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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누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해볼게요. "당신 머리카락 딱 한 올만 뽑게 해주면, 온 세상 사람이 다 행복해집니다." 한 올이면 빗질하다가도 빠지는 게 머리카락이잖아요. 대부분은 "그 정도면 얼마든지요" 하고 내줄 거예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 중국에 "그것조차 못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양주예요. 당시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고, 특히 한 사람이 크게 화를 냈어요. 바로 맹자였죠. 맹자는 양주 같은 사람을 두고 "짐승"이라는 말까지 했어요. 머리카락 한 올 가지고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이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볼게요.
먼저 양주가 누구인지부터요. 사실 양주는 좀 억울한 사람이에요. 자기가 쓴 책이 한 권도 남아 있지 않거든요. 우리가 양주를 아는 건 거의 다 그를 비판한 사람들, 그러니까 맹자나 장자 같은 이들이 "양주라는 자가 이런 소리를 하더라" 하고 적어둔 기록을 통해서예요. 말하자면 본인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를 흉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진 셈이죠.
양주는 전국시대, 그러니까 나라들이 서로 끝없이 전쟁하던 시절을 살았어요. 맹자보다 한 세대쯤 앞선 사람으로 봐요. 그의 핵심 생각은 딱 한마디로 줄일 수 있어요. "나를 위하라." 한자로는 위아라고 하는데,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해요. 명예나 돈, 권력 같은 바깥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무엇보다 내 생명과 내 몸을 소중히 여기라는 거예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워요. "나를 위하라"니까, 남이야 어찌 되든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욕심쟁이 같잖아요. 그런데 양주가 한 말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이런 사람을 떠올리면 돼요. "나는 남한테 폐 안 끼치고, 거창한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냥 내 삶을 건강하게 지키며 조용히 살래." 양주의 생각이 딱 이랬어요. 그가 살던 시대에는 왕들이 "천하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고 백성을 전쟁터로 끌고 가 죽게 만들었어요. 양주는 그게 싫었던 거예요. 그 거창한 명분에 내 하나뿐인 목숨을 갈아 넣지 말자는 거죠.
그래서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내준다"는 말의 속뜻은 이래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핑계로 대도, 내 몸을 깎아 바치는 건 옳지 않다. 대신 그는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았어요. 내가 천하를 통째로 준대도 안 받고, 내 털 한 올도 안 내준다. 다들 이렇게 제 몸 제가 아끼면, 아무도 남을 희생시키지 않으니 세상이 오히려 평온해진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어요.
그런데 맹자는 이 생각을 정말 위험하게 봤어요. 맹자는 정반대 쪽에 서 있던 사람이거든요. 사람은 어짊과 의로움을 품고 태어났으니, 가족을 돌보고 임금을 섬기고 세상을 위해 마땅히 나서야 한다고 믿었어요.
맹자가 더 다급했던 이유가 있어요. 그 시절 양주의 인기가 어마어마했거든요. 맹자가 직접 "세상의 말이 양주에게로 가지 않으면 묵적에게로 간다"고 한탄할 정도였어요. 묵적은 또 다른 유명한 사상가예요. 쉽게 말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양주파 아니면 묵적파, 둘 중 하나로 쏠려 있었다는 거예요. 맹자가 보기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길이 양쪽에서 밀려나는 위기였던 거죠.
그래서 맹자는 이렇게 몰아붙였어요. 양주처럼 "나만 위한다"고 하면 임금이 없는 것이고, 묵적처럼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라"고 하면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도 임금도 없으면 그게 바로 짐승이다. 무서운 말이죠. 여기서 "임금이 없다"는 건 진짜 왕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와 그 질서를 통째로 부정한다는 뜻이에요. 다들 자기 몸만 챙기고 누구도 세상일에 나서지 않으면, 함께 짊어질 책임이라는 게 없어지잖아요. 맹자에겐 그게 사람과 짐승을 가르는 선이었어요.
그럼 누가 맞았을까요. 재밌는 건, 이 다툼이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양주는 이런 질문을 던진 셈이에요. "나라를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라는 말 앞에서 개인의 목숨은 정말 함부로 써도 되는 걸까." 거대한 명분에 짓눌려 살던 시대에 "네 생명도 그 자체로 귀하다"고 말한 건 꽤 용감한 외침이었어요. 반대로 맹자는 "모두가 자기만 챙기면 우리를 묶어주는 끈은 누가 잡느냐"고 물었어요. 함께 사는 세상에는 분명 그 끈이 필요하죠.
결국 한쪽은 개인을 지키려 했고, 한쪽은 공동체를 지키려 했어요. 둘 다 반쪽씩 옳은 말이라, 어느 한쪽만 정답이라고 잘라 말하긴 어려워요. 다만 좀 씁쓸한 건, 양주의 책은 사라지고 그의 이름은 "맹자에게 혼난 사람"으로 주로 남았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피고의 변론은 못 듣고, 검사의 고발장만 들고 있는 셈이죠.
양주는 "내 생명을 무엇보다 아끼고, 거창한 명분에 함부로 바치지 말자"고 한 사상가예요.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내준다는 말은 욕심이 아니라, 내 몸도 남의 몸도 함부로 희생시키지 말자는 뜻이었어요. 맹자는 그게 공동체를 무너뜨린다고 봐서 "임금도 아비도 없는 짐승 같은 소리"라며 거세게 비판했고요. 한 사람은 개인을, 한 사람은 사회를 지키려 했던 이 오래된 말다툼은, 나를 지킬 권리와 함께 짊어질 의무 사이에서 우리가 지금도 매일 저울질하는 바로 그 고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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