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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약 2천 년 전, 지금의 인도 북서쪽 지역에 메난드로스라는 그리스 출신 왕이 살았어요. 그곳 사람들은 그를 밀린다 왕이라고 불렀지요. 이 왕은 따지고 묻기를 무척 좋아해서, 이름난 스님들을 불러다 어려운 질문을 잔뜩 퍼붓곤 했어요. 웬만한 스님은 왕의 날카로운 물음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왕은 나가세나라는 비구를 만나요. 비구란 출가해서 수행하는 남자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왕이 먼저 점잖게 물어요. "스님, 존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러자 나가세나가 이렇게 답해요. "사람들은 저를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그 이름이 가리키는 '진짜 나가세나'라는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름은 있는데 그 이름의 주인은 없다니요. 왕은 어리둥절했겠지요.

말로만 옥신각신하는 대신, 나가세나는 왕이 타고 온 수레를 가리켜요. 그리고 하나하나 짚어 가며 물어요. "바퀴가 수레입니까?" 왕이 답해요. "아니요." "굴대가 수레입니까? 차체가, 손잡이가, 멍에가, 고삐가 수레입니까?" 무엇을 짚어도 답은 똑같이 "아니요"예요. 바퀴 하나를 번쩍 들고 "이게 수레야"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나가세나가 방향을 바꿔 물어요. "그렇다면 이 부품들을 마당에 그냥 수북이 쌓아 두면, 그게 수레입니까?" 바퀴랑 굴대랑 나무판을 잔뜩 쌓아 둔다고 거기 올라타 달릴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니 그것도 "아니요"예요.
가만 보면 신기하지요. 부품 하나하나도 수레가 아니고, 부품을 모아 둔 더미도 수레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분명히 무언가를 "수레"라고 부르며 잘만 타고 다녀요. 그럼 수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답은 이래요. 수레는 부품들과 따로 떨어져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바퀴와 굴대와 차체가 서로 알맞게 맞물려서 굴러갈 수 있게 짜였을 때, 그 짜임새에 우리가 붙여 준 이름이 바로 '수레'예요.
레고를 떠올리면 쉬워요. 블록 한 개는 자동차가 아니죠. 블록을 봉지째 와르르 쏟아 놓아도 아직 자동차가 아니에요. 블록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차근차근 끼워졌을 때, 우리는 그제야 "자동차"라고 불러요. 그리고 그 자동차는 블록들 말고 따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에요. 블록을 다시 다 빼 버리면 자동차도 같이 사라지니까요.
나가세나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예요. "나가세나"라는 이름도 똑같다는 거죠. 머리카락과 손톱과 살과 뼈, 그리고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의 흐름이 한데 모여 움직일 때, 그 모임에 붙인 이름이 '나가세나'일 뿐이라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이런 생각을 무아라고 불러요.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보통 몸이 자라고 생각이 바뀌어도, 그 속 어딘가에 평생 변하지 않는 '진짜 나'가 따로 들어앉아 있다고 느껴요. 하지만 나가세나는 수레를 분해하듯 사람을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알맹이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해요.
그렇다고 내가 가짜라거나 사라진다는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수레가 멀쩡히 길을 달리듯, 나도 분명히 밥을 먹고 친구와 이야기하며 살아가니까요. 다만 그 '나'가 꽁꽁 뭉쳐 영원히 그대로인 덩어리가 아니라, 매 순간 이어지면서 조금씩 변해 가는 흐름이라는 거예요. 갓난아기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 부르지만, 둘이 똑같지는 않은 것처럼요.

여기서 왕이 똑똑하게 되받아쳐요. "고정된 내가 없다면, 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는 대체 누가 하는 겁니까? 지금의 내가 없는데, 다음 생의 나를 어떻게 나라고 할 수 있나요?"
나가세나는 이번엔 촛불을 예로 들어요. 한 초에 붙은 불로 옆에 있는 다른 초에 불을 옮겨 붙이면, 두 번째 불꽃은 첫 번째 불꽃과 똑같은 불일까요, 아니면 아무 상관 없는 딴 불일까요? 똑같다고 하기도 어렵고, 완전히 남남이라고 하기도 어려워요. 첫 불이 있었기에 둘째 불이 생겨난 것이니까요.
윤회도 그렇대요. 다음 생은 지금의 내가 통째로 옮겨 가 앉는 것도 아니고,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낯선 누가 뚝 생겨나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의 흐름이 원인이 되어 다음 흐름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거예요. 마치 촛불이 촛불로 번지듯이요.

이 문답이 특별한 까닭은, 나가세나가 "그냥 믿으세요"라고 윽박지르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왕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눈앞의 수레와 촛불을 들어 차근차근 따져 보였지요. 어려운 가르침을 일상의 물건에 빗대어 풀어내는 이 방식 덕분에, 밀린다왕문경에 담긴 두 사람의 대화는 불교 안에서 이치를 따져 설명한 이른 본보기로 꼽혀요.
그래서 마지막에 한 가지 질문이 남아요. 내 이름이 가리키는 '나'도, 어쩌면 수레처럼 수많은 부품이 잠시 모여 함께 굴러가는 중인 건 아닐까요?

나가세나는 왕에게 수레를 분해해 보이면서, 부품 어디에도 '수레 그 자체'는 없고 부품이 맞물린 방식에 붙인 이름일 뿐이라고 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변치 않는 '진짜 나'라는 알맹이는 없다는 것이 무아예요. 그렇다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고, 촛불이 옆 초로 옮겨붙듯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 윤회고요. 어려운 생각을 눈앞의 물건으로 풀어낸 이 대화는, 그래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나는 무엇일까'를 다시 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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