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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진화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 이런 그림이 떠올라요. 물고기가 물 밖으로 기어 나와 도마뱀이 되고, 원숭이를 거쳐 사람이 되는 그림이요. 다윈이 밝힌 건 사실 '몸'의 변화예요. 추운 곳에선 털 많은 몸이, 높은 나뭇잎을 먹어야 하는 곳에선 목이 긴 몸이 더 잘 살아남아 대를 이어 남는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백여 년 전, 한 인도 사람이 이 그림을 가만히 보다가 다른 질문을 던졌어요. "몸만 변했을까? 그 안에 든 마음은 그대로일까?" 생각해 보면 물고기가 느끼는 것과 사람이 느끼는 건 같을 리가 없잖아요. 물고기는 배고픔 정도를 알지만, 사람은 어제 한 말을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니까요. 그러니 진화한 건 몸만이 아니라 '느끼고 아는 힘', 곧 의식도 함께 자라온 게 아닐까. 이 질문을 평생 붙들고 늘어진 사람이 오로빈도 고시예요.

오로빈도 고시는 1872년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완전히 영국 신사로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곱 살밖에 안 된 아이를 영국으로 보냈죠. 덕분에 그는 인도 말보다 영어와 라틴어, 그리스어를 먼저 익혔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할 만큼 머리도 뛰어났어요. 말하자면 서양식 교육을 끝까지 받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스무 살 무렵 인도로 돌아온 그는 처음엔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어요. 영국 지배에 맞서 글을 쓰고 사람들을 모았고, 그러다 한때 감옥에도 갇혔어요. 그런데 그 감옥에서 조용히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면서, 관심이 바깥세상에서 안쪽으로 천천히 옮겨가요. 1910년, 그는 인도 남쪽의 작은 도시 퐁디셰리로 떠나요. 그리고 195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40년을 그곳에서 명상하고 글을 쓰며 보냈어요. 거리에서 싸우던 사람이, 마음을 파고드는 사람으로 바뀐 거죠.

그가 평생 매달린 생각은 이래요. 세상은 맨 처음 '물질'에서 시작했어요. 돌멩이나 흙처럼 그냥 가만히 있는 것들이요. 그 물질에서 어느 날 '생명'이 돋아났어요. 풀과 벌레처럼 자라고 움직이는 것들이죠. 그다음엔 '마음'이 피어났어요.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처럼요.
오로빈도는 이걸 한 칸씩 올라가는 계단으로 봤어요. 물질, 생명, 마음.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더 또렷하게 깨어 있는 계단이요. 그러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남아요. 사람의 마음이 이 계단의 꼭대기일까요? 그는 아니라고 봤어요. 마음 위에 더 높은 칸이 있고, 그는 그걸 '초정신'이라고 불렀어요. 사람은 다 올라온 도착점이 아니라, 다음 칸으로 막 발을 옮기려는 중간에 선 존재라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애벌레 같아요. 애벌레는 평생 기어 다니는 게 자기 전부인 줄 알지만, 사실은 나비가 되기 직전이잖아요. 오로빈도는 지금의 사람도 그런 애벌레라고 본 거죠. 우리는 우리가 끝인 줄 알지만, 아직 날개를 펴기 전일지 모른다는 거예요.

여기서 그의 생각이 특별해져요. 보통 '깨달음'이라고 하면 시끄러운 세상을 등지고 산속이나 동굴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려요. 그런데 오로빈도는 정반대로 말했어요. 더 높은 의식에 닿았다면, 그걸 혼자 간직하지 말고 다시 '이 세상'으로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고요.
그는 이 길에 '통합 요가'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요가라고 하면 몸을 쭉쭉 늘이는 운동만 떠올리기 쉽지만, 원래 요가라는 말은 '잇는다'는 뜻이에요. 몸과 마음, 그리고 더 높은 의식까지 따로 놀지 않게 하나로 잇는다는 거죠. 산으로 도망치는 대신 밥 먹고 일하고 사람과 부딪치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의식을 키워가는 것, 그게 그가 말한 수행이에요. 그에게 세상은 벗어나야 할 감옥이 아니라, 함께 자라야 할 밭인 셈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오로빈도의 생각은 과학으로 증명된 건 아니에요. 초정신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걸 딱 떨어지는 사실이라기보다, 하나의 커다란 상상이나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게 정직해요.
그래도 이 생각에는 묘한 울림이 있어요. 우리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완성된 게 아니라, 아직 자라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거요. 사소한 일에 화내고 자주 다투는 오늘의 나도, 더 깊고 너른 마음으로 한 칸 더 올라갈 여지가 남아 있다는 거죠. 끝났다고 생각하면 멈추지만, 자라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한 걸음 더 내딛게 되잖아요.

오로빈도 고시는 다윈이 말한 몸의 진화 너머, '의식'도 함께 진화해 왔다고 본 인도의 사상가예요. 물질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마음으로 한 칸씩 올라온 계단의 다음 칸을 그는 '초정신'이라 불렀고, 사람은 그 도착점이 아니라 중간에 선 존재라고 봤어요. 그리고 그 길은 세상을 떠나서가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 걷는 '통합 요가'라고 했고요.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나도 아직 자라는 중일지 모른다는 생각만큼은 오래 마음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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