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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으로부터 2천5백 년쯤 전, 중국에 정나라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어요. 어느 해 큰비가 쏟아져 강물이 크게 불었고, 그 바람에 마을의 부자 한 사람이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며칠 뒤, 동네 사람 하나가 강가에서 그 시신을 건져 올렸지요. 부자의 가족은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그건 우리 식구예요. 제발 돌려주세요." 그런데 시신을 건진 사람은 쉽게 내주려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값을 부르기 시작했지요.

가족은 곤란해졌어요. 세상에 그 시신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고, 그 시신을 꼭 데려와야 하는 사람도 가족뿐이었거든요. 다른 데서 구할 수가 없으니, 부르는 값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치를 수밖에 없어 보였어요. 마치 소나기가 퍼붓는데 우산 파는 가게가 온 동네에 딱 하나뿐인 상황과 비슷해요. 그 가게가 우산값을 열 배로 올려도, 비를 맞기 싫으면 사야 하니까요. 답답해진 가족은 마을에서 말솜씨로 이름난 한 사람을 찾아갔어요. 그 사람이 바로 등석이에요.

등석은 가족의 이야기를 듣더니 뜻밖의 말을 했어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 시신을 사 갈 사람은 이 세상에 댁들밖에 없어요. 그 사람은 시신을 다른 누구에게도 팔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결국 값을 낮춰서라도 댁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답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어요. 가족은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이번엔 시신을 건진 사람이 애가 탔어요. 가족이 도무지 찾아오질 않으니까요. 시신은 그냥 두면 썩어 버릴 텐데, 그러면 한 푼도 못 받게 되잖아요. 그도 결국 등석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등석은 이번에도 차분히 말했어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그 시신을 살 수 있는 곳은 댁밖에 없어요. 가족은 다른 어디서도 그 시신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가만히 있기만 하면, 결국 댁이 부르는 값을 치르러 올 수밖에 없답니다."
자, 좀 이상하지 않나요? 등석은 사는 쪽에게도, 파는 쪽에게도 똑같이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칼자루는 당신이 쥐고 있어요"라고 말한 거예요. 두 말은 정반대인데, 듣는 사람한테는 둘 다 그럴듯하게 들렸어요.

등석은 기원전 501년에 세상을 떠난, 정나라의 이름난 말꾼이었어요.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 재판에서 이기는 법, 그러니까 말로 상대를 누르는 법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어요. 큰 송사를 맡아 주면 옷 한 벌, 작은 송사면 짧은 윗도리와 바지를 받았다고 전해져요. 요즘으로 치면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와 비슷한데, 아직 그런 직업이라는 게 없던 아주 옛날이었지요. 사람들은 그의 재주를 '양가지설', 곧 어느 쪽이든 다 옳게 만드는 말솜씨라고 불렀어요. 옳다고 우기면 옳아 보이고, 그르다고 우기면 그래 보이게 만드는 힘이요. 물에 빠진 시신 흥정 이야기가 바로 그 솜씨를 보여 주는 장면이에요.
등석은 뒷날 '명가'라고 불리는 무리의 먼 조상으로 꼽혀요. 명가는 말과 이름이 실제와 들어맞는지를 따지던 사람들인데, 한참 뒤의 공손룡이라는 사람은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같은 아리송한 주장으로 유명해지지요. 등석은 그런 말 따지기의 출발점쯤에 서 있던 셈이에요. 다만 그는 말재주가 너무 날카로웠던 탓인지, 결국 나라의 높은 사람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이 이야기를 적어 남긴 옛 책 '여씨춘추'는 등석을 칭찬하려고 이 일을 기록한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경고하려고 적었지요.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쪽이든 다 옳게 만들 수 있다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 자체가 사라져 버리니까요. 책은 이렇게 꼬집어요.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면, 옳고 그름에 잣대가 없어진다고요. 말이 진실에서 똑 떨어져 나와 그저 이기기 위한 도구가 되면, 똑똑한 말일수록 위험해진다는 뜻이에요.
그렇다고 등석의 말이 쓸모없기만 한 건 아니에요. 같은 상황도 보는 자리에 따라 정반대로 풀이된다는 그의 눈썰미는, 훗날 사람들이 말과 논리를 진지하게 따져 보게 만든 씨앗이 되었거든요. 똑똑한 말과 옳은 말은 다르다는 것, 등석은 그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틈을 2천5백 년 전에 이미 보여 준 사람이에요.

물에 빠진 시신을 두고, 등석은 사는 쪽에도 파는 쪽에도 "당신이 유리하니 느긋하게 기다리라"는 똑같은 말을 해 줬어요. 두 말은 정반대였지만 둘 다 그럴듯했지요. 여기서 기억할 건 이거예요. 말은 같은 일도 정반대로 그려 낼 만큼 힘이 세고,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과 옳은 것은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이요. 등석은 그 힘을 누구보다 잘 다뤘지만, 동시에 그 힘이 기준 없이 쓰일 때 얼마나 위험한지도 함께 보여 준 사람이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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