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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날 중국 정나라에 큰 강이 하나 있었어요. 어느 날 홍수가 나서 한 부잣집 사람이 그 강에 빠져 목숨을 잃었어요. 그런데 그 시신을 어떤 사람이 건져 냈지요. 부잣집 식구들은 시신이라도 찾아 장례를 치르고 싶어서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시신을 건진 사람이 어마어마한 돈을 불렀어요.
답답해진 식구들은 동네에서 말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어요.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그 시신은 당신들 말고는 사 갈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식구들은 마음을 놓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시신을 건진 쪽이 초조해졌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돈이 안 들어오니까요. 그 사람도 같은 조언자를 찾아갔어요. 그러자 조언자가 또 이렇게 말했어요. "느긋하게 기다리세요. 저 식구들은 당신 말고는 시신을 구할 데가 없으니까요."
같은 사람이, 정반대 입장에 선 두 사람에게, 똑같이 "기다리면 당신이 이긴다"고 말해 준 거예요. 이 사람이 바로 등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양쪽 모두에게 "당신 말도 가능하다"고 해 주는 말솜씨를 두고 양가지설, 곧 '둘 다 가능하다는 주장'이라고 불러요.

등석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쯤 전, 춘추시대 끝 무렵의 정나라 사람이에요. 기원전 501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니, 공자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셈이지요.
그는 오늘날로 치면 변호사 비슷한 일을 했어요. 송사, 그러니까 재판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이럴 땐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 주고 보수를 받았거든요. 큰 사건을 맡으면 겉옷 한 벌, 작은 사건이면 짧은 옷 한 벌을 받았다고 해요. 그에게 말 다루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하니, 꽤 잘나가는 선생이었던 거예요.
게다가 그는 법조문을 대나무 조각에 적어 정리한 죽형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말을 다루는 데 능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규칙 자체에도 깊이 손을 댄 사람이었지요.

양가지설은 어려운 말 같지만, 핵심은 단순해요. 같은 일을 두고 "이렇게 봐도 맞고, 저렇게 봐도 맞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학교에서 친구 둘이 다투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한 명이 "네가 먼저 밀었잖아" 하면, 옆에서 누군가 "맞아, 먼저 민 사람이 잘못이지" 하고 거들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사람이 다른 친구에게 가서는 "네가 밀린 건 쟤가 길을 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잖아, 그러니 막은 사람 잘못이지"라고도 할 수 있지요. 어느 쪽 편에 서느냐에 따라, 말은 양쪽 다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어요.
등석은 바로 이 재주의 달인이었어요. 시신 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그는 어느 편에 서든 그 편이 이길 이유를 척척 만들어 냈어요. 진실이 어느 한쪽에 딱 있는 게 아니라, 말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왔다 갔다 한 거예요.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같은 사실을 두고 양쪽 다 맞다고 해 버리면, 도대체 무엇이 진짜 옳은 건지 알 수 없게 되거든요.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잣대가 사라지는 거예요.
옛 기록은 등석을 이렇게 꼬집어요. 그는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여, 옳고 그름에 정해진 기준이 없어지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날마다 바뀌게 만들었다고요. 그래서 그가 이기게 해 주고 싶은 쪽은 이기고, 벌주고 싶은 쪽은 벌을 받았다고 해요. 말의 기술만으로 결과를 주물렀다는 뜻이지요.
이게 바로 궤변이에요. 겉으로는 빈틈없이 들어맞는 것 같은데, 사실을 밝히기보다 사실을 흐리는 데 쓰이는 말이니까요. 결국 그는 권력자에게 위험한 인물로 찍혔고, 기원전 501년 정나라의 집권자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를 죽인 사람들조차 그가 만든 죽형은 그대로 가져다 썼답니다.

등석의 양가지설이 단순히 "말 잘하는 사기꾼" 이야기였다면, 2500년 동안 전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가 보여 준 건 좀 더 깊은 것이었어요. 바로 '말'과 '실제 일'이 따로 놀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는 보통 말이 사실을 그대로 비춘다고 믿어요. 하지만 등석은 같은 사실 위에 정반대의 말을 둘 다 세울 수 있다는 걸 보여 줬어요. 말이 거울이 아니라, 손으로 빚는 찰흙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바로 이 지점에서 명가라는 학파가 자라났어요. 명가는 '이름과 실제가 어긋날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파고든 사람들이에요. 등석은 그 물음을 가장 먼저, 가장 떠들썩하게 던진 사람 중 하나였던 거예요.

등석은 춘추시대 끝 무렵 정나라에서, 재판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던 사람이었어요. 그는 강에 빠진 부자의 시신을 두고 양쪽에 정반대 조언을 해 주듯, 어느 편에 서든 그 편이 이길 이유를 만들어 냈어요. 이렇게 "이렇게 봐도 맞고 저렇게 봐도 맞다"고 하는 말솜씨가 양가지설이에요. 그 덕에 옳고 그름의 기준이 흔들렸기에 사람들은 이를 궤변이라 불렀고, 그는 결국 처형당했지요. 하지만 그가 던진 물음, 곧 말이 사실과 따로 놀 수 있다는 깨달음은 명가라는 학파로 이어졌어요. 등석을 기억할 때 떠올릴 한 가지는 이거예요. 똑같은 사실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으니, 그럴듯한 말일수록 "그래서 진짜는 뭐지?" 하고 한 번 더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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