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축구를 하는데 규칙집을 심판 한 사람만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디까지가 반칙인지, 무엇이 골인지 선수는 몰라요. 심판이 "반칙"이라고 외치면 그냥 반칙이 되는 거예요. 억울해도 따질 방법이 없어요. 규칙 자체를 못 봤으니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중국에서는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어요. 법이 있긴 한데,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나라를 다스리는 귀족뿐이었어요. 백성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벌을 받곤 했지요. 오늘 이야기할 등석이라는 사람은, 바로 이 "심판만 아는 규칙"에 처음으로 시비를 건 인물이에요.

등석은 중국의 정나라라는 작은 나라에 살던 사람이에요. 기원전 545년쯤 태어나 기원전 501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져요. 마흔네 살쯤까지 산 셈이지요. 직업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굳이 요즘 말로 옮기면 변호사이자 법률 선생님, 그리고 말로 따지는 법을 가르치는 논객에 가까웠어요.
그 무렵 정나라에는 큰 변화가 있었어요. 자산이라는 재상이 나라의 법을 청동 솥에 글자로 새겨 사람들 앞에 내걸었거든요. 그전까지 귀족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법을, 처음으로 눈에 보이게 박아 놓은 거예요. 큰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등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등석은 자기 나름의 법조문을 만들어 대나무 조각에 새겼어요. 이걸 죽형이라고 불러요. 죽은 대나무를 뜻하고, 형은 형벌이라고 할 때의 그 형이에요. 말 그대로 "대나무에 적은 형벌 규정"이지요.
중요한 건 이게 나라가 공식으로 펴낸 법전이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관청 도장이 찍힌 게 아니라, 한 개인이 만들어 백성에게 건넨 법이었어요. 그래서 죽형을 흔히 민간의 법전이라고 불러요. 게다가 청동 솥은 수백 킬로그램이라 한자리에 박혀 있지만, 대나무 조각은 가벼워서 보따리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었어요. 누구든 펼쳐 보고 "내 경우엔 이 조항이 맞다"고 들이밀 수 있게 된 거예요. 법이 처음으로 백성 손안에 들어온 순간이었어요.

등석은 법을 나눠 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어요. 백성에게 송사에서 이기는 법, 그러니까 말로 따져 이기는 기술을 직접 가르쳤어요. 수업료도 받았는데, 큰 소송을 맡으면 옷 한 벌, 작은 소송이면 바지 한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그의 특기는 같은 일을 두고도 "이렇게 봐도 맞고, 저렇게 봐도 맞다"며 양쪽 모두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거였어요. 이걸 양가지설, 곧 "둘 다 가능하다는 주장"이라고 해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강이 넘쳐 정나라의 한 부자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누군가 그 시신을 건져 올렸어요. 시신을 건진 사람은 값을 비싸게 부르려 했고, 애가 탄 가족이 등석을 찾아가 물었어요. 등석은 이렇게 말했어요. "걱정 마세요. 그 시신을 살 사람은 당신네밖에 없으니, 가만히 기다리면 값이 내려갑니다." 그런데 시신을 건진 사람도 마음이 급해 등석을 찾아왔어요. 등석은 또 이렇게 말했어요. "걱정 마세요. 저 가족은 당신 말고는 시신을 구할 데가 없으니, 가만히 기다리면 값이 올라갑니다." 양쪽에게 정반대로, 그러나 둘 다 맞는 말처럼 들리게 조언한 거예요.

이런 등석을 두고 누군가는 그저 말재주꾼이라고 흉봤어요. 하지만 그 안에는 진지한 물음이 숨어 있어요. "옳다"와 "그르다"가 사실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흔들린다는 것, 그래서 이름과 말을 따지는 일이 그만큼 힘이 세다는 것을요.
등석은 훗날 명가라고 불리는 흐름의 맨 앞자리에 놓여요. 명가는 말과 이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실제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끝까지 파고든 사람들이에요.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같은 어리둥절한 따지기로 유명하지요. 등석의 "둘 다 맞다"는 논법이 바로 그 출발점에 가까웠어요. 말의 빈틈을 파고들어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다시 묻는 버릇, 그게 명가의 씨앗이었던 거예요.

이 재주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동시에 권력자들을 불안하게 했어요. 법을 귀족이 독점하던 시절에, 등석은 백성에게 따지는 무기를 쥐여 준 셈이니까요. "옳고 그름이 말하기 나름"이 되면, 다스리는 쪽은 질서가 무너진다고 느꼈어요.
결국 등석은 정나라 집권자의 손에 처형당했어요. 그런데 여기에 묘한 반전이 있어요. 그를 죽인 바로 그쪽이, 정작 그가 만든 죽형은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사람은 위험하다며 없앴지만, 그가 만든 법은 쓸모가 있어 남긴 거예요. 등석의 몸은 사라져도 그의 생각은 살아남은 셈이지요.

등석은 법이 귀족만의 것이던 시절, 그 법을 대나무에 새겨 백성 손에 쥐여 준 사람이에요. 그가 만든 죽형은 나라가 아니라 한 개인이 펴낸 민간의 법전이었고, 그는 백성에게 말로 따져 이기는 법까지 가르쳤어요. 양쪽 다 그럴듯하게 만드는 그의 말솜씨는 권력자에겐 위험해 보였고, 끝내 목숨을 잃었지요. 하지만 그가 남긴 법전은 살아남았어요. 규칙은 모두가 펼쳐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옳고 그름은 따져 봐야 안다는 태도가 등석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오래된 질문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