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순자의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날 때 지닌 그대로의 본성은 거칠고 이기적이며, 우리가 아는 착함은 타고난 게 아니라 뒤에 사람이 만들어 붙인 결과라는 주장이에요. 여기서 '악'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태'에 가깝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떠올려 볼까요?
배고프면 울고,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있으면 양보 없이 손을 뻗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태어난 그대로예요.
순자는 이 '태어난 그대로의 상태'를 성(性)이라고 불렀고, 여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어요.
人之性惡,其善者偽也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人爲)다.
풀어 말하면 이래요.
사람은 원래 배고프면 먹고 싶고, 이익이 있으면 갖고 싶고, 힘들면 쉬고 싶은 존재예요.
이 마음을 그냥 두면 서로 뺏고 다투게 되죠.
그러니 착함이라는 건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있던 게 아니라, 뒤에 노력으로 '만들어 붙인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만들어 붙인 것을 순자는 위(偽), 곧 인위라고 불렀어요.
'성악설'이라고 하면 사람 속에 무슨 악마가 들어 있다는 무서운 말처럼 들려요.
그런데 여기가 가장 오해하기 쉬운 지점입니다.
순자가 쓴 악(惡)은 서양에서 말하는 '악마 같은 죄악(evil)'이 아니에요.
원래 뜻은 '추하다, 저열하다,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학자들도 이 글자를 '나쁜(bad)', '거슬리는' 정도로 옮겨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방금 캔 원석이나, 깎지 않은 통나무를 떠올려 보세요.
그 자체가 죄를 지은 건 아니죠.
다만 그대로 두면 쓸모가 거칠고 위험할 수 있어요.
순자가 말한 본성이 딱 그래요.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 아니라, 아직 다듬지 않은 재료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성악설은 '사람은 구제불능'이라는 절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순자는 사람이 완전히 나아질 수 있다고 봤고, 누구나 노력하면 옛 성인인 우(禹)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순자보다 앞선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성선설)'고 했어요.
그래서 흔히 둘을 정반대라고 배우죠.
그런데 진짜 차이는 '성(性)'이라는 같은 낱말을 서로 다른 뜻으로 썼다는 데 있어요.
| 순자 | 맹자 | |
|---|---|---|
| 성(性)의 뜻 |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것 | 도달해야 할 이상적 상태 |
| 착함은? | 뒤에 만들어 붙이는 것 | 원래 씨앗처럼 들어 있는 것 |
맹자에게 성은 '잘 키우면 자라날 착한 씨앗'이에요.
순자에게 성은 '지금 눈앞에 있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고요.
그러니 맹자는 '씨앗을 키우자'고 하고, 순자는 '거친 재료를 다듬자'고 하는 거예요.
실은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기원전 300년쯤 쓰인 궈뎬(郭店) 죽간에도 성을 순자처럼 '타고난 성질'로 풀이한 대목이 나와요.
오히려 맹자 쪽 뜻풀이가 당시엔 좀 특이했을 수도 있다는 거죠.
둘 다 사람이 착해질 수 있다고 믿은 건 똑같아요.
출발점을 다르게 봤을 뿐이에요.
본성이 거친 재료라면, 착함은 저절로 생기지 않겠죠.
순자는 그 답을 네 글자로 눌러 담았어요.
化性起僞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
타고난 거친 성질(性)을 바꿔서, 사람의 노력으로 다듬은 결과(僞)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에요.
통나무를 깎아 반듯한 그릇을 만들듯, 사람도 배우고 익히며 스스로를 다듬어야 비로소 착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순자에게는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밖에서 배우고 몸에 익히는 과정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착함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쌓아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 다듬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예(禮)와 배움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그건 다른 글에서 따로 자세히 풀어 볼게요.
여기서 기억할 건 하나예요.
성악설의 진짜 결론은 '사람은 나쁘다'가 아니라 '그러니 다듬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세 가지로 묶을 수 있어요.
첫째, 사람이 타고난 그대로의 본성은 거칠고 이기적이라 그냥 두면 다툰다는 것.
둘째, 여기서 '악(惡)'은 죄악이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상태'라는 것.
셋째, 그래서 착함은 원래 있던 게 아니라 배우고 애써서 만들어 붙이는 인위(僞)라는 것이에요.
원석을 깎아 보석으로, 통나무를 깎아 그릇으로 만들듯, 사람도 노력으로 자신을 다듬는다는 이야기죠.
성악설을 '인간은 악하다'로 외우면 절반은 틀립니다.
'사람은 다듬어야 착해진다'가 순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