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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제물론(齊物論)의 '만물제동(萬物齊同)'은 세상 모든 것이 서로 다르게 보여도 실은 똑같이 소중하고 대등하다는 생각이에요. 크다·작다, 옳다·그르다 하는 구분은 내가 선 자리에서 생긴 것일 뿐, 만물 자체에 붙어 있는 등급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장자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절대적 자유와 만물의 평등을 이야기한 도가 사상가예요.
그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장자》 내편의 둘째 편이 바로 〈제물론〉이고, 그 핵심이 '만물제동' 또는 '만물제일(萬物齊一)'이에요.
'제물(齊物)'에서 '제(齊)'는 '가지런히 한다, 똑같이 본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만물제동은 '온갖 것을 똑같이 놓고 본다'는 뜻이지요.
반 친구 서른 명을 키 순서로 세우면 누군가는 앞, 누군가는 뒤예요.
그런데 이 줄은 '키'라는 잣대를 골랐을 때만 생겨요.
잣대를 발 크기나 목소리로 바꾸면 순서가 통째로 흔들리죠.
장자는 세상의 크다·작다, 아름답다·추하다도 이렇게 우리가 고른 잣대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요.
잣대를 치우면 만물은 다시 나란해져요.
〈제물론〉의 유명한 구절이 이걸 압축해요.
"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為一(천지여아병생 이만물여아위일)" — 천지는 나와 더불어 나란히 생겨나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장자가 특히 파고든 건 '시비(是非)', 곧 옳음과 그름의 다툼이에요.
그의 시대에는 유가는 유가대로, 묵가는 묵가대로 '우리가 옳고 저쪽이 틀렸다'며 끝없이 논쟁했거든요.
장자는 이렇게 물어요.
내가 너를 이기면 내 말이 정말 옳은 걸까?
심판을 데려온들, 너 편을 들면 너대로, 내 편을 들면 나대로, 제3의 말을 하면 또 그 나름의 편일 뿐이에요.
축구 경기에서 두 팀 응원석은 같은 반칙을 놓고도 서로 다르게 소리쳐요.
응원석 안에 있는 한 '완전히 공정한 눈'은 어디에도 없죠.
그래서 장자는 시비의 줄다리기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대신, 그 바깥으로 나가라고 해요.
"得其環中,以應無窮(득기환중 이응무궁)" — 그 고리의 중심(環中)을 얻어 무궁함에 응한다.
문고리의 한가운데처럼 어느 쪽에도 붙지 않는 자리에 서면, 옳다·그르다가 끝없이 돌아가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걸 가장 재미있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장자와 그의 벗이자 라이벌 혜시(惠施)가 호(濠)강 다리 위에서 벌인 논쟁이에요.
다리 아래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보고 장자가 "물고기가 즐겁구나"라고 하자, 혜시가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그 즐거움을 아나?"라고 되받았죠.
여기서 핵심은 '앎(知)'이에요.
나와 다른 존재의 속을 내가 정말 알 수 있을까?
장자의 태도는, 물고기·나비·사람이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세상을 다르게 느낀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요.
사람에게 좋은 잠자리가 물고기에겐 숨 막히는 곳이듯, '누구에게나 똑같이 옳은 하나의 기준'은 쉽게 세울 수 없다는 거죠.
만물제동은 '다 똑같이 취급하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마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두고 어느 하나를 위에 올려 세우지 않는 태도에 가까워요.
그럼 옳고 그름이 아예 없다는 걸까요?
여기서부터는 학자들도 답이 갈려요.
그레이엄(Graham)이 1969년에 〈제물론〉을 다룬 논문을 낸 뒤 서양 철학계도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달려들었는데,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요.
| 읽는 방식 | 뜻 |
|---|---|
| 절대주의 | 시비를 넘어선 자리에 오히려 하나의 깊은 진리가 있다 |
| 허무주의 | 어떤 길도 옳지 않다, 기준 자체가 없다 |
| 다원적 상대주의 | 여러 관점이 저마다 타당하게 공존한다 |
장자 본인이 어느 쪽이었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요.
실은 〈제물론〉을 장자가 직접 썼는지조차 여전히 하나의 가설이고, 회의적인 반론도 있거든요.
그러니 '만물제동은 곧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라고 성급히 결론 내리지 않는 게 좋아요.
제물론의 만물제동은, 세상의 크고 작음과 옳고 그름이 내가 고른 잣대에서 생긴 것일 뿐 만물 자체의 등급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장자는 시비 다툼의 한복판이 아니라 '고리의 중심(環中)'에 서라고 권했지요.
물고기의 즐거움 이야기처럼, 나와 다른 존재의 관점을 인정하는 데서 이 사상은 출발해요.
다만 그것이 하나의 진리인지, 기준의 부재인지, 여러 길의 공존인지는 아직도 열린 물음으로 남아 있어요.
이 흔들림까지 그대로 품고 읽을 때, 만물제동은 더 넓게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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