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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도자기 공방에 가 보면, 한 덩이 진흙으로 컵도 만들고 접시도 만들고 작은 인형도 만들어요. 모양은 다 다르지만 재료는 똑같은 흙 하나예요. 약 2천 년 전 중국에 살던 왕충이라는 사람은, 세상도 이 공방과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저 위의 별도, 길가의 돌도, 풀과 강아지도, 그리고 사람까지도 전부 똑같은 한 가지 재료로 빚어졌다는 거예요.
그 재료의 이름이 바로 '기(氣)'예요. 한자를 그대로 풀면 김이나 공기 같은 거예요.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온 세상에 안개처럼 가득 차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이 기 하나로 되어 있다"고 보는 생각을 '기 일원론'이라고 불러요. '일원'은 '근원이 하나'라는 뜻이에요.

왕충은 27년에 태어났어요. 후한이라는 나라 시절이에요. 집이 가난해서 책을 살 돈이 없었대요. 그래서 큰 도시 낙양의 책방 앞에 서서 파는 책을 읽었는데, 한 번 본 글은 잊지 않을 만큼 머리가 좋았다고 해요.
그렇게 평생 모은 생각을 '논형'이라는 책에 담았어요. 무려 85편이나 되는 큰 책이에요. 100년쯤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한 가지 일에 매달렸어요.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믿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는 일이었죠.

왕충이 살던 때 사람들은 이렇게 믿었어요. 임금이 못된 짓을 하면 하늘이 화가 나서 가뭄이나 홍수를 내리고, 착한 일을 하면 상으로 좋은 날씨를 준다고요. 하늘을 마치 사람을 지켜보다 혼내고 칭찬하는 어른처럼 여긴 거예요.
왕충은 고개를 저었어요. 하늘은 입도 없고 마음도 없는데 어떻게 누구를 미워하고 벌을 주겠냐고요. 가뭄이 드는 건 그저 기의 흐름이 그렇게 된 것뿐이에요. 난롯불이 누가 미워서 뜨거운 게 아니듯, 자연은 그냥 저절로 그렇게 움직일 뿐이라는 거죠. 이렇게 "하늘에 무슨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깨뜨린 게 왕충의 가장 큰 일이에요.

그럼 사람은 왜 태어날까요? 왕충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요. 엄마 아빠가 아이를 가질 때, "눈은 이렇게, 코는 저렇게 만들자"고 설계하지 않잖아요. 두 사람의 기가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니 아이가 저절로 생기는 거예요. 하늘이 세상 만물을 만들 때도 똑같아요. 누굴 만들겠다고 작정한 게 아니라, 기가 어쩌다 모이고 흩어지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뿐이에요.
그래서 왕충은 사람의 운명도 타고난 기에 달렸다고 봤어요. 기를 두껍게 받고 태어나면 튼튼하게 오래 살고, 얇게 받으면 일찍 약해진다는 거예요. 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복을 비는 대신 타고난 조건을 담담히 보려 한 셈이에요.

왕충은 귀신 이야기도 그냥 넘기지 않았어요. 사람이 살아 있는 건 기가 몸에 모여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죽으면 그 기가 흩어져 버려요. 촛불이 꺼지면 불빛도 같이 사라지지, 불빛만 따로 남아 떠돌지 않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죽은 뒤에 귀신이 되어 돌아다니는 일은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귀신이 해코지할까 봐 무서워하거나, 굿을 하느라 돈을 쓸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 앞에서도, 그는 끝까지 "그게 정말 그런지 따져 보자"고 말한 사람이에요.

'논형'이라는 책 이름에는 '저울 형(衡)' 자가 들어 있어요. 말 그대로 '말을 저울에 달아 본다'는 뜻이에요. 누가 한 말이든, 오래된 믿음이든, 일단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 보자는 태도죠. 증거를 따지고 의심해 보는 이 방식은, 한참 뒤에 나온 과학의 정신과 꽤 닮아 있어요.
물론 왕충도 그 시대 사람이라, 오늘 우리가 보면 어색한 생각도 섞여 있어요. 그를 '동양 최초의 과학자'처럼 너무 크게 부풀릴 필요는 없어요. 다만 모두가 당연히 믿던 것에 "정말 그럴까?" 하고 물은 용기만큼은, 2천 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아요.

왕충은 별부터 사람까지 세상 모든 것이 '기'라는 한 가지 재료로 되어 있다고 본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늘은 누구를 벌주거나 상 주지 않고, 사람도 기가 모였다 흩어지며 생겼다 사라질 뿐이라고 했죠. 귀신도, 하늘의 화풀이도 그에겐 따져 봐야 할 이야기였어요. 답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믿기 전에 한 번 저울에 달아 보려던 그 태도가 오래 기억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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