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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약 1800년 전, 그러니까 서기 3세기 무렵의 인도에서는 토론이 일종의 스포츠 경기였어요.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고, 학자들이 차례로 나와 "세상은 이렇게 생겼다"며 자기 이론을 펼쳤죠.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제자가 되거나 생각을 바꿔야 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상금 대신 '제자'가 걸린 토론 배틀인 셈이에요.
그 무대에 아리아데바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한자로는 제바, 또는 외눈이라는 뜻을 담아 가나제바라고도 불렸죠. 그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나가르주나의 수제자였어요. 그런데 이 사람, 토론하는 방식이 좀 이상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내 답이 맞다"고 외치는데, 아리아데바는 자기 답을 내놓는 대신 상대의 말을 하나하나 따져서 무너뜨리기만 했거든요. 오늘 이야기는 그가 왜 그랬는지에 대한 거예요.

그가 남긴 대표작이 바로 사백론이에요. 이름 그대로 사백, 400개의 짧은 시구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한 구절이 네 줄짜리라, 16개의 장에 25개씩 가지런히 나뉘어 있어요. 외우기 좋게 운율을 붙인, 일종의 '철학 노래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앞쪽 절반은 우리가 매일 하는 생각의 착각을 다루고, 뒤쪽 절반은 그 시대 다른 학파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요. 그래서 사백론을 읽으면 '아, 이 사람은 뭔가를 새로 세우려는 게 아니라 자꾸 무너뜨리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돼요. 바로 이 '무너뜨리는 방식' 자체가 이 책의 핵심이에요.

먼저 앞쪽 이야기예요. 아리아데바는 우리가 네 가지를 거꾸로 본다고 말해요.
첫째, 곧 사라질 것을 영원할 거라 여겨요. 아이스크림은 손에 쥔 순간부터 녹는데도, 우리는 그 맛있는 순간이 계속될 것처럼 굴죠. 둘째, 사실은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이라 착각해요. 셋째,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 여기고요.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데, 내 안에 '나'라는 변하지 않는 단단한 알맹이가 들어 있다고 믿어요.
이건 사람을 야단치는 말이 아니에요. 그냥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게 작동한다는 담담한 관찰이에요.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마음속에서 딱 멈춰 세워 놓고, 그게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해요. 아리아데바는 바로 그 멈춰 세우는 버릇을 건드리려 한 거예요.

자, 이제 사백론의 진짜 핵심 논증이에요. 아리아데바가 끝까지 밀어붙인 질문은 이거였어요. "그 무엇이든,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존재하는 게 있을까?"
자전거를 떠올려 보세요. 바퀴와 안장과 페달과 체인을 다 떼어 놓고 "자, 이제 자전거 본체만 가져와 봐" 하면, 남는 게 없어요. 자전거는 부품들이 모여 굴러갈 때만 '자전거'라고 불리는 거지, 부품과 따로 떨어진 자전거라는 단단한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거든요. 부품을 빌려서, 그것들이 모인 동안만 잠깐 '자전거'인 거예요.
아리아데바는 세상 모든 것이 이렇다고 봤어요. 무엇이든 부분으로 쪼개고, 그것을 있게 한 원인과 조건을 하나씩 걷어내고 나면, '그것 자체'라고 손에 쥘 만한 게 남지 않아요. 이렇게 다른 것에 기대서만 잠깐 모습을 갖추는 성질을, 불교에서는 비어 있다는 뜻으로 공이라고 불러요.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라, 혼자 버티고 설 수 있는 단단한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에요. 앞서 말한 '나'라는 알맹이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아리아데바는 왜 토론에서 따지기만 하고 자기 주장은 세우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가 "세상의 진짜 정답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나를 딱 세웠다면, 그 순간 그 주장도 부분으로 쪼개지고 반박당하고 말 거예요. 그가 남들에게 했던 그대로요. 그래서 그는 아예 고정된 답 하나를 손에 쥐지 않기로 한 거예요.
의사를 생각하면 쉬워요. 좋은 의사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약 하나를 건네지 않아요. 환자마다 다른 병을 찾아 그것만 덜어내 주죠. 아리아데바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게 정답이야'라는 약을 파는 대신, 사람들이 꽉 붙들고 있던 착각을 하나씩 풀어 줬어요. 손에 쥔 게 없으니, 누구도 그의 손을 비틀어 그 답을 빼앗을 수 없었죠.

이 '무너뜨리는 철학'은 그 한 사람의 별난 취향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사백론과, 같은 방식으로 쓴 그의 또 다른 책은 훗날 중국과 한국, 일본의 불교에 깊이 스며들었어요. 특히 그의 짧은 논서는 스승 나가르주나의 책들과 함께 묶여, 동아시아에서 한 학파의 기둥이 되었죠.
7세기에는 월칭이라는 학자가 사백론에 친절한 해설을 따로 붙이기도 했어요. 새 답을 세우지 않는 철학이 어떻게 이렇게 오래 이어졌을까요. 답을 세우면 언젠가 낡지만, 착각을 푸는 방법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쓸모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아리아데바는 약 1800년 전, 나가르주나의 뒤를 이어 '혼자 설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400개의 시구로 벼려 낸 사람이에요. 사백론의 핵심은 새로운 정답을 세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붙들고 있던 착각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는 데 있었어요.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 단단한 '나'가 있다고 믿었던 것도 부분으로 쪼개 보면 끝내 잡을 알맹이가 없다는 것 — 이 빈손의 가르침이 그가 토론에서 따지기만 했던 진짜 이유예요. 무언가를 더 채워 넣는 철학이 아니라, 꽉 쥔 손을 살며시 펴게 하는 철학이었던 거죠.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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