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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장면 하나를 그려 볼게요. 지금으로부터 2천 년쯤 전, 인도 서북쪽 땅을 다스리던 그리스계 왕이 있었어요. 이름은 밀린다, 그리스식으로는 메난드로스라고 불린 사람이에요. 멀리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따라 동쪽으로 온 그리스 사람들의 후손이 세운 나라의 왕이었죠. 이 왕은 머리가 좋고 따지기를 워낙 좋아해서, 만나는 스님마다 어려운 질문을 퍼부어 말문을 막히게 하기로 유명했대요.
그런데 나가세나라는 스님 앞에서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왕이 먼저 물었죠. “스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가세나는 이렇게 답했어요. “사람들은 저를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이름 속에 ‘나가세나’라는 사람이 따로 들어 있는 건 아닙니다.” 왕은 어리둥절했어요. 이름은 있다면서, 정작 그 사람은 없다니 무슨 말일까요? 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를 모은 책이 바로 밀린다왕문경이에요. 한자로 옮긴 판본은 나선비구경이라고 불러요.

나가세나는 곧바로 설명하는 대신 슬쩍 되물었어요. “왕께서는 무엇을 타고 오셨습니까?” “마차를 타고 왔소.” 그러자 스님이 부품을 하나씩 짚기 시작했어요.
“바퀴가 마차입니까?” “아니오.” “굴대가 마차입니까?” “아니오.” “손잡이가, 몸체가, 멍에가 마차입니까?” 왕은 계속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바퀴 하나를 번쩍 들고 “이게 마차야”라고 하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그렇다고 부품을 마당에 죽 늘어놓기만 한다고 마차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면 마차는 대체 어디 있을까요? 나가세나의 답은 이래요. ‘마차’란 바퀴와 굴대와 몸체가 알맞게 짜 맞춰져 굴러갈 때, 그 모임에 우리가 붙여 준 이름일 뿐이라고요. 부품 속을 아무리 뒤져도 ‘마차라는 알맹이’ 같은 건 따로 나오지 않아요. 이름은 분명히 쓸모가 있는데, 그 이름이 가리키는 단단한 본체는 어디에도 없는 셈이죠.

여기서 나가세나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나와요. “왕께서 마차를 이해하신 것처럼, 나가세나도 꼭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통 몸 어딘가,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 ‘진짜 나’라는 알맹이가 콕 박혀 있다고 느껴요. 몸이 늙고 기분이 오락가락해도 변하지 않는 중심 같은 거요. 그런데 마차처럼 한번 뜯어봐요. 머리카락이 나일까요, 손이 나일까요, 어제의 화난 기분이 나일까요, 방금 떠오른 생각이 나일까요? 마차의 바퀴가 그랬듯, 어느 것 하나도 혼자서는 ‘나’가 아니에요.
불교에서는 사람을 크게 다섯 묶음으로 나눠 봐요. 몸, 느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상, 마음의 움직임, 그리고 무언가를 아는 마음이에요. 이 다섯이 잠깐씩 모여서 함께 굴러가는 걸 두고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거예요. 축구팀 이름이 선수 한 명이 아니라 열한 명이 모여 뛰는 그 모임을 가리키는 것처럼요. 그래서 변하지 않는 ‘나’라는 알맹이는 따로 없다, 이걸 무아라고 해요.

왕은 역시 똑똑한 사람이라 바로 반격했어요. “잠깐, 변치 않는 나라는 게 없다면,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건 누구요? 나쁜 짓을 한 책임은 또 누가 진단 말이오?”
나가세나는 이번엔 등불을 가리켰어요. “밤새도록 등불을 켜 둔다고 해 봅시다. 초저녁의 불꽃과 한밤의 불꽃, 그리고 새벽의 불꽃이 같은 불꽃입니까?” 똑같지는 않아요. 기름은 계속 닳아 가고 불꽃은 매 순간 새로 타오르니까요. 그렇다고 아예 남남인 다른 불도 아니에요. 처음 붙인 불에서 끊김 없이 죽 이어진 하나의 불이니까요.
우유 이야기도 했어요. 우유는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요구르트가 되잖아요. 요구르트는 우유가 아니지만, 우유 없이 생겨나지도 않아요. 같지도 않고 아주 다르지도 않은, 이어짐인 거죠. 다시 태어남도 이렇대요. 변하지 않는 ‘나’가 통째로 짐 옮기듯 건너가는 게 아니라, 한 촛불이 옆 초로 옮겨 붙듯 흐름이 이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한 일의 책임도 그 끊기지 않는 흐름을 따라 함께 이어진다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 몸의 세포도 몇 해에 걸쳐 거의 다 바뀌고, 열 살 때 생각과 지금 생각도 꽤 달라요. 그런데도 우리는 ‘나는 태어나서 쭉 나였다’고 자연스럽게 느끼죠. 나가세나는 이 느낌의 정체를 2천 년 전에 콕 집어 말한 셈이에요. 변치 않는 알맹이가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나’처럼 보이는 거라고요.
이 대화가 특별한 건, 답을 윽박지르며 밀어붙이지 않고 마차라는 누구나 아는 물건으로 한 걸음씩 같이 걸어갔다는 점이에요. 묻고 답하며 생각을 차근차근 다듬어 가는 이 방식 덕분에, 밀린다왕문경은 불교에서 논리적으로 따져 묻는 대화의 멋진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나가세나는 그리스계 왕 밀린다와 마주 앉아, ‘나’란 마차와 같다고 풀어 준 스님이에요. 마차가 부품들의 모임에 붙인 이름이듯, ‘나’도 몸과 마음의 여러 묶음이 잠깐 모여 굴러가는 데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거죠. 그래서 변하지 않는 알맹이는 없지만, 등불이 밤새 이어지듯 흐름은 끊기지 않아요. 다음에 거울 속 내 얼굴을 볼 때, ‘이 안에 정말 변치 않는 알맹이가 있을까’ 하고 한 번 물어보면, 나가세나가 가리킨 그 마차가 슬며시 떠오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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