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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가 약속을 어겨서 화가 났다고 해봐요. 그 순간 우리 머릿속에는 이런 그림이 그려져요.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화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화를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침착한 내가 있다고요. 마치 경비실에 앉아 모니터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경비원처럼요. 화면 속에서는 누가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의자에 앉아 그걸 구경하는 거죠.
우리는 보통 이게 당연하다고 여겨요. "나는 화가 났지만, 화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그걸 지켜보고 있어" 하고요. 보는 나와 보이는 화, 이렇게 둘로 나뉘어 있다고 믿는 거예요.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경비원은 화면 속 말썽을 보고 가만히 있지 못해요. "저 화를 빨리 없애야 해", "이런 내가 부끄러워", "착한 사람은 화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화를 밀어내려고 하죠. 그러면 화는 더 세게 버텨요.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요.
생각해 보면 화를 지켜본다는 그 침착한 나도, 사실은 화 때문에 생겨난 거예요. 화가 없었으면 지켜볼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보는 나와 보이는 화는 원래 한 덩어리인데, 우리가 억지로 둘로 쪼갠 뒤 서로 싸우게 만든 셈이에요. 한 사람이 거울 앞에서 자기 그림자와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죠.
이 이야기를 평생 파고든 사람이 인도에서 태어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예요. 1895년에 태어난 그는 어릴 때 한 종교 단체에 의해 "세상을 구할 위대한 스승"으로 점지돼요. 그를 따르는 조직까지 만들어졌고, 회원이 수천 명에 이르렀어요.
그런데 1929년, 서른네 살의 그는 사람들 앞에서 그 조직을 스스로 해산해 버려요. "진리는 길이 없는 땅이다"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요. 누구도 정해진 길이나 스승이나 경전을 따라 진리에 닿을 수 없다는 뜻이었어요. 그는 교회도, 교단도, 어떤 권위도 믿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각자 자기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라고 평생 말했죠. 1986년 아흔한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요.

그가 남긴 말 가운데 핵심이 바로 "관찰자가 곧 관찰 대상이다"라는 말이에요. 어렵게 들리지만, 앞에서 본 화 이야기 그대로예요.
화를 지켜보는 나(관찰자)와 지켜봐지는 화(관찰 대상)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순간만큼은 내가 곧 화예요. 화라는 게 따로 떨어진 물건처럼 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잠깐 화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파도가 바다와 따로 떨어진 무언가가 아니라 바다가 잠깐 솟아오른 모습인 것처럼요. 그러니 화를 미워하는 나도, 미워지는 화도, 알고 보면 같은 물에서 일어난 한 가지 일이에요.

이걸 진짜로 알아차리면, 신기하게도 싸움이 멈춰요. 화를 없애려고 애쓰는 또 다른 내가 사라지니까요. 미워하고 누르고 도망치려는 그 모든 몸부림이, 화를 둘로 나눠 놓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거든요.
나누지 않고 그냥 화를 화로서 가만히 바라보면, 화는 자기 모습을 다 보여 주고는 스르르 가라앉아요. 손에 쥔 모래를 꽉 쥐면 빠져나가지만, 손을 펴고 가만히 두면 그대로 머무는 것과 비슷하죠. 크리슈나무르티가 권한 자기 관찰은 이렇게 판단하지 않고 그냥 보는 일이었어요. 고치려는 사람 없이 보는 것, 그게 그가 말한 진짜 관찰이에요.

우리는 화나 두려움이 생기면 그걸 지켜보는 또 다른 내가 따로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는 보는 나와 보이는 감정이 원래 한 덩어리라고 말했어요. 둘로 쪼개는 순간 누르고 미워하는 싸움이 시작되고, 하나임을 알아차리면 그 싸움이 멈춘다는 거예요. 누구의 권위도 빌리지 말고 그저 자기 마음을 판단 없이 바라보라는 것, 이 한 가지가 그가 평생 전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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