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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가 갑자기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 사실은 저 아래 연못이랑 똑같이 낮아"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농담인가 싶어서 웃어넘길 거예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300년쯤 전, 중국에 이런 말을 아주 진지하게 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혜시예요. 게다가 이 사람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말까지 남겼어요. 산이 연못만큼 낮다고 우기던 사람이 왜 갑자기 사랑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놀랍게도 이 두 말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혜시는 기원전 370년쯤부터 310년쯤까지 살았던 중국 학자예요. 그 시절 중국은 여러 나라가 서로 다투던 때라, 똑똑한 사람은 왕 옆에서 나랏일을 돕거나 말솜씨로 상대를 이기는 토론을 즐겼어요. 혜시는 위나라에서 재상,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국무총리 같은 높은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었어요. 동시에 책을 어찌나 많이 읽었던지, 그의 책이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만큼 많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그가 속한 무리는 명가라고 불러요. 이름과 말이 진짜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혜시는 특히 장자라는 유명한 철학자의 단짝이자 토론 맞수였어요. 한 가지 유명한 장면이 있어요. 어느 날 장자가 다리 위에서 물속 물고기를 보며 "저 물고기 참 즐겁겠다"라고 하자, 혜시가 곧장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거운지 어떻게 아나?"라고 따졌대요.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말에도 정말 그러냐고 되묻는 게 혜시다운 모습이었어요. 재미있게도 혜시가 직접 쓴 책은 거의 사라지고, 그의 생각은 친구 장자의 책에 짧게 적혀 오늘까지 전해졌어요.

혜시 생각의 출발점은 의외로 간단해요. "크다, 작다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여러분 손에 든 지우개는 작죠. 그런데 개미한테 그 지우개는 올려다봐야 하는 거대한 건물이에요. 반대로 여러분 키는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선 클 수도 있지만, 농구 선수들 사이에 서면 금세 작아져요. 똑같은 물건, 똑같은 키인데 무엇과 견주느냐에 따라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 거예요. 혜시는 이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갔어요. 그래서 "산은 연못만큼 낮다"는 말이 나온 거예요. 저 높은 하늘에서 까마득히 내려다보면, 산이든 연못이든 그저 땅바닥에 잡힌 작은 주름일 뿐이니까요.

혜시는 시간도 이렇게 봤어요. 그가 남긴 말 중에 "오늘 길을 떠났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아리송한 수수께끼가 있어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죠? 그런데 가만 보면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것도 누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지금 이 순간도 한국은 낮이지만 지구 반대편은 한밤중이라 날짜가 다르잖아요. 또 내가 보낸 어제가, 더 어린 동생에겐 한참 뒤의 미래처럼 멀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혜시는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나눠 둔 크다 작다, 어제 오늘 같은 경계들이 사실은 딱 잘라 정해진 게 아니라고 콕콕 짚었어요.

혜시는 같다와 다르다도 똑같이 봤어요. 이걸 어려운 말로 합동이라고 해요. 같음과 다름을 함께 묶어 본다는 뜻이에요. 쉽게 생각해 볼게요. 사과랑 귤은 다르죠? 그런데 둘 다 과일이라는 점에선 같아요. 사과랑 자동차는 훨씬 더 다르지만, 둘 다 이 세상에 있는 물건이라는 점에선 또 같아요. 이렇게 보면 세상 모든 것은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다 같다고도, 다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혜시는 가장 크게 보면 만물은 전부 같으면서 동시에 전부 다르다고 했어요. 결국 이건 이것, 저건 저것이라고 칼같이 나누는 선은 우리가 편하려고 그어 놓은 금일 뿐, 원래부터 거기 있던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까지 따라오면 혜시의 마지막 생각이 저절로 나와요. 크고 작음, 같고 다름을 가르는 선이 진짜가 아니라면, 나와 너, 사람과 나무, 하늘과 땅을 가르는 선도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그래서 혜시는 "하늘과 땅은 한 몸이다"라고 정리했어요. 물 한 방울과 넓은 바다를 떠올려 보세요. 방울 하나만 보면 따로 떨어진 것 같지만, 결국 둘 다 같은 물이잖아요. 세상 모든 것도 그렇게 알고 보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본 거예요.

이제 사랑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보일 거예요. 세상 모든 것이 나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면, 남을 아끼는 일은 사실 나를 아끼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내 발이 아프면 내가 알아서 돌보듯이요. 그래서 혜시는 "만물을 사랑하라"고 말한 거예요. 이건 그냥 착하게 살자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세상은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 그게 당연하다는 그의 논리에서 끝에 나온 결론이에요. 산이 연못만큼 낮다는 엉뚱해 보이던 말이, 빙 돌고 돌아 따뜻한 이야기로 이어진 셈이죠.

혜시는 크다 작다, 같다 다르다가 무엇과 견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고 봤어요. 그렇게 모든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다면, 세상 만물은 결국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남을 사랑하는 일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되고, 만물을 사랑하라는 말이 당연한 결론이 돼요. 다음에 무언가를 보고 크다, 작다, 다르다고 느낄 때, 혜시라면 옆에서 "무엇과 견주어서요?"라고 슬쩍 되물었을 거예요. 그 한마디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게 해 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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