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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체육 시간에 두 친구가 똑같이 이를 악물고 달렸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한 명은 1등을 하고, 한 명은 꼴찌를 해요. 노력은 비슷했는데 왜 결과는 이렇게 갈릴까요? 어른들은 "노력하면 다 된다"고 말하지만, 살다 보면 그 말이 늘 맞지는 않다는 걸 누구나 느끼게 돼요. 똑같이 공부해도 시험 운이 갈리고, 똑같이 성실해도 누구는 잘 풀리고 누구는 안 풀려요. 약 이천 년 전 중국에도 바로 이 질문을 붙들고 늘어진 사람이 있었어요. 후한 시대의 학자 왕충이에요.

왕충은 서기 27년쯤 태어나 100년 무렵까지 살았어요. 지금으로 치면 일흔 살 정도까지 산 셈이에요. 집이 가난해서 책을 사 볼 형편이 안 됐대요. 그래서 시장 책방에 서서 책을 읽었는데, 한 번 본 내용을 잘 기억해서 그 자리에서 외워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젊을 때는 수도 낙양에 올라가 큰 학교에서 공부도 했어요. 하지만 벼슬길은 끝내 잘 안 풀렸어요. 작은 관직을 몇 번 맡았다 그만두기를 반복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글을 쓰며 지냈어요. 그렇게 평생에 걸쳐 쓴 책이 '논형'이에요. 85편이나 되는 긴 글 묶음인데, 제목 '논형'은 '저울로 단다'는 뜻이에요. 떠도는 말들을 저울에 하나씩 올려 무게를 달듯, 사실인지 아닌지 끝까지 따져 보겠다는 마음이 담긴 제목이죠.
왕충이 살던 시절에는 이런 믿음이 아주 흔했어요. 하늘은 사람처럼 마음이 있어서, 착한 사람한테는 복을 주고 나쁜 사람한테는 벌을 내린다는 거예요. 가뭄이 들면 임금이 뭔가 잘못해서 하늘이 화가 난 거라고 했고,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이 덕을 쌓아서 그렇다고 했어요. 왕충은 여기에 고개를 갸웃했어요. 정말 그렇다면, 왜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살다 가고, 못된 사람은 떵떵거리며 잘사는 일이 이렇게나 많을까요? 그는 하늘이 사람처럼 누구를 골라 상과 벌을 나눠 준다는 생각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봤어요.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게만 굴러가지 않으니까요.
그 대신 왕충은 '명'이라는 걸 이야기했어요. 우리말로는 운명이라고 옮길 수 있어요. 그는 사람이 태어날 때 일종의 제비를 한 장 뽑는다고 생각했어요. 부유하게 살지 가난하게 살지, 오래 살지 일찍 떠날지가 그 제비에 얼마쯤 적혀 있다는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어떤 기운을 받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큰 틀이 정해진다고 본 셈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제비뽑기가 그 사람이 착한지 나쁜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점이에요. 착하게 살아서 좋은 제비를 뽑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 그냥 받아 든 거예요. 그래서 그는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를 오로지 그 사람의 됨됨이로만 설명하려는 태도를 경계했어요. 잘사는 사람을 보고 무조건 "역시 잘난 사람"이라 하고, 못사는 사람을 보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단정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는 거죠.
그렇다고 왕충이 "다 정해졌으니 노력은 헛것"이라고 말한 건 아니에요. 그는 성공에는 두 가지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하나는 재능과 노력, 다른 하나는 '때를 만나는 일'이에요. 아무리 좋은 씨앗도 봄이 와야 싹이 트듯,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그걸 알아봐 줄 자리와 시기를 만나지 못하면 끝내 빛을 못 본다는 거예요. 자기를 알아주는 임금을 만난 신하는 크게 쓰이고, 똑같이 훌륭해도 그런 기회를 못 만난 사람은 그대로 묻혀 버려요. 왕충은 이 '만남'을 운에 가까운 것으로 봤어요. 실력은 내가 갈고닦을 수 있지만, 그 실력이 쓰일 때와 자리는 내 뜻대로 골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왕충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몰라요. 재주는 있었지만 끝내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대신 오래 읽히는 책 한 권을 남겼으니까요.
여기까지 들으면 한 가지 의문이 들어요. 어차피 운명이 절반이고 때를 만나는 것도 운이라면, 굳이 애써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요? 왕충의 답은 "그래도 한다"에 가까워요. 제비뽑기로 받은 운은 내가 어쩌지 못하지만, 실력을 기르는 일은 분명히 내 몫이거든요. 좋은 씨앗을 미리 준비해 둔 사람만이, 마침내 봄이 왔을 때 싹을 틔울 수 있어요.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좋은 때가 와도 그냥 흘려보내고 말아요. 그러니 노력은 성공을 100퍼센트 보장하는 약속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붙잡을 수 있게 해 주는 준비물에 가까워요. 결과를 다 내 손에 쥘 수는 없어도, 준비를 갖춰 두는 일은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거죠.
언뜻 들으면 왕충의 말은 좀 쌀쌀맞게 느껴져요. 다 운이라니, 맥이 빠지기도 하죠. 그런데 뒤집어 보면 따뜻한 구석이 있어요. 일이 잘 안 풀렸다고 해서 그게 꼭 당신이 게으르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을 보고 "하늘이 벌준 거다"라며 손가락질하던 시절에, 왕충은 "그건 그 사람 탓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 셈이에요. 동시에 헛된 미신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어요. 점을 보거나 부적에 기대 운명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차분히 보고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쏟으라는 거죠. 운에 휘둘리는 부분은 운에 맡기고, 내 몫인 실력은 내가 키우면 되니까요.
왕충은 약 이천 년 전 후한의 학자로, '논형'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당연하게 믿던 말들을 저울에 달듯 하나씩 따져 본 사람이에요. 그는 성공과 실패가 착한지 나쁜지로 정해진다는 생각을 의심했고, 사람은 태어날 때 운명이라는 제비를 뽑으며 거기에 '때를 만나는 운'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빛을 본다고 봤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키울 수 있는 실력은 끝까지 내 몫으로 남겨 두었죠. 이 생각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함께 건네요. 잘 안 풀린 일을 무조건 내 탓으로만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 그리고 미신에 기대는 대신 내가 갈고닦을 수 있는 실력에 마음을 쏟으라는 권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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