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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역물지의(歷物之意)는 '사물을 하나하나 거쳐 헤아린 뜻'이라는 말로, 혜시가 세상 만물을 낱낱이 따져 내놓은 열 가지 명제를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에요. 크다·작다, 같다·다르다 같은 구분이 사실은 보기 나름이라는 걸 드러내려는 생각이었지요.
혜시(惠施)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에 활동한 사상가예요.
말과 이름을 파고든 '명가(名家)'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위(魏)나라에서 재상까지 지낸 정치가이기도 했어요.
이 사람이 남긴 생각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역물지의'예요.
글자를 하나씩 뜯어 볼게요.
歷(력)은 '하나하나 거치며 겪다', 物(물)은 '사물', 之意(지의)는 '~의 뜻'이에요.
그러니까 역물지의는 '세상 사물을 낱낱이 거쳐 헤아려 본 결과 얻은 뜻'이라는 말이에요.
마치 온 집 안 물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꺼내 살펴본 다음, '아, 결국 이렇더라' 하고 내린 결론 같은 거예요.
그 결론이 모두 열 가지라서 '역물십사(歷物十事)', 즉 '사물을 헤아린 열 가지 일'이라고도 불러요.
좀 아쉬운 사실이 있어요.
혜시가 직접 쓴 책 《혜자(惠子)》는 지금 전하지 않아요.
당나라 이전에 사라진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우리는 그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책을 통해서만 알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벗이자 라이벌이었던 장자(莊子)의 책 《장자》 맨 마지막 편인 〈천하(天下)〉가 역물지의를 전해 줘요.
문제는, 여기에 '왜 그런지'를 증명하는 과정은 없고 결론에 해당하는 명제 열 개만 툭 적혀 있다는 점이에요.
답만 있고 풀이는 지워진 시험지 같은 셈이지요.
그래서 후대 학자들은 이 열 문장을 두고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어요.
서양에서 제논이 낸 역설들이 오랫동안 논란을 부른 것과 비슷해요.
역물지의의 알맹이인 열 문장을 표로 모아 볼게요.
원문 한문과 쉬운 풀이를 나란히 두었어요.
| 순서 | 원문 | 쉬운 풀이 |
|---|---|---|
| 1 | 至大无外,謂之大一;至小无内,謂之小一 | 가장 큰 것은 바깥이 없어 '큰 하나', 가장 작은 것은 안이 없어 '작은 하나' |
| 2 | 無厚不可積也,其大千里 | 두께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으나 그 크기는 천 리 |
| 3 | 天與地卑,山與澤平 | 하늘과 땅은 나란하고, 산과 못은 평평하다 |
| 4 | 日方中方睨,物方生方死 | 해는 중천에 뜨며 동시에 기울고, 사물은 태어나며 동시에 죽어간다 |
| 5 | 萬物畢同畢異 | 만물은 반드시 같고 또 반드시 다르다 |
| 6 | 南方無窮而有窮 |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
| 7 | 今日適越而昔來 | 오늘 월나라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 |
| 8 | 連環可解也 | 이어진 고리도 풀 수 있다 |
| 9 | 我知天下之中央,燕之北,越之南也 | 천하의 중앙은 연나라의 북쪽이자 월나라의 남쪽이다 |
| 10 | 汎愛萬物,天地一體也 |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 |
각 명제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깊은 이야기라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룰게요.
여기서는 '이 열 개가 함께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 눈을 두면 돼요.
표를 쭉 보면 하나같이 상식을 뒤집는 말들이지요.
'하늘과 땅이 나란하다'니, '오늘 갔는데 어제 돌아왔다'니 말이에요.
언뜻 말장난 같지만, 관통하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계선이 사실은 고정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아주 높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과 들판이 거의 평평해 보이지요.
'높다'와 '낮다'는 어디서 재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오늘'과 '어제'도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나뉘는 말이고요.
혜시는 이렇게 사물을 하나하나 끝까지 밀어붙여 따지면, 크다·작다, 같다·다르다, 여기·저기 같은 구분이 절대적인 벽이 아님을 보여 주려 했어요.
그리고 그 따짐의 마지막 결론이 열 번째 문장,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예요.
경계가 흐려지면 결국 모든 것이 이어진 하나이니, 세상을 넓게 품자는 이야기로 닫은 셈이에요.
재미있게도 혜시 무리가 즐겨 쓴 역설 중에 '한 자 길이 막대를 매일 절반씩 잘라도 만세(萬世)가 지나도록 다함이 없다'는 것이 있어요.
절반, 그 절반의 절반, 또 그 절반… 계속 반으로 나눌 수 있으니 끝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건 서양에서 제논이 낸 '이분법 역설'과 놀랍도록 닮았어요.
동양과 서양이 서로 모른 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수께끼로 세상의 앞뒤를 흔들어 본 거예요.
다만 조심할 점이 있어요.
열 가지 명제는 증명이 지워진 채 결론만 남아서, 특정 해석을 '이것이 정답'이라고 못 박기는 어려워요.
학자 크리스 프레이저 같은 사람은 '작은 하나(小一)'를 원자가 아니라 기하학의 점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해요.
그러니 역물지의는 답을 외우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곱씹어 보는 열린 질문이라고 여기는 게 좋아요.
역물지의는 혜시가 세상 만물을 하나하나 거쳐 헤아려 내놓은 열 가지 명제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에요.
저작은 사라졌지만 《장자》 〈천하〉편이 그 열 문장을 전해 주고, 거기엔 답만 있고 풀이가 없어 지금도 여러 해석이 오가요.
관통하는 뜻은 하나예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크다·작다, 같다·다르다, 여기·저기의 경계가 실은 보기 나름이라는 거예요.
오늘 이 글에서는 그 큰 그림만 잡아 두고, 각 명제의 속살은 다음 이야기로 남겨 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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