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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견백론은 단단하고 흰 돌 하나를 앞에 두고, 눈은 '희다'만 잡고 손은 '단단하다'만 잡으니 두 성질이 한 번에 함께 붙잡히지 않는다고 본 논리입니다. 그래서 굳음(堅)과 흼(白)은 한 돌 안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다(離堅白)고 말합니다.
여기 단단하고 흰 돌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단단하고 흰 돌"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공손룡은 여기에 딴지를 겁니다.
"단단함과 흼, 이 둘이 정말 한 자리에 같이 붙어 있는 게 맞나요?"
공손룡은 기원전 320년쯤부터 250년쯤까지 살았던 전국시대 사람으로, 이름을 따지는 학파인 명가(名家)에 속한 철학자예요.
그가 남긴 논변 가운데 하나가 견백론(堅白論)이고, 그 핵심 주장이 離堅白(리견백), 곧 "굳음(堅)과 흼(白)을 떼어 놓는다"는 것이었어요.
하나의 돌 안에 굳음과 흼이 사이좋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죠.
처음 들으면 "무슨 소리야, 눈앞에 단단하고 흰 돌이 딱 있는데?" 싶을 거예요.
그 자연스러운 반응이 바로 공손룡이 흔들어 보고 싶었던 지점이에요.
왜 그렇게 볼까요?
공손룡의 이야기를 오늘의 말로 풀어 볼게요.
먼저 돌을 눈으로 봅니다.
그러면 "희다"는 건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눈으로는 그 돌이 단단한지 물렁한지 알 수 없죠.
색만 보일 뿐이에요.
이번엔 눈을 감고 손으로 만져 봅니다.
"단단하다"는 건 손끝으로 느껴져요.
그런데 손으로는 그게 흰지 검은지 알 수가 없어요.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 무엇으로 | 잡히는 성질 | 잡히지 않는 성질 |
|---|---|---|
| 눈으로 볼 때 | 흼(白) | 굳음(堅) |
| 손으로 만질 때 | 굳음(堅) | 흼(白) |
흼은 눈이 잡고, 굳음은 손이 잡습니다.
두 성질을 한꺼번에 붙잡는 감각은 어디에도 없어요.
눈이 일할 땐 굳음이 숨고, 손이 일할 땐 흼이 숨죠.
마치 한 무대에 배우 둘이 서 있는데, 조명이 한 명을 비추면 다른 한 명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공손룡은 굳음과 흼이 늘 함께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다고 말한 거예요.
일상에서도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어요.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을 볼 때 우리는 '차갑겠다'고 짐작하지만, 그 차가움은 눈이 본 게 아니라 예전에 만져 본 기억이 슬쩍 끼어든 거예요.
눈이 실제로 잡은 건 투명하고 반짝이는 색뿐이죠.
굳음과 흼도 이렇게 서로 다른 통로로 들어오는데, 우리는 머릿속에서 얼른 하나로 합쳐 "단단하고 흰 돌"이라 부른다는 겁니다.
그냥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공손룡이 노린 건 다른 데 있었어요.
그는 이름(名)과 실제(實)를 정확히 맞추는 문제에 관심이 컸거든요.
명가가 내건 목표가 正名實而化天下, 곧 "이름과 실재를 바로잡아 천하를 교화한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단단하고 흰 돌"이라는 한 덩어리 이름을 쓰지만, 그 이름 안에는 사실 서로 다른 감각이 잡은 서로 다른 성질이 뒤섞여 있어요.
공손룡은 이걸 하나하나 뜯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뭉뚱그려 말하는지 드러난다고 본 거예요.
이름 하나에 여러 개가 몰래 숨어 있다는 걸 보여 준 셈이죠.
그가 남긴 《공손룡자(公孫龍子)》에서 견백론은 사물과 그 속성의 관계를 다루는 대목으로 전해집니다.
이건 그의 다른 논변인 백마비마(白馬非馬)와도 결이 통해요.
거기선 '흰 말'과 '말'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나눴다면, 견백론에서는 한 사물이 가진 성질들을 나눈 거예요.
방향은 달라도 관심은 같아요.
우리가 무심코 붙여 놓은 이름과 실제 사이에 얼마나 틈이 있는지 파고드는 것이죠.
옛날 사람들도 이 주장을 두고 평가가 갈렸어요.
많은 학자는 공손룡을 궤변(詭辯)의 대표로 여겼죠.
장자(莊子) 계열의 기록은 그를 두고 飾人之心,易人之意,能勝人之口,不能服人之心, 곧 "사람의 마음을 꾸미고 뜻을 바꾸어, 남의 입은 이길 수 있어도 남의 마음은 복종시키지 못한다"고 꼬집었어요.
재미있는 건 순자(荀子)의 태도예요.
《순자·불구편》은 군자가 견백리(堅白離) 같은 논변을 반박하지 못해서 상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런 말다툼이 예(禮)에 맞지 않아 아예 다투지 않는 거라고 했어요.
뒤집어 보면, 논리로 딱 잘라 이기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래서 오늘날엔 견백론을 단순한 말장난으로만 보지 않는 사람도 많아요.
감각과 성질, 이름과 실제의 관계를 아주 날카롭게 파고든 초기 논리학이라는 거죠.
같은 돌을 두고 "당연히 단단하고 흰 하나의 돌"이라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잠깐, 그 둘은 어떻게 같이 있지?"라고 멈춰 물은 겁니다.
답이 시원하게 떨어지지 않아도, 이렇게 멈춰 묻는 태도 자체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연습이 돼요.
견백론의 핵심은 하나예요.
단단하고 흰 돌에서 굳음은 손이, 흼은 눈이 따로 잡으니 두 성질은 한 번에 붙잡히지 않고, 그래서 서로 떨어져 있다(離堅白)는 거예요.
공손룡은 이 작은 돌 하나로, 우리가 이름 하나에 여러 성질을 얼마나 쉽게 뭉뚱그리는지 보여 주려 했어요.
말장난이라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한 걸음 멈춰 "이름과 실제가 정말 딱 맞나?"를 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견백론은 이천 년도 더 된 논리 연습으로 지금 읽어도 머리를 시원하게 두드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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