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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친구 둘이 다퉜다고 해 봐요. 한 친구가 여러분에게 "내가 맞지?" 하고 물으면 "응, 네가 맞아"라고 해 주고, 잠시 뒤 다른 친구가 와서 "내가 맞지?" 하면 또 "응, 네가 맞아"라고 해 준다면 어떨까요. 둘 다 기분은 좋겠지만, 가만히 들어 보면 좀 이상하죠. 같은 다툼인데 양쪽이 다 맞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말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중국 정나라라는 작은 나라에 살던 등석이라는 사람이에요. 기원전 501년쯤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니, 공자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이에요. 그는 말로 옳고 그름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재주로 유명했어요. 오늘은 이 등석이 던진 오래된 질문, 바로 '이름과 실재' 이야기를 풀어 볼게요.

먼저 어려워 보이는 말부터 쉽게 바꿔 볼게요.
'실재'는 실제로 있는 바로 그것이에요. 눈앞의 사과, 강에 떠 있는 물건, 친구가 한 행동 같은 거요. '이름'은 거기에 우리가 붙이는 말이에요. "이건 사과야" "이건 옳은 행동이야" 할 때의 그 말이죠.
가게의 가격표를 떠올리면 쉬워요. 물건은 진짜로 거기에 있고(이게 실재예요), 가격표는 사람이 붙여 놓은 종이(이게 이름이에요)죠. 보통 우리는 가격표가 물건에 딱 맞게 붙어 있다고 믿어요. 그런데 누가 가격표만 슬쩍 바꿔 단다면요? 물건은 그대로인데 값은 달라지죠.
등석이 평생 가지고 논 게 바로 이 틈이에요. 실제 일은 하나인데, 거기에 붙이는 말은 이리저리 바꿀 수 있다는 거요.

등석에 대해 전해 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부잣집 사람이 강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는데, 그 시신을 다른 한 사람이 건져서 가지고 있었대요. 부잣집에서는 시신을 돌려받으려 했지만, 건진 사람이 큰돈을 요구했어요. 난처해진 부잣집 식구가 등석을 찾아가 물었죠. 등석은 이렇게 말했어요. "걱정 말고 가만히 계세요. 그 시신은 당신 집 말고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으니, 결국 상대가 값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시신을 건진 사람도 마음이 급해 등석을 찾아왔어요. 등석은 그에게도 똑같이 차분하게 말했어요. "걱정 말고 가만히 계세요. 저 집은 당신 말고는 시신을 구할 데가 없으니, 결국 당신이 부르는 값을 낼 수밖에 없어요."
양쪽에 정반대로 조언했는데, 신기하게도 두 말이 다 그럴듯해요. 사람들은 이런 등석의 솜씨를 '양가지설'이라고 불렀어요. 쉽게 말하면 '이쪽도 되고 저쪽도 된다'는 말솜씨예요.

여기서 등석이 보여 준 게 정말 중요해요.
시신이 강가에 있다는 사실은 하나예요. 바뀌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에 "느긋하게 기다리는 쪽이 이긴다"는 말을 붙이면, 그 말은 부잣집 편에도 붙고 건진 사람 편에도 붙어요. 같은 사실 위에 정반대의 결론이 둘 다 올라앉는 거죠.
이게 바로 '이름과 실재의 논쟁'의 출발점이에요. 우리는 보통 '옳다'는 말이 옳은 일에만 딱 붙는다고 믿어요. 가격표가 물건에 붙어 있듯이요. 그런데 등석은 말솜씨만으로 그 딱지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어요. 말과 사실이 우리 생각보다 헐겁게 붙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좀 아찔한 질문이 생겨요. 옳고 그름을 말로 이렇게 바꿀 수 있다면, '진짜 옳음'이라는 게 따로 있기는 한 걸까요? 이름과 실재는 어떤 사이여야 할까요? 등석 뒤에 온 사람들은 바로 이 질문을 붙들고 오래 다퉜어요.

등석의 마지막 이야기도 이 질문과 맞닿아 있어요.
그는 백성들에게 소송하는 법, 그러니까 말로 따지고 다투는 법을 가르쳐 주고 그 대가로 옷가지 같은 걸 받았다고 해요. 또 나라의 법을 대나무 조각에 적은 '죽형'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의 말재주가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여겨졌고, 결국 정나라의 높은 관리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어요.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에요. 그를 죽인 쪽이 정작 등석이 만든 죽형은 그대로 가져다 썼다고, 좌전이라는 옛 기록은 전해요. 사람은 미워했지만 그가 정리한 규칙은 쓸모가 있었던 거죠. 등석 본인의 삶조차도 '같은 것을 미워하면서 동시에 받아들이는' 양가지설처럼 흘러간 셈이에요.

등석은 뒷날 '명가'라고 불리는 무리의 먼 출발점으로 여겨져요. '명가'는 이름 그대로 '이름을 따지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이들은 등석이 열어 둔 질문을 더 멀리 밀고 갔어요. 예를 들어 등석보다 한참 뒤의 공손룡이라는 사람은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말장난 같은 유명한 주장을 펼쳤어요. '흰 말'이라는 이름과 '말'이라는 이름이 같지 않다는 거였죠. 듣자마자 "에이, 흰 말도 말이지!" 싶지만, 막상 반박하려 들면 말과 사실의 관계를 깊이 파고들게 돼요. 등석이 처음 벌려 놓은 그 틈이, 이렇게 점점 더 진지한 철학 문제로 자라난 거예요.

등석은 약 2500년 전, 같은 사실을 두고 양쪽에 정반대로 말해 주던 사람이었어요. 그가 보여 준 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말(이름)'과 '실제 일(실재)'이 우리 생각만큼 단단히 붙어 있지 않다는 발견이었어요. 강가의 시신은 하나여도, 거기 붙는 '옳음'은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어요. 이름과 실재는 어떤 사이여야 하는지, 진짜 옳음은 어디에 있는지를요. 자기가 만든 법에 걸려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까지도, 이 오래된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 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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