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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운동회 달리기를 떠올려 봐요. 출발선이 저마다 다르고 속도도 제각각이지만,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모두가 끝내 결승선을 밟는다고 누가 약속해 준다면 마음이 놓이겠죠. 힌두 철학에는 오래전부터 그것과 비슷한 믿음이 있었어요. 모든 영혼은 언젠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든 결국 진리에 닿아 자유로워진다는 거예요. 그 완전한 자유를 산스크리트로 '목샤', 우리말로는 '해탈'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800년쯤 전 남인도에, 이 약속에 조용히 손을 든 사람이 있었어요. "아니요, 결승선을 영영 못 밟는 주자도 있어요"라고 말한 사람이요. 그가 바로 마드바예요.
마드바는 지금의 인도 남서쪽, 우두피라는 바닷가 지역에서 태어났어요. 태어난 해는 1238년쯤으로 보고, 여든 가까이 살았다고 전해져요. 젊은 나이에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고, 평생 옛 경전을 새로 풀이하는 글을 여러 편 남겼어요.
그가 살던 시대엔 이미 '정답'처럼 굳어진 큰 가르침이 하나 있었어요. 마드바보다 약 400년 먼저 살았던 샹카라라는 철학자의 생각이었죠. 마드바는 그 정답에 평생 맞섰어요.
샹카라의 가르침은 이래요. 우리가 보는 세상도, 너와 나의 구분도 사실은 꿈 같은 것이고, 마음 깊이 들어가 보면 내 안의 참된 나와 신(우주의 근본)은 원래 하나라는 거예요. 작은 물방울이 알고 보면 바다와 똑같은 물이라는 식이죠. 이 생각을 '아드바이타', 우리말로 '둘이 아니다'라고 해요.
마드바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했어요. 물방울은 끝까지 물방울이지 바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신은 신이고, 나는 나고, 너는 너고, 이 셋은 영원히 섞이지 않는 다른 존재라고 봤어요. 이 생각을 '드바이타', 곧 '둘이다(이원론)'라고 불러요. 영혼은 신을 향해 갈 수는 있어도, 신과 똑같아지거나 신 안으로 녹아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죠.
여기서 마드바의 가장 독특한 생각이 나와요. 그는 영혼이 다 같은 길을 걷는 게 아니라, 타고난 성질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뉜다고 봤어요.
첫째는 언젠가 자유에 이를 영혼이에요. 시간이 걸려도 결국 결승선을 밟는 주자죠.
둘째는 영원히 제자리를 도는 영혼이에요. 천국에 오르지도, 어둠에 떨어지지도 않은 채 태어나고 죽기를 끝없이 반복만 해요.
셋째가 가장 낯선데요, 어둠으로 향하는 영혼이에요. 이 영혼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구원받지 못하고 영영 어두운 곳에 머물러요.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이라는 말은 바로 이 셋째를 가리켜요.
대부분의 힌두 가르침은 '모두가 결국 골인한다'는 쪽이었어요. 그러니 마드바의 말은 운동장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처럼 들렸죠.
그가 말한 차이는 벌이라기보다 씨앗의 성질에 가까워요. 똑같이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 줘도, 어떤 씨앗은 싹을 틔우고 어떤 씨앗은 끝내 틔우지 않는다는 식이에요. 영혼마다 처음부터 향하는 방향이 다르게 정해져 있다는 거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같은 결승선에 닿는다는 따뜻한 약속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에요.
이 생각은 먼 훗날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종교의 '예정설'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야기로도 이어졌어요. 다만 마드바가 정말 바깥에서 그런 생각을 들여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닮았다는 정도로만 알아 두면 돼요.
마드바는 800년쯤 전 남인도에서, '모든 영혼은 언젠가 구원받는다'는 오랜 믿음에 혼자 맞선 철학자예요. 그는 신과 나는 끝까지 다른 둘이라는 드바이타(이원론)를 세워 샹카라의 '둘이 아니다'에 반대했고, 영혼을 세 종류로 나눠 그중에는 영영 구원받지 못하고 어둠에 머무는 영혼도 있다고 봤어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누구나 결국 골인한다'는 약속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마드바가 남긴 건 정답이라기보다, 그 익숙한 약속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불편하고도 묵직한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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