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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천지는 한 몸"이라는 말은 세상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에요. 나와 남, 큰 것과 작은 것을 딱 잘라 나눌 수 없다면 무엇 하나만 편들거나 미워할 까닭도 없으니, 자연히 만물을 두루 아끼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에 혜시(惠施)라는 사상가가 있었어요.
말과 이름을 따지는 학파인 명가(名家)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위(魏)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했지요.
그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열 가지 명제가 있는데, 이걸 '역물십사(歷物十事)'라고 불러요.
오늘 이야기할 범애만물은 그 열 개 중 맨 마지막, 즉 결론에 해당하는 명제예요.
원문은 이렇게 짧아요.
泛爱万物,天地一体也(범애만물, 천지일체야).
풀면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가 돼요.
앞부분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가 우리가 할 일이라면, 뒷부분 "천지는 한 몸이다"가 그 이유예요.
세상 전체가 사실은 하나로 붙어 있는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 안의 모든 것을 아끼는 게 마땅하다는 말이지요.
비유를 하나 들어 볼게요.
지도를 아주 멀리서 보면 나라 경계선이 사라지고 그냥 하나의 땅덩어리로 보여요.
반대로 확대경을 들이대면 마당의 개미 한 마리도 커다란 세계처럼 보이고요.
'크다'와 '작다', '여기'와 '저기'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상대적인 말이에요.
혜시는 바로 이런 상대성을 파고든 사람이에요.
앞선 아홉 개 명제에서 그는 하늘과 땅, 큰 것과 작은 것, 어제와 오늘 같은 경계들이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걸 하나씩 흔들어요.
그렇게 온갖 구분을 다 흔들고 나면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까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하나, 곧 "천지는 한 몸"이라는 결론이 남아요.
범애만물은 이 흔들기의 종착지예요.
세상을 잘게 나누던 칸막이를 다 치우자 만물이 한 몸으로 드러난 거지요.
다만 혜시가 이 결론을 어떤 순서로 증명했는지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역물십사는 증명 과정 없이 결론만 열 줄로 전해지거든요.
게다가 이 명제들은 혜시 자신의 책이 아니라 후대의 《장자(莊子)》 같은 책에 인용된 형태로만 남아 있어요.
그의 책 《혜자(惠子)》는 오래전에 사라졌답니다.
"사랑하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착하게 살자는 도덕 설교를 떠올리기 쉬워요.
그런데 혜시의 범애만물은 감정에서 출발한 게 아니에요.
"천지는 한 몸이다"라는 논리적 판단에서 "그러니 두루 사랑하라"가 따라 나온 거예요.
순서가 반대인 셈이지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내 오른손이 왼손을 미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둘 다 같은 몸의 일부니까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세상 모든 것이 한 몸이라면, 남을 미워하는 건 결국 내 몸의 다른 부분을 미워하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사랑은 특별히 마음먹고 하는 착한 일이 아니라, 세상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면 저절로 따라오는 태도가 돼요.
비슷한 생각은 혜시의 벗 장자에게서도 보여요.
다만 "천지는 나와 함께 태어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라는 유명한 구절은 사실 《장자》 제물론(齊物論)의 표현이고, 후대 사람들이 혜시의 생각과 이어 붙인 것이라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해요.
혜시가 직접 한 말로 오해하기 쉽거든요.
혜시는 원래 비유를 즐겨 쓰는 사람이었어요.
한 왕이 "비유 없이 그냥 말해 보라"고 하자, 혜시는 활과 대나무 줄에 빗대어 설명하면서 "비유가 없으면 모르는 것을 알게 할 수 없다"고 받아쳤다는 일화가 전해져요.
낯선 것을 이미 아는 것에 이어 붙여 설명하는 게 그의 방식이었지요.
그런 그에게 가장 좋은 대화 상대는 장자였어요.
두 사람은 툭하면 서로 반론을 펴며 다퉜지만, 그 다툼을 누구보다 즐긴 사이였어요.
혜시가 세상을 떠난 뒤 장자는 그의 무덤을 지나며 이렇게 탄식했다고 해요.
이제 나는 상대할 사람이 없다,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다고요.
한 학자는 이 탄식을 "서로 다르지만 대등한 지적 동반자를 잃은 슬픔"으로 풀이했어요.
만물이 한 몸이라던 사람이, 자기 몸의 한쪽을 잃은 것처럼 허전해한 셈이지요.
범애만물이 말로만 있는 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우정 속에 살아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범애만물은 혜시가 남긴 열 가지 명제의 마지막 결론이에요.
핵심은 두 가지로 묶을 수 있어요.
첫째, "천지는 한 몸(天地一体)"이라는 판단이 먼저예요.
크다와 작다, 여기와 저기 같은 구분을 끝까지 흔들면 세상은 나눌 수 없는 하나로 드러나요.
둘째, 그 하나 됨을 알면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가 저절로 따라와요.
사랑은 착한 결심이 아니라 세상의 참모습을 안 사람의 자연스러운 태도예요.
세상을 한 몸으로 보면 미워할 남이 애초에 없다는 것, 그게 범애만물이 우리에게 남긴 짧고 단단한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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