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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방 한쪽에 손바닥만 한 거울을 걸어 본 적 있나요. 그 작은 거울 안에는 침대도, 창문도, 천장 등불도, 심지어 거울을 보는 내 얼굴까지 방 전체가 쏙 들어와 있어요. 거울은 분명 손바닥만 한데, 그 안에 담긴 건 방 하나만큼 커요.
신라에 살던 한 스님은 세상이 꼭 이 거울 같다고 봤어요. 아주 작은 것 하나 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 있고, 온 세상이 모이면 다시 그 작은 하나로 이어진다고요. 말로만 들으면 어렵지만, 거울 이야기를 떠올리면 한결 가까워져요. 이 스님 이름이 의상이에요.
의상이 가장 아끼던 생각을 여섯 글자로 줄이면 '일즉다 다즉일'이에요. 한자를 한국말로 풀면 '하나가 곧 여럿이고, 여럿이 곧 하나'라는 뜻이에요.
좀 이상하게 들리죠. 하나는 하나고 여럿은 여럿인데, 어떻게 하나가 여럿이 될까요. 이렇게 생각해 봐요. 축구공 하나가 굴러가려면 가죽도, 공기도, 그걸 만든 사람도, 차는 발도 필요해요. 공 하나 안에 이미 수많은 것이 숨어 있는 거예요. 반대로 그 모든 게 모여 결국 '공 하나'가 되고요. 그러니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온 세상이 있고, 온 세상을 모으면 다시 하나가 돼요. 의상은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서로 기대어 얽혀 있다고 봤어요. 따로 뚝 떨어져 혼자 존재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거죠.
의상은 625년에 태어나 702년에 세상을 떠난 신라 사람이에요. 지금으로부터 천삼백 년도 더 전 사람이죠. 젊은 시절 그는 더 깊은 가르침을 배우려고 바다를 건너 당나라, 그러니까 지금의 중국까지 갔어요. 비행기도 없던 때라 배를 타고 목숨을 걸고 가는 먼 길이었죠.
거기서 그는 화엄이라는 가르침을 파고드는 큰 스승 밑에서 여러 해를 공부했어요. 그러고 신라로 돌아와, 우리나라에 화엄이라는 가르침의 줄기를 처음 세운 사람이 됐어요.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절 부석사도 의상이 세운 곳이에요. 지금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오래된 절이죠.
의상이 남긴 가장 유명한 글은 '화엄일승법계도'예요. 이름은 길고 어렵지만, 알맹이는 뜻밖에 단출해요. 단 210글자짜리 짧은 시 한 편이거든요. 원고지로 치면 한 장 분량이에요.
게다가 그는 이 글자들을 그냥 줄줄이 늘어놓지 않았어요. 한 줄로 쭉 쓴 글을 구불구불 꺾어서, 가운데에서 시작해 돌고 돌아 다시 가운데로 돌아오는 네모난 도장 모양 그림으로 만들었어요. 시작도 끝도 결국 한자리예요. 글의 생김새 자체가 '하나에서 나와 여럿을 거쳐 다시 하나로 돌아온다'는 그 생각을 그대로 보여 주는 셈이죠. 짧은 글 한 편을 그림으로 접어, 손바닥 위에 우주를 올려놓은 거예요.
이 생각이 왜 지금 우리에게도 말을 걸까요. 우리는 보통 나는 나, 너는 너, 이건 이것, 저건 저것 하고 모든 걸 따로따로 떼어 놓고 봐요. 그런데 의상은 그 칸막이를 거두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인다고 한 거예요.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에는 농부의 땀도, 비와 햇빛도, 그걸 실어 온 사람도 들어 있어요. 그러니 나 하나가 잘 지내는 일은 사실 수많은 인연이 함께 빚어낸 결과예요. 작은 하나도 우습게 볼 수 없고, 나 혼자 따로 잘난 것도 없다는 마음. 의상이 여섯 글자에 담아 두고 싶었던 건 어쩌면 그런 따뜻한 눈이었을 거예요.
의상은 천삼백 년 전 신라에서 화엄이라는 가르침을 우리나라에 처음 세운 스님이에요. 그가 평생 매달린 생각은 '일즉다 다즉일', 하나가 곧 여럿이고 여럿이 곧 하나라는 한마디였어요. 작은 거울이 방 전체를 담듯, 작은 것 하나 안에 온 세상이 들어 있고 그 모든 게 다시 하나로 이어진다는 거죠. 그는 이 생각을 210글자짜리 짧은 시를 도장 모양으로 접은 화엄일승법계도에 담았어요. 다음에 밥 한 그릇이나 손에 쥔 물건 하나를 볼 때, 그 안에 숨은 수많은 인연을 한 번 떠올려 보면 의상의 마음에 살짝 닿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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