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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명함을 한 장 떠올려 볼게요. 거기엔 이름이 적혀 있고, 회사와 직책이 들어가 있어요. 누가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물으면 우리는 보통 이 명함에 적힌 것들로 대답해요. "저는 아무개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해요"처럼요.
그런데 가만 보면 이상해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 주신 거예요. 직업은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거고요. 나이도 해마다 바뀌어요. 그러면 이 이름표를 한 장씩 떼어 냈을 때, 맨 마지막에 남는 '나'는 대체 무엇일까요?
백 년쯤 전 인도에 살았던 한 사람은 평생 이 하나의 질문만 붙들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라마나 마하르시예요.

라마나 마하르시는 1879년 인도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원래 이름은 벵카타라만,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열여섯 살이던 어느 날, 갑자기 강한 죽음의 공포가 덮쳤어요. 아픈 데도 없는데 곧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죠. 보통은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을 텐데, 이 소년은 반대로 했어요. 방바닥에 가만히 누워서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좋아, 지금 죽는다고 치자. 그럼 죽는 건 누구지?"
소년은 그 답을 머리로 풀지 않고 직접 들여다봤어요. 몸은 곧 굳어서 화장터로 옮겨지겠죠. 하지만 그 몸을 '내 몸'이라고 바라보는 무언가는 죽지 않고 그대로 깨어 있는 것 같았어요. 몸은 사라져도 '나'라는 느낌 자체는 멀쩡히 남아 있더라는 거예요. 이 짧은 경험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았어요.

이 일을 겪은 뒤 그가 사람들에게 권한 방법은 딱 하나였어요.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나는 누구인가?"라고 되묻는 거예요. 인도 말로는 '나 야르'라고 해요.
이게 왜 이상하냐면, 보통 우리는 질문의 답을 바깥에서 찾잖아요. "행복하려면 뭘 해야 하지?", "이 일을 어떻게 풀지?" 그런데 마하르시는 답을 찾기 전에, 그 질문을 하고 있는 '나'부터 보라고 했어요.
영화관을 떠올리면 쉬워요. 화면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깜짝 놀라요. 그런데 진짜인 건 화면 속 괴물이 아니라, 뒤에서 빛을 쏘는 영사기와 그 빛을 받아 내는 하얀 스크린이에요. 마하르시는 말했어요. 기쁨도 슬픔도 걱정도 다 화면에 잠깐 지나가는 장면일 뿐이고, 그걸 가만히 비추고 있는 스크린 같은 '나'가 따로 있다고요.

그럼 그 '나'를 어떻게 찾을까요? 방법은 생각을 거꾸로 따라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화가 났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멈추고 물어요. "이 화를 느끼는 나는 누구지?" 그러면 '화'에 쏠려 있던 시선이 '나' 쪽으로 한 꺼풀 돌아와요. 다시 물어요. "그 나는 또 누구지?" 이렇게 자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화'라는 생각은 슬그머니 힘을 잃고, 답하기 전의 고요한 자리만 남는다고 해요.
마하르시는 이걸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 단순하게 봤어요. 모든 생각은 '나'라는 첫 번째 생각에 매달려 있다고요. '나는 배고프다', '나는 바쁘다', '나는 외롭다' — 전부 '나'가 앞에 붙어요. 그래서 이 '나'라는 뿌리 하나만 끝까지 추적하면, 거기 매달려 있던 나머지 생각들은 뿌리 잘린 나뭇잎처럼 저절로 떨어진다고 봤어요. 그렇게 비워진 자리가 바로 '진짜 나', 그가 말한 깨달음이에요.

열여섯의 그 경험 뒤, 그는 집을 떠나 아루나찰라라는 산으로 갔어요. 남인도에 있는 바위산인데, 한번 그곳에 자리 잡은 뒤로는 1950년 일흔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오십사 년 동안 그 산을 거의 떠나지 않았어요. 한 사람이 한자리에서 보낸 시간치고는 정말 길죠.
그는 책을 많이 쓰지도, 대단한 설교를 늘어놓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말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어요. 그래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어요. 화려한 가르침이 아니라, 그저 곁에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 그 고요함 때문이었다고 해요.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갈게요. '나는 누구인가'는 머리로 멋진 답을 지어내는 철학 시험이 아니에요. 마하르시에게 이건 직접 해 보는 연습이었어요. 정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조용히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그 행동 자체가 전부였던 거죠.

우리는 이름, 직업, 나이 같은 이름표로 '나'를 설명하며 살아요. 라마나 마하르시는 그 이름표를 다 떼어 낸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보라고 했고, 그 방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한 가지 질문을 평생 권했어요. 답을 바깥에서 찾는 대신 묻는 사람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 생각을 거슬러 그 뿌리인 '나'를 들여다보는 것 — 이게 그가 산 하나에서 오십 년 넘게 가리킨 길이에요. 어렵게 느껴진다면, 오늘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딱 한 번 "이걸 느끼는 나는 누구지?"라고 되물어 보는 것으로 충분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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