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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합동이(合同異)는 세상 만물이 어떤 기준에서 보면 모두 같고, 다른 기준에서 보면 모두 다르다는 생각이에요. 같음과 다름이 사물 안에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선을 긋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지요.
먼저 딱 한 가지만 짚고 갈게요.
혜시(惠施)는 기원전 370년경에서 310년경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예요.
'이름과 사물의 관계'를 파고든 명가(名家)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장자와 서로 논쟁을 즐기던 친구이기도 했지요.
자, 이제 오늘의 주제로 들어갈게요.
합동이(合同異)는 글자 그대로 '같음(同)과 다름(異)을 합쳐서(合) 본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보통 두 물건을 놓고 '이건 같아, 저건 달라' 하고 딱 잘라 말하잖아요.
그런데 혜시는 그렇게 딱 잘리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사과와 귤을 예로 들어 볼게요.
색도 모양도 다르니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둘 다 '과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도 할 수 있지요.
심지어 둘 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는 점까지 올라가면, 사과와 귤뿐 아니라 돌멩이도 자동차도 다 '같은 것'이 돼요.
같으냐 다르냐는 어느 높이에서 내려다보느냐에 따라 뒤집힌다는 거예요.
혜시가 이 생각을 압축해 남긴 문장이 있어요.
역물십사(歷物十事)라 불리는 열 가지 명제 가운데 다섯 번째예요.
大同而与小同异,此之谓小同异;万物毕同毕异,此之谓大同异.
"큰 같음은 작은 같음과 다르니 이를 소동이(小同異)라 하고, 만물은 반드시 같고 반드시 다르니 이를 대동이(大同異)라 한다"는 뜻이에요.
조금 어렵지요?
표로 나눠 볼게요.
| 구분 | 무슨 뜻일까 | 예로 들면 |
|---|---|---|
| 소동이(小同異) | 좁은 범위에서 같고 다름을 따지는 것 | 사과와 귤은 '과일'로는 같고 종류로는 다름 |
| 대동이(大同異) | 가장 넓게 보면 만물이 다 같고 다 다름 | 세상 모든 것이 '있는 것'으로는 같고 낱낱으로는 다름 |
소동이는 '과일'처럼 어느 정도 가까운 무리 안에서 같고 다름을 따지는 거예요.
반면 대동이는 범위를 끝까지 넓힌 거예요.
만물을 '존재하는 것'이라는 가장 큰 울타리로 묶으면 모두 같아지고, 하나하나 낱개로 뜯어보면 세상에 똑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 모두 달라져요.
그래서 '만물은 반드시 같고 반드시 다르다(万物毕同毕异)'는 말이 나온 거지요.
혜시는 비유를 아주 즐겨 쓴 사람이었어요.
어떤 왕이 비유 없이 말해 보라 하자, 그는 '모르는 것은 아는 것에 빗대야만 알 수 있다'며 끝까지 비유를 놓지 않았다고 해요.
합동이도 결국 '같다·다르다'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뒤흔들어 보는 이야기예요.
우리 반 친구들을 떠올려 볼게요.
'우리 반'으로 묶으면 다 같은 반 친구예요.
그런데 '남자·여자'로 나누면 그 안에서 다시 갈라지고, '키 순서'로 세우면 또 달라져요.
똑같은 친구들인데 어떤 잣대를 대느냐에 따라 같은 편이 됐다가 다른 편이 됐다가 하지요.
혜시가 말하려던 게 바로 이거예요.
같고 다름은 사물에 도장처럼 찍혀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때그때 긋는 선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선을 아주 크게 그으면 온 세상이 한 몸처럼 같아지고, 아주 잘게 그으면 무엇 하나 같은 게 없어져요.
한 가지 조심할 게 있어요.
합동이는 '모든 게 결국 똑같으니 구별은 다 헛것'이라는 허무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같음과 다름이 둘 다 참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거예요.
기준이 넓으면 같고 좁으면 다른데, 어느 쪽도 틀린 게 아니거든요.
또 하나, 혜시의 저작 《혜자(惠子)》는 오래전에 사라져서 지금 전하지 않아요.
그래서 합동이에 관한 이야기도 대부분 《장자》 같은 후대 책에 실린 전언을 통해 짜맞춘 것이고, 위의 다섯 번째 명제 역시 증명 과정 없이 결론만 남아 있어요.
그러니 '혜시가 이렇게 딱 증명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남은 문장을 실마리로 그의 생각을 더듬어 보는 정도로 읽는 게 정확해요.
합동이(合同異)는 같음과 다름이 사물 자체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느 범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혜시의 생각이에요.
좁게 보는 소동이와 끝까지 넓게 보는 대동이로 나뉘고, 가장 넓게 보면 '만물은 반드시 같고 반드시 다르다'로 이어져요.
반 친구를 반·성별·키로 자꾸 다시 묶어 보듯, 기준을 바꾸면 같은 것이 다른 것이 되고 다른 것이 같은 것이 돼요.
오늘 누군가와 '같다·다르다'로 다투게 된다면, 서로 어떤 잣대를 대고 있는지부터 살펴보면 돼요.
혜시가 이천 년도 더 전에 던진 질문인데, 지금도 그대로 통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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