카메라를 떠올려 보면 차이가 뚜렷해요.
카메라는 앞에 있는 풍경은 찍지만 자기 자신은 절대 못 찍어요.
자기를 찍으려면 또 다른 카메라가 있어야 하죠.
그런데 마음은 달라요.
대상을 찍으면서 '찍고 있는 자기'까지 한 장에 담아요.
이 자기 비춤이 바로 자증분이에요.
디그나가에게 가장 밑바닥의 앎, 즉 감각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지각은 매우 사적인 것이었어요.
내가 느낀 초록빛 한 조각, 손끝의 단단함 같은 감각은 말로 옮기기도 어렵고, 오직 나만 겪을 수 있어요.
그는 이런 감각 자체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 가장 순수한 경험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여기서 곤란한 문제가 생겨요.
그 감각이 정말 나에게 일어났다는 걸 누가 확인해 줄까요?
만약 '내가 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매번 또 다른 마음이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면, 그 마음을 아는 또 다른 마음이 필요하고, 그렇게 끝없이 이어져 버려요.
이 무한한 되풀이를 끊으려면, 앎이 스스로 자기를 아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자증분은 논리적으로도 꼭 있어야 하는 자리였어요.
디그나가는 한 번의 앎을 세 부분으로 나눠 설명했어요.
이걸 삼분설(三分說)이라고 해요.
마음이 세 개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앎이 세 얼굴을 함께 가진다는 뜻이에요.
| 이름 | 하는 일 | 사과를 볼 때 |
|---|---|---|
| 상분(相分) | 마음에 비친 대상의 모습 | 빨갛고 둥근 사과의 상 |
| 견분(見分) | 그 모습을 보는 쪽 | 사과를 바라보는 작용 |
| 자증분(自證分) | 보고 있음을 스스로 아는 쪽 | '내가 보고 있다'는 앎 |
상분이 그림이라면 견분은 그림을 보는 눈이고, 자증분은 '내가 지금 보고 있구나' 하고 그 봄 전체를 알아채는 자리예요.
이 셋은 순서대로 하나씩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한 번의 앎 안에서 동시에 맞물려 있어요.
가장 편한 그림은 등불이에요.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면 방 안 물건들이 환하게 보이죠.
그런데 등불은 물건만 비추는 게 아니에요.
자기 몸도 같이 밝혀요.
등불을 보겠다고 또 다른 등불을 켤 필요가 없잖아요.
마음도 그래요.
대상을 비추는 그 빛이, 비추고 있는 자기까지 함께 밝혀요.
대상을 아는 견분과 그것을 아는 자증분이 서로 다른 두 번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의 밝힘이 안팎을 동시에 비추는 거예요.
디그나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앎에는 이렇게 자기를 스스로 아는 성질이 처음부터 들어 있다는 점이었어요.
요즘 우리가 자주 쓰는 '메타인지'라는 말이 있어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아는 힘이죠.
자증분은 그 뿌리에 있는 더 근본적인 이야기예요.
공부할 때뿐 아니라, 화가 났을 때 '아, 내가 지금 화났구나' 하고 알아채는 그 순간에도 마음은 자기를 비추고 있어요.
디그나가는 이 자기 비춤이 특별한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무언가를 아는 모든 순간에 이미 함께 일어난다고 봤어요.
그래서 자증분은 우리가 매 순간 겪으면서도 잘 눈치채지 못했던, 마음의 가장 조용한 작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증분은 대상을 아는 그 순간 마음이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 스스로 아는 자기 비춤이에요.
디그나가는 하나의 앎을 상분·견분·자증분 셋으로 나눠, 대상의 모습과 그것을 보는 쪽과 봄을 아는 쪽이 한 번에 맞물린다고 설명했어요.
등불이 방과 자기를 함께 밝히듯, 마음은 바깥을 비추며 자기도 비춰요.
오늘 무언가를 알아챌 때, 그 앎 안에 이미 나를 아는 마음이 함께 있다는 것, 그게 디그나가가 남긴 조용한 통찰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