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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포정해우(庖丁解牛)는 소를 잡는 요리사가 뼈와 근육 사이의 빈 틈으로만 칼을 밀어넣어 억지로 자르지 않는 이야기예요. 자연의 결을 그대로 따라가니 오래 써도 칼날이 새것처럼 날이 서 있었고, 장자는 이렇게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긴 솜씨를 기술이 도(道)에 이른 경지로 보았어요.
장자(莊子)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에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도가 사상가예요.
어려운 이치를 곧바로 설명하는 대신 짧은 이야기(우언)로 슬쩍 보여주는 걸 좋아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포정해우(庖丁解牛)', 곧 '포정이 소를 잡다'라는 이야기예요.
포정(庖丁)은 소 잡는 솜씨가 뛰어난 요리사예요.
어느 임금 앞에서 소 한 마리를 해체하는데, 그 모습이 꼭 춤 같았어요.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밟고 무릎으로 누르는 동작 하나하나가 리듬을 탔고, 칼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렸대요.
임금이 감탄하며 "어떻게 솜씨가 이 정도에 이르렀느냐"고 묻자, 포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손끝의 재주보다 한 걸음 앞선 것이지요."
이 한마디가 이야기 전체의 열쇠예요.
포정의 설명이 핵심이에요.
그는 소의 몸에서 뼈와 뼈 사이, 근육과 근육 사이에 원래 나 있는 '틈'을 봐요.
그리고 칼을 그 빈 곳으로만 밀어넣어요.
살을 억지로 가르거나 뼈를 내리치지 않고, 자연히 벌어져 있는 결을 따라 스르르 지나가는 거예요.
비유하면 잘 익은 귤을 까는 것과 비슷해요.
급하게 손톱을 아무 데나 박으면 과육이 터지고 손이 지저분해지지만, 껍질과 알맹이 사이의 결을 찾아 살살 벗기면 깔끔하게 떨어지죠.
나뭇결을 거슬러 톱질하면 힘들지만 결을 따라가면 쑥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치예요.
그래서 포정의 칼은 오래 써도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날이 서 있었어요.
솜씨 없는 사람은 뼈를 자꾸 내리쳐서 칼이 금방 상하지만, 포정은 언제나 빈 틈으로만 다녔으니까요.
여기서 '칼날을 놀릴 여유가 있다'는 뜻의 말이 나왔어요.
넉넉한 공간에서 힘을 빼고 움직이니, 무리도 없고 칼도 다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포정은 이런 말도 덧붙여요.
처음 소를 잡던 시절엔 눈앞에 온통 소 한 마리, 그 덩치 전체만 보였대요.
그런데 오래 익히다 보니 더 이상 소가 '통째로 된 덩어리'로 보이지 않게 됐어요.
어디에 틈이 있고 어디가 막혔는지 몸이 먼저 알아채게 된 거죠.
나중에는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감각으로 소를 대한다고 해요.
눈이 멈춘 자리에서 정신이 움직인다는 말이에요.
이게 장자가 말하는 '기술의 도'예요.
재주가 아주 무르익으면, 더는 '내가 애써서 한다'는 느낌 없이 일이 저절로 굴러가는 순간이 와요.
운전을 처음 배울 땐 핸들과 기어와 거울을 하나씩 의식하지만, 익숙해지면 생각하지 않아도 손발이 알아서 움직이잖아요.
오래 친 연주자가 악보를 따지지 않고도 손가락을 흐르게 두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장자는 이렇게 힘과 자의식이 빠진 자리에 도가 깃든다고 봤어요.
그가 다른 데서 "오직 도는 빈 곳에 모인다(唯道集虛)"고 한 것과도 통하지요.
마음을 비우고 대상의 결에 나를 맞출 때 비로소 막힘없이 통한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이야기의 결론이에요.
솜씨 이야기를 다 들은 임금이 "나는 오늘 삶을 기르는 법(養生)을 배웠다"고 말해요.
소를 해체하는 기술 이야기인데, 정작 임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은 거죠.
포정해우는 단순히 '노력하면 달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에 가까워요.
힘을 더 주는 게 아니라, 대상에 이미 나 있는 결을 읽고 그 흐름에 나를 맞추라는 거예요.
일하다 보면 뼈처럼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사람 사이의 갈등도, 좀처럼 안 풀리는 문제도 그렇죠.
그럴 때 무작정 정면으로 내리치면 나부터 지치고 상해요.
포정처럼 잠시 멈춰 결을 살피고, 억지로 자를 곳이 아니라 자연히 열려 있는 틈을 찾는 태도가 오히려 오래가고 덜 다치는 길일 수 있어요.
장자가 소 잡는 이야기 하나로 '기술'과 '삶'을 나란히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포정해우는 소 잡는 요리사가 뼈와 살 사이의 빈 틈, 곧 자연의 결을 따라 칼을 놀리는 이야기예요.
억지로 자르지 않으니 칼날이 무뎌지지 않았고, 솜씨가 무르익자 눈이 아니라 정신으로 소를 대하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장자는 이렇게 힘과 자의식을 비우고 흐름에 몸을 맡긴 기술을 도(道)라고 불렀어요.
오늘의 우리에게는, 벽에 부딪혔을 때 세게 밀어붙이기보다 결을 읽고 틈을 찾는 편이 더 멀리 간다는 조용한 조언으로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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