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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때는 1896년 여름, 인도 남부의 한 집에서 열여섯 살 소년이 갑자기 온몸이 굳었어요. 다친 데도 아픈 데도 없는데 '내가 곧 죽는다'는 공포가 느닷없이 덮친 거예요. 보통 우리라면 무서워서 울거나 어른을 부르겠죠. 그런데 이 소년은 방바닥에 가만히 누워 자기 자신에게 물었어요. '정말 죽는다면, 죽는 건 대체 누구지?' 소년은 숨을 멈추고 시체처럼 누워 몸이 굳고 차가워지는 장면을 떠올려 봤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몸은 죽어 가는데, 그 몸이 죽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무언가'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더래요. 소년은 그 자리에서 속부터 완전히 달라졌고, 훗날 사람들은 그를 라마나 마하르시라고 불렀어요. 1879년부터 1950년까지 살다 간 인도의 성자예요.

우리가 하루에 던지는 질문은 거의 다 바깥을 향해요. 저녁 뭐 먹지, 시험 언제지, 쟤는 왜 저럴까. 그런데 라마나가 평생 붙든 질문은 딱 하나였고, 방향이 정반대였어요. 바로 '나는 누구인가'예요. 좀 싱겁게 들리죠? 하지만 곰곰이 보면 꽤 이상한 질문이에요. 우리는 '내가 배고파', '내가 화났어', '내가 잘했어'라고 하루에도 수백 번 '나'를 말하면서, 정작 그 '나'가 무엇인지는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거든요. 라마나는 이 '나'라는 느낌이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는지, 그 뿌리를 거꾸로 따라가 보라고 했어요. 자기 자신을 안쪽으로 들여다본다는 뜻에서, 이걸 자기탐구라고 불러요.

그렇게 '나'를 따라가다 보면 사실 '나'가 두 겹이라는 게 보여요. 먼저 우리가 평소에 '나'라고 철석같이 믿는 쪽이 있어요. 키가 몇이고, 시험을 못 보면 속상하고, 칭찬받으면 우쭐해지는 나. 라마나는 이쪽을 에고라고 불렀어요. 에고는 밤하늘의 달과 비슷해요.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의 빛을 받아 되비출 뿐이잖아요. 에고도 그래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 떠오를 때마다 '내 생각', '내 기분', '내가 한 일'이라고 찰싹 달라붙어서 자기가 주인공인 척해요. 그러다 생각이 잠잠해지면 에고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요. 그래서 라마나는 에고를 '제 몸이 없는 손님' 같다고 봤어요. 붙잡을 거리가 있어야만 있는 척할 수 있는, 좀 얄미운 손님이죠.

그러면 진짜 나는 어디 있을까요. 라마나는 영화관을 떠올려 보라고 했어요. 스크린 위에서는 불이 나고, 비가 쏟아지고, 사람들이 울고 웃어요. 장면은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고 바뀌죠. 그런데 그 모든 장면이 비치는 스크린 자체는 젖지도, 타지도, 변하지도 않아요. 그냥 늘 그 자리에 조용히 있을 뿐이에요. 라마나는 이 스크린 같은 것을 참나라고 불렀어요. 기쁨도 슬픔도 온갖 생각도 다 지나가는 영화고, 그것들이 오고 가는 걸 가만히 아는 바탕이 바로 참나라는 거예요. 열여섯 살 소년이 죽음 앞에서 만난 '지켜보는 무언가'가 바로 이거였어요. 몸도 기분도 바뀌고 사라지지만, 그걸 아는 자리만은 변함없이 남아 있다는 거죠.

여기서 라마나의 가르침이 특별한 이유가 나와요. 그는 어려운 경전을 통째로 외우라거나 몸을 괴롭히는 복잡한 수행을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방법은 오히려 단순했어요.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그 감정을 붙들고 끙끙 싸우는 대신 '지금 이걸 느끼는 나는 누구지?' 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물어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나'의 뿌리를 자꾸 들여다보면, 모든 걸 제 것이라 우기던 에고가 슬그머니 힘을 잃고, 변하지 않는 참나가 저절로 드러난다고 했어요. 답을 머리로 알아내는 게 아니라, 묻는 동안 가짜가 흐려지고 진짜가 남는 셈이에요.

라마나는 이 깨달음을 말로만 떠든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깨달은 뒤 아루나찰라라는 산이 있는 작은 마을로 가서, 세상을 떠난 1950년까지 쉰 해 넘게 그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어요. 더 놀라운 건 가르치는 방식이에요. 멀리서 사람들이 답을 구하러 찾아와도,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저 찾아온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라앉았다고 해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하나, 그리고 그 질문을 살아 낸 한 사람의 고요함. 그게 그가 평생 남긴 거의 전부였어요.

라마나 마하르시 이야기는 결국 '나'라는 익숙한 말 한 단어로 돌아와요. 우리가 매일 쓰는 그 '나'에는 두 겹이 숨어 있어요. 떠오르는 생각과 기분에 달라붙어 주인공인 척하지만 생각이 멎으면 사라지는 에고, 그리고 그 모든 게 오고 가는 걸 변함없이 지켜보는 바탕인 참나예요. 라마나는 이 둘을 떼어 내라고 어렵게 설명하는 대신, 그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끈질기게 물으라고 했어요. 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묻는 동안 가짜가 흐려지고 진짜가 남는다는 거죠. 다음에 속상하거나 우쭐할 때, 그 기분을 느끼는 내가 누구인지 가만히 한 번 물어보세요. 라마나가 평생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 자리가, 어렴풋이 보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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