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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날 조선에 이런 이야기가 돌았어요. 어느 가난한 양반이 나라 곳간에서 꾸어 먹은 곡식을 갚지 못해서, 자기 신분을 옆 마을 부자에게 팔아넘기게 됐죠. 부자는 양반이 그렇게 부러웠던 사람이라 얼른 돈을 냈어요. 그런데 양반 자격증에 적힌 내용을 막상 읽어 보니 좀 이상했어요. 더워도 버선을 못 벗고, 가려워도 손으로 코를 못 후비고, 배고파도 직접 못 먹고 종을 불러 시켜야 하고요. 끝에 가서는 양반이 권세를 부려 이웃의 소를 끌어다 내 밭을 먼저 갈게 해도 누가 뭐라 못 한다는 대목까지 나와요. 그걸 듣던 부자가 그만 질려서 “이건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셈이오” 하며 달아나 버려요. 이 우스운 글을 쓴 사람이 누구냐면, 놀랍게도 본인이 진짜 양반이었어요. 이름은 박지원이에요.
박지원은 1737년에 태어나 1805년까지 살았어요. 지금으로부터 270년쯤 전 사람이에요. 그냥 양반도 아니고 꽤 이름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집안에 높은 벼슬을 한 어른들이 있었고, 본인도 마음만 먹으면 과거 시험을 보고 관리가 될 수 있는 자리였고요. 비유하자면, 좋은 학교와 든든한 배경을 다 가진 사람이 어느 날 “이 시스템 좀 이상한데” 하고 안에서 손을 든 셈이에요. 바깥에서 던지는 돌이 아니라, 같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 “우리 이거 잘못하고 있어요” 하고 말한 거죠. 그래서 그의 말은 더 뜨끔했어요.
여기서 계급을 배반했다는 말이 나와요. 어렵게 들리지만 장면은 단순해요. 보통 사람은 자기가 속한 무리를 감싸기 마련이에요. 같은 반 친구가 잘못해도 슬쩍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처럼요. 우리 편이니까요. 그런데 박지원은 반대로 했어요. 양반이 누리던 특권을, 같은 양반의 눈으로 콕 집어 우습게 그렸어요.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글공부했다는 이유로 떵떵거리고, 농사짓고 물건 만드는 사람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습을요. 자기 무리의 민낯을, 무리 안에 있는 사람이 직접 들춘 거예요. 이게 바로 계급 배반의 논리예요. 비판하는 사람과 비판받는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그래서 “너희가 뭘 아냐”고 따질 수도 없었죠. 누구보다 그 안을 잘 아는 사람이 한 말이니까요.
심술이 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박지원에게는 더 중요한 생각이 있었어요. 그는 양반이 체면만 차리느라 정작 백성의 살림에는 보탬이 안 된다고 봤어요. 손에 흙 한 번 안 묻히면서 “우리는 글 하는 사람”이라며 수레 만드는 법, 농사 잘 짓는 법, 장사하는 법을 천하게 여겼거든요. 박지원이 보기에 그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멀쩡한 어른이 밥값은 못 하면서 양반이라는 이름표 하나로 대접만 받으려 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양반이라는 사람들을 미워한 게 아니라, 일은 안 하면서 대접만 바라는 태도를 콕 집어 비웃은 거예요. 사람을 미워한 게 아니라 게으른 특권을 미워한 셈이죠.
박지원이 내건 말 중에 이용후생이라는 게 있어요. 말이 어렵지, 뜻은 따뜻해요. 도구를 잘 쓰고(이용) 살림을 넉넉하게 해서 삶을 두텁게 하자(후생)는 거예요. 멋진 이론을 외우는 것보다, 백성이 밥 한 끼 더 먹고 다니는 길이 한 뼘 더 편해지는 게 중요하다는 마음이고요. 그는 마흔 무렵 청나라를 다녀온 뒤 쓴 여행기 열하일기에서 벽돌 쌓는 법, 수레를 잘 굴리는 법 같은 실용적인 것들을 꼼꼼히 적었어요. 오랑캐의 것이라며 다들 무시하던 기술도, 백성에게 이로우면 부끄러워 말고 배우자고 했죠. 이렇게 글자랑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보탬이 되는 학문을 실학이라고 불러요. 박지원의 풍자는 그냥 비웃음이 아니라, 이 실학이라는 진심에서 나온 웃음이었어요.
박지원은 양반의 헛점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그리지 않았어요. 어떤 글에서는 평생 글만 읽던 선비가 집을 나서, 빈손으로 장사를 시작해 큰돈을 버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글공부만 떠받들던 세상에서, 정작 백성을 살리는 건 셈을 하고 물건을 옮기는 현실의 솜씨라는 걸 보여 준 거죠. 또 어떤 글에서는 점잖은 척하던 선비가 한밤중에 부끄러운 모습을 들키고는, 호랑이 앞에서 벌벌 떨며 비굴해지는 장면을 그려요. 겉으로는 도덕을 말하면서 속은 텅 빈 어른들을, 박지원은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비췄어요. 한 사람을 욕한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태도 그 자체를 겨눈 거예요.
박지원이 대단한 건 화를 내지 않고 웃게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양반은 나쁘다”고 소리치는 대신, 양반 자격증에 적힌 우스운 규칙들을 그대로 펼쳐 보이고 독자가 스스로 “어, 이거 좀 이상한데” 하고 깨닫게 했어요. 손가락질은 한 번 듣고 잊지만, 스스로 깨달은 우스움은 오래 남잖아요. 게다가 안에 있는 사람이 안을 비추니까, 그 비판이 더 따끔하고 더 믿음직했어요. 누구보다 그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이, 그 세계의 가장 약한 곳을 가장 정직하게 짚었으니까요.
박지원은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진짜 양반이었지만, 일은 안 하면서 대접만 받으려는 양반의 모습을 같은 양반의 눈으로 우습게 그렸어요. 이게 자기 계급을 배반한 풍자예요. 미움에서 나온 조롱이 아니라, 백성의 살림에 보탬이 되자는 이용후생의 마음에서 나온 웃음이었죠. 가장 안쪽에 있던 사람이 가장 정직하게 안을 비춘 것, 박지원의 글이 270년이 지나도 읽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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