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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과학 시간에 새로운 걸 배우다 보면 가끔 마음이 복잡해져요. 그럼 오래전부터 믿어 온 이야기들은 다 틀린 걸까 하고요. 무언가를 믿는 마음과 끝까지 따져 보는 머리, 이 둘이 한자리에 앉으면 꼭 다툴 것만 같죠. 하나가 옳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 같고요. 실제로 지금도 신앙과 과학은 원수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그런데 800여 년 전에 정반대로 생각한 사람이 있었어요. 둘이 싸울 이유가 없는데, 하고 말이죠. 그 사람이 바로 이븐 루시드예요. 오늘은 그가 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는지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이븐 루시드는 1126년, 지금의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이슬람 학자예요. 유럽 사람들은 그를 라틴어식으로 아베로에스라고 불렀어요. 그가 자란 코르도바는 책이 가득한 도시였어요. 한창때 큰 도서관에는 책이 수십만 권 있었다고 하니, 요즘 시립도서관 여러 개를 합친 양이죠. 이런 도시에서 자란 그는 한 가지 일만 하지 않았어요. 낮에는 재판을 맡은 판사였고, 왕의 몸을 살피는 의사였고, 또 책을 읽고 쓰는 철학자였죠. 요즘으로 치면 판사와 의사와 작가를 한 사람이 다 해낸 셈이에요. 그만큼 증거를 살피고 머리로 차근차근 따지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그에게 따져 묻는 일은 믿음을 흔드는 위험한 짓이 아니라, 그냥 매일 하는 일이었죠.

이븐 루시드가 평생 매달린 일이 하나 있어요. 그가 태어나기 14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그리스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한 줄 한 줄 풀어 설명하는 일이었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별과 동물과 사람의 마음까지 온갖 것을 따져 본 사람인데, 그 책이 어찌나 어려운지 읽다가 덮어 버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븐 루시드가 쉬운 말로 풀어 주니 학자들이 무릎을 쳤죠. 어려운 교과서를 대신 읽고 반 전체에게 또박또박 설명해 주는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고마운가요. 그가 딱 그런 역할이었어요. 유럽 사람들은 아예 그를 이름 대신 그 주석가라고 불렀어요. 풀어 설명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 한 명을 가리키는 별명이 되어 버린 거죠. 어려운 걸 쉽게 풀어내는 솜씨가 그만큼 남달랐던 거예요.

이븐 루시드가 살던 때, 많은 사람이 한 가지를 걱정했어요. 머리로 너무 따지다 보면 믿음이 흔들린다는 거였죠. 그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가잘리라는 유명한 학자가 그 생각을 책으로 정리하기도 했어요. 철학이 믿음을 위태롭게 한다고요. 가잘리는 책 제목까지 철학자들의 헛소리라는 뜻으로 붙였죠. 듣고 보면 그럴듯해요. 자꾸 왜요, 진짜예요 하고 캐물으면 소중히 여기던 믿음에 금이 갈 것 같으니까요. 이븐 루시드는 이 걱정에 정면으로 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헛소리야말로 헛소리다, 라는 제목의 책으로 받아쳤답니다. 제목만 봐도 그가 얼마나 자신 있었는지 느껴지죠.

그의 생각은 이랬어요. 세상을 만든 분과 믿음의 말씀을 주신 분이 같다면, 세상을 살펴 얻은 답과 말씀이 진짜로 싸울 수는 없다는 거예요. 둘 다 같은 곳에서 나온 진실이니까요. 길에서 같은 사고를 본 두 사람이 솔직하게 말한다면 두 이야기가 크게 어긋날 리 없잖아요. 만약 어긋나 보인다면 둘 중 하나를 잘못 들은 거지, 누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죠. 진실은 또 다른 진실과 싸우지 않는다, 이게 그의 출발점이었어요.
그래서 이븐 루시드는 이렇게 풀었어요. 믿음의 말씀이 머리로 분명히 아는 사실과 부딪치는 것처럼 보이면, 그건 말씀을 너무 겉으로만 읽었기 때문이라고요. 어른이 다섯 살 아이에게는 쉬운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큰 아이에게는 더 깊은 뜻까지 들려주잖아요. 말씀에도 그렇게 겉뜻과 속뜻이 있어서, 더 깊이 읽으면 따져서 아는 것과 결국 만난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 따져 묻는 일은 믿음을 깨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씀의 깊은 뜻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 되죠. 믿음과 이성은 같은 산을 서로 다른 길로 오르는 두 사람인 셈이었어요. 길은 달라도 꼭대기에서 만나니까요.

이런 주장이 모두를 기쁘게 하지는 못했어요. 말년에 이븐 루시드는 미움을 사서, 그의 철학책들이 금지되고 한동안 도시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어요. 따져 묻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위험해 보였던 거죠. 하지만 생각이란 건 책을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그의 책들은 라틴어로 옮겨져 유럽의 여러 대학으로 퍼졌고, 신앙과 이성을 어떻게 같이 안고 갈지 고민하던 학자들에게 큰 힌트가 되었어요. 그와 종교가 다른 유럽의 학자들조차 그가 닦아 놓은 방법을 기꺼이 가져다 썼죠.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마음껏 따져 묻는 길, 그 다리는 만든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백 년을 살아남았어요.
믿음과 이성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싸움 상대처럼 보이기 쉬워요. 하지만 이븐 루시드는 둘이 같은 진실을 향한 두 갈래 길이라고 봤어요. 어긋나 보일 땐 어느 한쪽을 더 깊이 읽으면 된다고요. 무언가를 믿는 마음과 끝까지 따져 보는 머리를 한 식탁에 나란히 앉힐 수 있다는 것, 그게 800여 년 전 한 판사이자 의사이자 철학자가 우리에게 남긴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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