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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우리가 아는 어떤 사물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이름 붙인 '지(指)' 없이는 우리 앞에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세상에 '가리켜진 것'이 아닌 사물은 하나도 없다는 게 지물론의 핵심 문장 '物莫非指(물막비지)'예요.
공손룡(公孫龍)은 기원전 320년쯤부터 250년쯤까지 살았던 전국시대 조나라 철학자로, '이름(名)과 실재(實)'를 따지던 명가(名家) 사람이에요.
그가 남긴 《공손룡자》 6편 가운데 세 번째 글이 바로 지물론(指物論)이에요.
지물론이 던지는 문장은 딱 한 줄이에요.
物莫非指(물막비지) — "어떤 사물도 가리켜진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쉽게 풀어 볼게요.
여러분이 지금 눈앞의 사과를 떠올려 보세요.
그 사과는 '빨갛다', '둥글다', '달다' 같은 성질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데 이 '빨감', '둥긂'은 모두 우리가 골라내서 가리킨(指) 것들이에요.
성질을 하나도 가리키지 않고 사과 그 자체만 딱 붙잡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만나는 사과는 이미 '가리켜진 것들의 묶음'인 셈이에요.
여기서 두 글자가 열쇠예요.
하나씩 풀어 볼게요.
'지(指)'는 원래 손가락, 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을 뜻해요.
공손룡은 이걸 넓혀서, 우리가 사물을 '이것은 빨갛다', '저것은 무겁다'라고 콕 집어 가리키는 개념이나 지칭으로 썼어요.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골라내 붙이는 딱지에 가까워요.
'물(物)'은 우리 눈앞에 실제로 있는 구체적인 사물이에요.
사과, 돌멩이, 말 같은 것들이죠.
정리하면 이래요.
| 글자 | 뜻 | 비유 |
|---|---|---|
| 물(物) | 눈앞의 실제 사물 | 진열대 위의 물건 |
| 지(指) | 골라내 가리킨 성질·개념 | 물건에 붙인 이름표 |
물막비지는 이 둘의 관계를 말해요.
우리는 이름표(指) 없이 물건(物) 그 자체를 알 방법이 없어요.
식당에 갔을 때 우리가 실제로 고르는 건 주방의 접시가 아니라 메뉴판의 '이름'이잖아요.
그 이름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을 먹을지 가리킬 수조차 없죠.
사물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공손룡은 말장난을 하려던 게 아니라, '正名實而化天下(정명실이화천하)', 곧 '이름과 실재를 바로잡아 천하를 교화한다'는 큰 목표를 갖고 있었어요.
이름(개념)을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고 본 거죠.
그래서 그는 물었어요.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아는 걸까, 아니면 늘 개념이라는 필터를 끼고 보는 걸까?"
지물론의 대답은 뒤쪽이에요.
우리 앞에 오는 세상은 언제나 '가리켜진' 상태로, 즉 개념을 통과한 채로 온다는 거예요.
이 생각은 그의 다른 글인 백마비마(白馬非馬)나 견백론(堅白論)과도 이어지지만, 그 논의들은 또 다른 이야기라 여기서는 이름만 스칠게요.
지물론은 그중에서도 '개념과 사물의 관계' 자체를 정면으로 다룬 글이에요.
당시 사람들 반응은 싸늘했어요.
《장자》 천하편은 공손룡을 두고 "能勝人之口,不能服人之心(능승인지구 불능복인지심)", 곧 "남의 입은 이길 수 있어도 남의 마음은 복종시키지 못한다"고 평했어요.
순자도 "이름 쓰기에 미혹되어 실재를 어지럽힌다(此惑於用名以亂實者也)"며 궤변으로 봤고요.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다르게 봐요.
주창충(周昌忠)은 공손룡이 '언어 자체에 관한 풍부한 이론'을 세웠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못지않다고 평했어요.
우리가 세상을 언어와 개념 없이는 붙잡지 못한다는 지물론의 물음은, 지금 봐도 꽤 묵직한 철학 문제거든요.
다만 지금 전하는 《공손룡자》가 선진시대 원본 그대로인지는 송나라 이후로 의심이 있어서, 세부 해석에는 조심할 부분이 있어요.
지물론의 한 문장은 物莫非指, "어떤 사물도 가리켜진 것이 아닌 것이 없다"예요.
우리는 성질을 골라내 가리키는 '지(指)' 없이는 사물(物) 그 자체를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세상은 늘 개념을 통과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죠.
사과를 '빨갛고 둥근 것'으로만 붙잡듯이요.
궤변이라는 옛 평가와 언어철학의 선구라는 새 평가 사이에서, 지물론은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라는 오래된 물음을 2300년쯤 전에 먼저 던진 글로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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