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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좋아하는 만화책 다음 편이 우리나라엔 안 나온다고 해 봐요. 그래서 그 책을 구하려고 직접 걸어서 다른 나라까지 간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을요. 지금으로부터 1400년쯤 전, 당나라에 살던 스님 현장이 정말로 그렇게 했어요.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길을 떠나, 모래바람만 부는 사막과 눈 덮인 높은 산을 넘어 인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무려 17년이 걸렸죠. 비행기도 자동차도, 제대로 된 지도조차 없던 시절이에요. 사막에서는 물이 떨어져 며칠을 버티다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 먼 길로 떠밀었을까요?
사실 현장이 살던 시절에도 불교 경전은 이미 중국말로 꽤 번역되어 있었어요. 문제는 번역본마다 내용이 조금씩 어긋났다는 거예요. 같은 가르침인데 이 책은 이렇게 적고 저 책은 저렇게 적으니,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죠. 외국 보드게임 설명서를 여러 사람이 제각각 번역해 놓아서, 읽을수록 규칙이 더 헷갈리는 상황과 똑같아요. 현장은 이렇게 마음먹었어요. "번역본을 아무리 비교해도 답이 안 나오면, 원본이 있는 인도로 직접 가서 배워 오면 되잖아." 그 시절 인도는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이자, 불교를 가장 깊이 공부하는 본고장이었거든요.
현장이 인도에 도착해 가장 깊이 파고든 가르침이 바로 '유식'이에요. 글자만 보면 어렵지만 뜻은 의외로 단순해요. '세상은 오직 마음(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생각이거든요. 똑같은 운동장도 소풍 온 아이에겐 설레는 곳이지만, 달리기 시험을 앞둔 아이에겐 무섭고 떨리는 곳이잖아요. 장소는 하나인데, 마음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이 되죠. 유식은 이렇게 우리가 보는 세상이 바깥에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그려 낸 그림에 가깝다고 말해요. 현장은 인도 최고의 학교였던 나란다 절에서 몇 년 동안 이 유식을 스승에게 직접 배웠어요.
이 글이 다루려는 진짜 장면이 여기예요. 인도에 세친이라는 이름난 스님이 남긴 아주 짧은 시가 있었어요. 유식의 핵심을 딱 서른 줄로 압축한 시(유식삼십송)였죠. 너무 짧고 알맹이만 있다 보니, 인도의 뛰어난 학자 열 명이 저마다 "이 구절은 이런 뜻이다" 하고 길게 해설을 달았어요. 그러니까 시 한 편을 두고 해설서가 열 권이나 생긴 거예요. 현장은 처음엔 이 열 권을 모두 중국말로 옮기려 했어요.
그런데 제자인 규기가 이렇게 말렸어요. "열 권을 따로따로 옮겨 놓으면, 읽는 사람이 또 어느 말이 맞는지 헷갈릴 거예요. 그중 가장 잘 풀어낸 호법 스님의 해설을 중심 기둥으로 삼고, 나머지 아홉 사람의 좋은 풀이는 거기에 녹여서 한 권으로 묶으면 어떨까요?" 현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열 권이 한 권으로 합쳐져 태어난 책이 바로 '성유식론'이에요. 그래서 성유식론은 글자만 그대로 옮긴 보통의 번역이 아니에요. 여러 목소리를 견주어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하나로 엮어 낸, 편집에 가까운 책이죠.
현장은 인도에서 불경을 657권이나 짊어지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남은 평생을 번역에만 매달려, 1300권이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중국말로 옮겼죠. 웬만한 사람은 평생 다 읽지도 못할 양이에요. 그중에서도 성유식론은 가장 공들인 작품으로 꼽혀요. 이 책 덕분에 중국에는 유식을 깊이 파고드는 새로운 공부의 흐름(법상종)이 생겨났고, 그 가르침은 훗날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건너왔어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 우리가 아는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바로 이 현장을 본떠 만든 인물이에요. 손오공과 함께 요괴를 물리치며 서쪽으로 가던 그 스님이, 실제로는 혼자 사막을 건너 책을 구하러 간 진짜 사람이었던 거죠.
현장은 번역본마다 말이 달라 진짜 뜻이 궁금했고, 그 답을 찾으러 17년 동안 인도까지 걸어갔어요. 거기서 '세상은 마음이 그린 그림'이라는 유식을 배웠고, 인도 학자 열 명의 해설을 한 권으로 묶어 성유식론을 펴냈죠.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옮긴 번역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견주어 한 줄기로 정리한 결과물에 가까워요. 헷갈리면 원본까지 찾아가서라도 제대로 알고 싶어 한 마음, 어쩌면 그게 현장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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