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에게 "저기 빨간 사과 있다" 하면서 손가락으로 쓱 가리켜요. 친구는 곧장 사과를 쳐다보죠. 너무 당연해서 생각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300년쯤 전, 중국에 이 당연한 장면을 붙잡고 머리 아픈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공손룡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방금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사실 사과가 아니야."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이건 꽤 진지한 철학 이야기예요. 천천히 따라와 보세요.

공손룡은 기원전 300년 무렵, 중국이 여러 나라로 쪼개져 다투던 전국시대를 살았어요. 그는 '명가'라는 학파의 대표 인물이었어요. 명가는 쉽게 말하면 '이름과 말을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들'이에요. 공손룡은 평원군이라는 귀족 밑에 머물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이름이 실제 사물과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파고들었어요. 가장 유명한 주장은 "흰 말은 말이 아니다"예요. 또 "단단함과 흼은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견백동이라는 논리도 폈고요. 오늘 볼 건 그중에서도 손가락과 사물에 관한 이야기, 지물론이에요.

손가락으로 사과를 가리킬 때, 우리가 실제로 붙잡는 건 뭘까요? 사과라는 덩어리 그 자체일까요? 공손룡은 아니라고 봤어요. 우리가 알아채는 건 '빨강' '둥긂' '반질반질함' 같은 성질들이에요. 사과라는 물건은 사실 이런 성질들이 한 다발로 묶인 거예요. 그래서 공손룡은 세상 모든 사물은 결국 '가리켜진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건, 그것의 성질을 하나하나 가리켜서 붙잡는다는 뜻이에요. 빨강을 가리키고, 둥근 모양을 가리키고, 그렇게 모인 게 사과인 거죠.

여기서 공손룡이 슬쩍 비틀어요. 우리는 빨강도 가리키고 둥긂도 가리킬 수 있어요. 그런데 '가리킨다'는 행위 그 자체를, 빨강을 가리키듯 손가락으로 콕 집을 수 있을까요? 그건 안 돼요. 가리키는 손가락은 늘 다른 무언가를 향하지, 자기 자신을 향하진 못하거든요. 그래서 그는 "사물은 모두 가리켜진 것인데, 가리킴 자체는 가리켜진 것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손전등을 떠올리면 쉬워요. 손전등은 온갖 물건을 비춰서 보여 주죠. 그런데 그 빛 자체를 다시 비춰서 볼 수는 없어요. 비추는 쪽은 늘 비춰지는 쪽 바깥에 있는 거예요.

그냥 머리 굴리기 좋아하는 사람의 궤변처럼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공손룡이 붙잡고 싶었던 건 '이름과 실제'의 관계예요. 이름은 사물을 가리키는 도구예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도구와 대상을 헷갈려요. '빨강'이라는 말과 진짜 빨간 사과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식이죠. 공손룡은 이 둘이 다르다는 걸 자꾸 일깨우고 싶었어요. 말과 약속이 마구 어긋나던 전국시대에, 그는 '이름을 정확히 쓰자'는 문제의식을 이런 까다로운 논리로 풀어낸 거예요. 사실 이 지물론은 원문이 워낙 짧고 아리송해서,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는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려요. 그래서 누구도 "이게 정답이다"라고 못 박긴 어려워요.

공손룡은 우리가 손가락으로 사물을 가리킬 때, 실제로 붙잡는 건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성질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가리켜진 것이지만, 가리키는 행위만큼은 결코 가리켜지지 않는다는 묘한 역설을 남겼죠. 손전등이 모든 걸 비추되 제 빛만은 못 비추는 것처럼요. 말장난 같아 보여도, 그 속엔 '이름이라는 도구와 진짜 사물을 헷갈리지 말자'는 오래된 고민이 담겨 있어요. 2300년 전 사람이 던진 이 질문이 아직도 우리를 갸웃하게 만든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