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대학에서 서양 철학과 논리학을 배운 스무 살 청년이 있었어요. 이름은 나렌드라, 나중에 비베카난다라고 불릴 사람이에요. 그는 신이 정말 있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만나는 종교인마다 똑같이 물었대요. "당신은 신을 직접 보셨습니까?" 다들 말을 돌리거나 머뭇거렸어요. 그런데 캘커타 근처 작은 사원의 한 사제만 달랐어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했죠. "그럼, 보지. 지금 자네를 보는 것보다 훨씬 또렷하게 본다네." 그 사제가 바로 라마크리슈나예요.
라마크리슈나는 1836년에 인도 벵골 지방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평생 책 한 권 제대로 쓴 적이 없어요. 직업은 캘커타 외곽 다크쉬네스와르라는 곳에 있는 칼리 여신 사원의 사제였어요. 우리로 치면 동네 작은 절을 지키며 매일 불공을 올리는 분과 비슷해요. 화려한 이론도, 높은 자리도 없었어요. 대신 그는 한 가지를 진심으로 했어요. 자기가 모시는 여신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간절히 부른 거예요. 너무 간절해서 밥도 잠도 잊을 정도였대요.

여기서부터가 라마크리슈나가 특별한 이유예요. 보통은 한 종교를 믿으면 그 길만 가요. 그런데 그는 직접 실험을 했어요. 힌두교의 여러 길로 수행해 본 다음, 이슬람교 방식으로도 기도해 보고, 예수를 따르는 마음으로도 지내 봤어요.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어요. 길은 다 달랐지만 도착한 자리는 똑같았다고요.
그는 쉬운 비유를 들었어요. 한 연못에 여러 계단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 계단에서 물을 '잘'이라 부르고, 다른 사람은 저 계단에서 '파니'라 부르고, 또 누구는 '워터'라 불러요. 이름은 달라도 떠 올리는 물은 같은 물이에요. 종교도 그렇다는 거예요. 부르는 이름과 가는 길이 달라도 닿으려는 그 하나는 같다는 거죠. 머리로 정리한 결론이 아니라 자기가 몸으로 다 걸어 본 뒤에 한 말이라, 무게가 달랐어요.

비베카난다는 처음엔 라마크리슈나를 의심했어요. 배운 것 많은 청년 눈에, 시골 사제의 황홀경은 그저 착각처럼 보였거든요. 한동안 시험하듯 따지고 들었어요. 그런데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사람의 말과 삶이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라마크리슈나는 돈도 명예도 정말로 바라지 않았고, 누구에게나 같은 마음으로 대했어요.
결국 비베카난다는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였어요. 스승은 1886년에 목의 병(암으로 알려져 있어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함께한 시간은 5년 남짓으로 길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5년이 청년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죠.
스승이 떠난 뒤, 비베카난다는 인도 곳곳을 걸어서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봤어요. 그리고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종교 대회 무대에 섰어요. 그가 "미국의 형제자매 여러분"이라는 한마디로 인사를 열자, 수천 명의 청중이 한참 동안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져요. 그는 거기서 말했어요. 어느 종교도 남을 틀렸다고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고요. 글 한 줄 안 남긴 스승의 체험이, 제자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바다 건너 서양에까지 전해진 순간이었어요.
좋은 생각도 전할 사람이 없으면 한 사람 안에서 끝나요. 반대로 전하는 재주만 좋고 알맹이가 없으면 금방 들통나죠. 라마크리슈나는 알맹이는 가득했지만 책도 안 쓰고 멀리 나가지도 않은 사람이었어요. 비베카난다는 그 알맹이를 알아보고, 자기가 배운 언어와 논리로 정리해 세상에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요. 스승의 체험과 제자의 표현이 만나서, 한 사원지기의 조용한 깨달음이 한 시대의 생각으로 퍼진 거예요. 좋은 재료를 가진 농부와 그걸 요리해 널리 내놓는 요리사가 만난 것과 비슷해요.

라마크리슈나는 어려운 책을 쓴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여러 종교의 길을 직접 다 걸어 보고, 도착하는 자리는 하나더라고 몸으로 보여 준 사람이에요. 비베카난다는 그 체험을 의심에서 시작해 확신으로 받아들였고, 세상에 전한 제자예요. 두 사람을 같이 기억하면 좋은 건, 깊은 체험과 그것을 전하는 말이 만났을 때 비로소 생각이 멀리 간다는 점이에요. 종교가 다르다고 다툴 때, 같은 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뿐일 수 있다는 이 오래된 비유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