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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흰 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는 흰 말이 진짜 말이 아니라는 억지가 아니에요. '흰 말'이라는 이름과 '말'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말이죠. '말'은 생김새만 따지지만 '흰 말'은 색깔까지 따지니, 두 이름은 딱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친구에게 "말 좀 데려와"라고 했을 때와 "흰 말 좀 데려와"라고 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앞의 부탁은 검은 말이든 갈색 말이든 다 괜찮아요.
하지만 뒤의 부탁은 검은 말을 데려오면 "그건 아니지"라는 말을 듣게 돼요.
두 부탁이 받아들이는 대상이 서로 다르죠.
공손룡이 말한 白馬非馬, 곧 "흰 말은 말이 아니다"는 바로 이 차이를 파고든 주장이에요.
공손룡(公孫龍)은 기원전 320년쯤부터 250년쯤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국시대 철학자예요.
이름과 실재의 관계를 따지는 학파인 명가(名家)에 속했고, "正名實而化天下", 곧 이름과 실재를 바로잡아 천하를 교화하겠다는 뜻을 품고 이 주장을 폈다고 해요.
여기서 꼭 짚을 게 있어요.
그는 흰 말을 진짜 말이 아니라고 우긴 게 아니라, '흰 말'과 '말'이라는 두 이름이 가리키는 범위가 다르다는 걸 보이려 했다는 점이에요.
'말'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네발 달리고 갈기 있는 그 생김새를 가리켜요.
색깔은 상관없죠.
반면 '흰 말'은 그 생김새에 '희다'는 색까지 더해서 가리켜요.
요구하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 거예요.
조건이 다르니 담기는 대상도 달라져요.
| 이름 | 요구하는 조건 | 받아들이는 대상 |
|---|---|---|
| 말 | 말의 생김새 | 흰 말, 검은 말, 갈색 말 모두 |
| 흰 말 | 말의 생김새에 흰색까지 | 흰 말만 |
"말을 주세요" 하면 노란 말도 검은 말도 되지만, "흰 말을 주세요" 하면 노란 말과 검은 말은 안 돼요.
받아들이는 범위가 이렇게 다르니 두 이름은 딱 겹치지 않아요.
공손룡은 이 '겹치지 않음'을 두고 白馬非馬, 즉 "흰 말이라는 이름은 말이라는 이름과 같지 않다"라고 못박은 거예요.
핵심은 부정하는 글자 '非'(아니다)를 어떻게 읽느냐예요.
우리는 보통 "흰 말은 말이 아니다"를 "흰 말은 말이라는 무리에 안 든다"로 들어서 황당하다고 느껴요.
하지만 공손룡은 '非'를 "흰 말이라는 이름과 말이라는 이름은 똑같지 않다"로 썼어요.
같은 '非' 한 글자가 '무리에 안 든다'와 '똑같지 않다'라는 두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 바로 그 틈을 이용한 거죠.
이 주장은 나오자마자 말이 많았어요.
순자(荀子)는 "此惑於用名以亂實者也", 곧 이름 쓰기에 미혹되어 실재를 어지럽히는 짓이라고 깎아내렸어요.
장자(莊子) 쪽 기록은 "能勝人之口,不能服人之心", 남의 입은 이겨도 마음은 복종시키지 못한다고 평했고요.
제자백가 대부분은 공손룡을 궤변(詭辯)의 대표로 여겼어요.
다만 재밌게도, 말로 그를 이긴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해요.
현대 학자들의 평가는 갈려요.
A.C. 그레이엄 같은 연구자는 이걸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무리(집합)'와 '같음(동일성)'을 헷갈리는 지점을 콕 집어낸 진지한 논리라고 봐요.
그레이엄은 반대자는 이 말을 "검은 무기는 무기가 아니다"처럼(당연히 틀린 소리) 듣지만, 공손룡은 "칼은 칼날이 아니다"처럼 부분과 전체가 같지 않다는 구조로 다뤘다고 설명해요.
풍우란(馮友蘭), 채드 핸슨 같은 학자들은 또 다른 해석을 내놓았고요.
정리하면 이 논변은 진지한 논리로 보는 쪽, 익살스러운 궤변으로 보는 쪽, 둘이 섞였다고 보는 쪽이 다 있어요.
성격 자체가 지금도 논쟁거리인 셈이에요.
공손룡의 트집이 시시해 보여도, 이름의 범위를 뭉개면 진짜 문제가 생겨요.
예를 들어 규칙에 "차량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을 때, 자전거는 '차량'에 드나 안 드나를 두고 다툴 수 있어요.
'흰 말'과 '말'의 범위가 다르듯, '차량'이라는 이름이 무엇까지 담는지 정하지 않으면 말싸움이 끝나지 않죠.
그래서 白馬非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이름 하나가 가리키는 범위를 또렷이 따져야 오해가 줄어든다는 교훈으로 읽을 수도 있어요.
공손룡은 2천 년도 더 전에, 우리가 매일 쓰는 '이름'이 생각보다 미끄럽다는 걸 흰 말 한 마리로 보여준 거예요.
白馬非馬는 흰 말이 진짜 말이 아니라는 억지가 아니라, '흰 말'과 '말'이라는 두 이름의 범위가 다르다는 주장이에요.
'말'은 생김새만, '흰 말'은 생김새에 색까지 요구하니 받아들이는 대상이 달라지죠.
이때 핵심은 '非'를 '무리에 안 든다'가 아니라 '똑같지 않다'로 읽는 것이었어요.
이게 궤변이냐 진지한 논리냐는 순자와 장자의 시대부터 오늘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고요.
다음에 누가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고 하면, 억지가 아니라 이름의 범위를 따진 이야기라고 떠올려 보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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