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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날 중국에 공손룡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지금으로부터 2300년쯤 전, 기원전 300년 무렵 조나라라는 나라 사람이었죠.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국경 검문소에 "말을 데리고는 못 지나간다"는 규칙이 있었대요. 그런데 공손룡이 흰 말을 타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대요. "흰 말은 말이 아니니까, 저는 지나가도 됩니다."
검문소 관리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흰 말도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냐 싶잖아요. 이 한마디 때문에 공손룡은 그 뒤로 2천 년 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정말 그냥 우기기였을까요?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한 겹만 벗겨 보면, 생각보다 이야기가 깊어요.

공손룡의 속셈은 이래요. '말'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동물의 생김새, 그러니까 네 다리에 갈기가 있고 히힝 우는 그 모양을 가리켜요. 그럼 '흰색'은요? 색깔을 가리키죠. 모양과 색깔은 서로 다른 거예요.
쉽게 비유해 볼게요. 친구한테 "과일 좀 가져와" 하면 사과든 귤이든 가져오면 돼요. 그런데 "빨간 과일 가져와" 하면 귤은 안 되죠. '과일'이라고 할 때 받아들여지던 게 '빨간 과일'이라고 하면 빠져나가요. 두 말이 가리키는 범위가 다른 거예요.
공손룡은 똑같은 걸 말에 적용했어요. "말 주세요" 하면 누런 말, 검은 말 다 돼요. 그런데 "흰 말 주세요" 하면 누런 말, 검은 말은 안 되죠. 받아들여지는 게 달라요. 그러니 '흰 말'과 '말'은 똑같은 이름이 아니다, 이게 그의 주장이에요. 진짜로 흰 말이 동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흰 말'이라는 이름과 '말'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범위가 같지 않다는 거죠.

공손룡에게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단단하고 흰 돌멩이 하나를 두고 한 말이에요.
눈을 감고 돌을 만져 보세요. 단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흰색인지는 손으로 알 수 없죠. 이번엔 멀리서 눈으로만 보세요. 희다는 건 보이는데, 단단한지는 눈으로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단단함'과 '흰색'은 한 번에 같이 잡히지 않아요. 손에는 단단함만, 눈에는 흰색만 들어오죠.
공손룡은 여기서 "그렇다면 단단함과 흰색은 사실 따로 떨어져 있는 성질이다"라고 봤어요. 우리가 '단단하고 흰 돌' 하고 한 덩어리로 부르지만, 뜯어 보면 서로 다른 감각으로 잡히는 다른 성질이라는 거예요. 이걸 어려운 말로 견백론이라고 해요. 단단할 견 자에 흰 백 자를 써서 견백론이죠.

여기서 옛날 사람들도 두 편으로 갈렸어요. 한쪽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고 했어요. 흰 말이 말이지 뭐냐, 일부러 헷갈리게 말 뒤집기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실제로 같은 시대 학자들 상당수가 그를 못마땅해했어요.
그런데 가만 보면 공손룡이 건드린 건 꽤 진지한 문제예요. 바로 '이름'과 '실제'가 어떻게 들어맞느냐는 거죠. 우리는 세상을 말로 잘라서 불러요. '말', '흰 말', '단단함' 이렇게요. 그런데 이 말들이 가리키는 범위는 저마다 달라요. 그걸 뭉뚱그리면 엉뚱한 결론이 나와요. 공손룡은 이 틈을 일부러 후벼서 보여 준 거예요. 그가 속한 학파를 명가라고 불러요. 이름 명 자를 써서, 이름과 실제의 관계를 따지던 사람들이죠.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은 공손룡을 단순한 말장난꾼으로만 보지 않아요. 언어와 논리를 진지하게 분석한 동아시아의 이른 시도로 보기도 해요. 궤변이냐 논리냐, 사실 이 둘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아요. 같은 논증을 두고도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이건 2300년 전 남의 나라 옛날이야기로 끝나지 않아요. 우리도 매일 비슷한 헷갈림 속에 살거든요.
예를 들어 누가 "이건 사기 아니야"라고 말할 때, '사기'라는 말의 범위를 슬쩍 좁혀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광고에서 "주스 100퍼센트"라고 할 때, 그 100퍼센트가 무엇의 100퍼센트인지 따져 본 적 있나요? 말의 범위를 정확히 짚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속아요. 공손룡이 흰 말로 보여 준 게 바로 이거예요. 말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같은 단어도 가리키는 게 조금씩 다르다는 것 말이에요.
그러니 그의 흰 말 이야기는 말꼬리 잡기인 동시에, 말을 정확히 쓰자는 오래된 경고이기도 해요.

공손룡은 기원전 300년 무렵 중국의 철학자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와 '단단함과 흰색은 따로 있다'는 주장으로 유명해요. 얼핏 우기기 같지만, 그가 진짜 건드린 건 '이름과 실제가 어떻게 들어맞는가'라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누구는 궤변이라 하고 누구는 논리라 했지만, 분명한 건 그가 말의 틈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들여다봤다는 거예요. 다음에 누군가 단어 하나로 슬쩍 빠져나가려 할 때, 흰 말을 타고 국경에 선 그를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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