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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800년쯤 전, 한 시인이 아주 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분량이 무려 2만 5천 행이 넘는, 책으로 치면 여섯 권짜리 대작이었지요. 그런데 그 첫 줄이 좀 이상해요. "갈대 피리가 하는 말을 들어 보라"로 시작하거든요. 피리가 말을 한다니, 그것도 우는 소리로 말이에요.
이 시인이 바로 루미예요. 1207년에 태어나 1273년에 세상을 떠난, 페르시아 말로 시를 쓴 사람이지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쪽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전쟁을 피해 멀리 서쪽으로 옮겨 가 살았어요. 그가 남긴 이 긴 시는 800년이 지난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읽혀요. 그런데 하필 첫 장면이 우는 피리라니, 도대체 피리가 왜, 누구 때문에 운다는 걸까요?
피리가 우는 까닭을 알려면, 그 피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봐야 해요. 루미가 말한 피리는 '네이'라는 갈대 피리예요. 강가나 늪에 빽빽하게 자라는 갈대를 한 대 골라, 뿌리에서 싹둑 잘라 속을 텅 비우고 구멍을 몇 개 뚫어 만들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잘렸다'는 거예요. 갈대는 원래 갈대밭에서 다른 갈대들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던 식물이었어요. 흙에 뿌리를 박고, 물을 빨아들이며 살아 있었지요. 그런데 누군가 그걸 쑥 뽑아다가 속을 파내고 피리로 만든 거예요.
그래서 피리가 내는 소리는, 루미가 보기엔 그냥 예쁜 음악이 아니에요. 자기가 떠나온 갈대밭을 그리워하는 울음이에요. "나를 갈대밭에서 잘라 낸 뒤로 나는 줄곧 울고 있다." 피리의 빈 속과 구멍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 가느다란 소리가, 고향을 잃어버린 그리움이라는 거죠. 생각해 보면 피리는 속이 비어 있어서 소리가 나잖아요. 루미는 그 텅 빈 자리를 '뭔가 잃어버린 흔적'으로 본 거예요.
그런데 루미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피리에 대한 게 아니에요. 피리는 빗대어 한 말이고, 진짜 주인공은 바로 우리 사람이에요.
루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람도 원래 어떤 큰 근원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라고요. 그 근원을 그는 신이라고도 부르고, 사랑이라고도 불렀어요. 갈대가 갈대밭에서 잘려 나와 피리가 되었듯이, 우리 마음도 본래 있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이 세상에 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자꾸 어딘가 허전하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느낀다고 봤어요.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옷을 입고 갖고 싶던 걸 다 가져도, 문득 가슴 한구석이 빈 것 같은 그 느낌 있잖아요. 루미는 그 허전함이 바로 피리의 울음과 똑같다고 했어요. 음악을 듣다가 까닭도 없이 코끝이 찡해질 때처럼요. 그게 우리가 떠나온 자리를 향한 마음의 울음이라는 거예요.
보통 종교나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단어부터 떠올라요. 그런데 루미는 그 어려운 이야기를 거의 다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말로 풀어냈어요.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누구나 아는 그 익숙한 감정으로요.
여기엔 사연이 있어요. 그가 살던 곳은 13세기 코니아라는 도시, 지금의 튀르키예 땅이었어요. 루미는 거기서 샴스라는 떠돌이 수도자를 만나 아주 깊은 우정을 나눴는데, 그 샴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려요. 그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루미의 시가 터져 나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의 시는 책상에서 머리로 지어낸 이론이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해 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의 시는 8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 마음을 울려요. 신을 믿든 안 믿든, 누구나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를 마음에 품고 살기 때문이에요. 루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한 손은 하늘로, 한 손은 땅으로 향한 채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며 그 그리움을 몸으로 풀어내기도 했어요.
루미의 갈대 피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예요. 갈대밭에서 잘려 나온 피리가 떠나온 자리를 그리워하며 울듯이, 사람의 마음에도 무엇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는 거죠. 루미는 그 어려운 생각을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열두 살도 아는 말로 풀어냈어요. 그래서 그의 피리 소리는 시대와 종교를 훌쩍 넘어 지금도 들려요. 다음에 어딘가 까닭 모를 허전함이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루미가 말한 피리의 울음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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