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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성선설은 모든 사람이 이미 착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좋은 환경만 주어지면 누구나 선하게 자라날 마음의 싹을 타고났다는, 맹자(기원전 372년쯤부터 기원전 289년쯤까지 살았던 유교의 아성)의 주장이에요.
길을 걷다가 어린아이가 우물 쪽으로 아장아장 다가가 곧 빠질 것 같은 장면을 봤다고 해 볼게요.
그 순간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나요?
아마 '앗!' 하고 가슴이 철렁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을 거예요.
상을 받으려고, 칭찬을 들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요.
맹자가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걸 보여 주려고 든 유명한 예가 바로 이거예요.
원문으로는 乍見孺子將入於井(사견유자장입어정), 곧 '문득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게 되면'이라는 구절이에요.
맹자는 누구든 이 장면 앞에서 깜짝 놀라고 가엾어하는 마음이 든다고 봤어요.
이 저절로 솟는 마음이 사람 안에 선함이 심어져 있다는 증거라는 거죠.
이게 성선설(性善說), 즉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는 생각의 출발점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오해를 풀고 가야 해요.
성선설은 '모든 사람이 지금 이미 완성된 착한 사람이다'라는 뜻이 아니에요.
세상에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오렌지 씨앗을 떠올려 보면 쉬워요.
씨앗 한 봉지를 심으면 사실 상당수는 싹조차 트지 못하고, 열매까지 맺는 건 일부예요.
그래도 우리는 '오렌지나무의 본성은 오렌지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하죠.
발아하지 못한 씨앗이 많다고 해서 그 본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스탠퍼드 철학사전은 맹자의 성선을 이렇게 풀이해요.
'이미 다들 선하다'가 아니라, 좋은 환경이 주어지면 선하게 자랄 경향과 잠재력을 타고났다는 뜻이라고요.
즉 우리 마음속 착한 마음은 완성품이 아니라 씨앗이에요.
햇빛과 물, 곧 좋은 배움과 환경이 있어야 무럭무럭 자라요.
맹자가 이 씨앗을 가리켜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 같은 '네 가지 실마리(사단)'는 그 자체로 큰 주제라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룰게요.
우리가 흔히 아는 표현은 '사람은 본래 착하다', 한자로 性本善(성본선)이에요.
아이들이 배우는 옛 한자책 《삼자경》도 '人之初,性本善(인지초 성본선)', 즉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본성은 본래 선하다'로 시작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性本善'이라는 말은 맹자가 직접 한 말이 아니에요.
《맹자》 원문을 실제로 뒤져 보면 맹자가 쓴 표현은 '本(본래)' 자가 없는 性善(성선)이고, 그마저도 딱 두 군데(3A1과 6A6)에만 나와요.
'性本善'은 훨씬 뒤인 남송의 학자 주희(1130년부터 1200년까지)가 붙인 해석이 굳어진 말이에요.
작은 차이 같지만 결이 달라요.
| 표현 | 누구 말 | 결이 주는 느낌 |
|---|---|---|
| 性善 (성선) | 맹자 본인 | 선하게 될 방향·잠재력을 지녔다 |
| 性本善 (성본선) | 주희의 해석 | 본래부터 이미 선하다 |
'本' 한 글자가 빠지고 들어감에 따라, 씨앗(자라날 가능성)이냐 완성품(이미 착함)이냐가 갈리는 셈이에요.
앞에서 본 오렌지 씨앗 비유를 떠올리면, 맹자 본인의 '性善'이 씨앗 쪽에 더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맹자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순자는 정반대를 외쳤어요.
人之性惡,其善者偽也(인지성악 기선자위야), 곧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선하게 되는 건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라는 성악설이에요.
여기서 '위(偽)'는 거짓이 아니라 '사람이 후천적으로 만든 것'을 뜻해요.
두 사람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정리돼요.
| 물음 | 맹자(성선설) | 순자(성악설) |
|---|---|---|
| 타고난 본성은? | 선한 싹을 지님 | 이기적이고 거칠음 |
| 그럼 어떻게 착해지나 | 타고난 싹을 잘 기른다 | 교육과 예로 다듬어 만든다 |
재미있게도 두 사람 다 '그러니 열심히 배우고 닦아야 한다'는 결론은 같아요.
다만 맹자는 '원래 있는 씨앗에 물을 주는' 쪽이고, 순자는 '거친 나무를 깎아 반듯하게 만드는' 쪽이라는 점이 달라요.
그렇다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뭘까요?
맹자는 그 사람에게 착한 씨앗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 기르지 못해 시들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나온 말이 求其放心(구기방심),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찾는다'예요.
키우던 화분을 며칠 방치하면 잎이 축 늘어지지만, 다시 햇빛과 물을 주면 살아나잖아요.
맹자가 말하는 수양도 이래요.
없던 착함을 새로 만들어 붙이는 게 아니라, 원래 내 안에 있었는데 잊고 지낸 마음을 도로 찾아오는 일이에요.
성선설이 사람에게 주는 위로는 여기에 있어요.
지금 좀 어긋났더라도, 되찾을 씨앗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
맹자의 성선설은 '사람은 원래 완성된 착한 존재다'가 아니라, '누구나 선하게 자라날 마음의 씨앗을 타고났다'는 주장이에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저절로 철렁하는 그 마음이 증거이고, 오렌지 씨앗처럼 좋은 환경에서 길러야 열매를 맺어요.
우리가 아는 '性本善'은 맹자가 아니라 주희의 해석이고, 맹자 본인의 말은 '性善'이었다는 점, 그리고 정반대인 순자의 성악설과 견줘 보면 그 뜻이 더 또렷해진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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