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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저녁 무렵 산등성이 너머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봤다고 해봐요. 우리는 곧바로 "아, 저기 불이 났거나 누가 불을 피웠구나" 하고 생각하죠. 불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우리가 본 건 연기뿐인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보이지 않는 불을 그려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 하나를 단서 삼아, 보이지 않는 것을 끌어내는 생각의 방법을 '추론'이라고 해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걸 합니다. 친구 눈이 빨개진 걸 보고 울었나 보다 짐작하고, 바닥이 젖은 걸 보고 비가 왔구나 합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조차 안 하죠. 그런데 오늘 만날 옛 인도의 한 무리는 바로 이 익숙한 생각법에 고개를 갸웃했어요. "그거, 정말 믿어도 되는 거 맞아요?" 하고요.

기원전 인도에는 철학 학파가 여럿 있었어요.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 영혼, 죽은 뒤의 세계를 진지하게 이야기했죠. 그런데 그 사이에서 딱 한 무리만 정반대로 외쳤습니다. "우리는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본 것만 믿겠다." 이들이 바로 '차르바카'예요.
차르바카는 인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물질만이 진짜라고 본 학파였어요. 신도, 천국도, 다음 생도 없다고 했죠.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무도 그걸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요. 대신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삶을 누리라고 권했어요. 지금 여기, 손에 잡히는 것이 전부라고 본 거예요. 그래서 이들에게는 '무엇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믿음의 기준을 아주 깐깐하게 잡았거든요.

차르바카가 가장 날카롭게 따진 건 바로 '추론'이었어요. 연기를 보고 불을 떠올리는 그 생각법 말이에요. 이게 통하려면 마음속에 숨은 규칙 하나가 꼭 있어야 해요. "연기가 있는 곳엔 반드시 불이 있다"는 규칙이요. 이 규칙이 다리처럼 연기와 불을 이어 줘야, 우리는 연기라는 이쪽에서 불이라는 저쪽으로 안심하고 건너갈 수 있죠.
그런데 차르바카가 물었어요. "그 규칙, 당신은 어떻게 알았나요?" 부엌에서, 모닥불 앞에서 연기와 불을 같이 본 경험으로 알았겠죠. 하지만 당신이 본 건 세상의 연기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예요. 세상 모든 곳, 모든 시간의 연기와 불을 빠짐없이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렇다면 "반드시, 언제나"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어쩌면 당신이 한 번도 못 가 본 어느 구석엔, 불 없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다 보지 못한 채로 "전부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다리에는 이미 금이 가 있는 셈이에요.

누군가 이렇게 답할 수 있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늘 그랬으니 규칙은 맞아." 하지만 차르바카는 여기서 한 번 더 파고듭니다. "지금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알고 보면 또 하나의 추론이에요. 추론이 믿을 만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다시 추론을 끌어온 셈이죠.
이건 마치 "이 말이 진짜인 이유는, 내가 진짜라고 말했기 때문이야"처럼 제자리를 빙글빙글 맴도는 일이에요. 친구한테 "넌 왜 거짓말 안 해?"라고 물었더니 "내가 거짓말을 안 한다고 했으니까"라고 답하는 격이죠. 다리가 튼튼하다는 걸 보이려고, 바로 그 다리 위에 똑같이 생긴 다리를 또 한 번 올려놓는 거예요. 아무리 쌓아 올려도 처음의 의심은 풀리지 않아요. 그래서 차르바카는 결론지었습니다. 추론은 가끔 맞을 수는 있어도, 절대로 확실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요. 정말 확실한 건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것뿐이라고 했어요.

차르바카가 추론을 이토록 깐깐하게 따진 데는 큰 이유가 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이 믿던 신, 영혼, 죽은 뒤의 상과 벌은 하나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거든요. 그것들은 모두 추론으로만, 즉 "세상이 이러이러하니 분명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다"라는 논리로만 세워진 믿음이었어요.
그런데 그 추론이라는 다리에 처음부터 금이 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건너가는 길 자체가 흔들리는 거예요. 차르바카는 바로 그 점을 노렸습니다. 추론을 끝까지 믿을 수 없다면, 추론에 기대어 세운 내세와 신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거죠. 오늘날 과학자들도 "직접 확인되지 않은 건 섣불리 단정하지 말자"고 말하는데, 차르바카는 이천 년도 더 전에 그와 닮은 고민을 먼저 한 셈이에요.

차르바카는 연기를 보고 불을 떠올리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추론에 의문을 던진 사람들이었어요. 추론이 통하려면 "연기엔 늘 불이 따른다" 같은 규칙이 있어야 하는데, 그 규칙은 세상 모든 경우를 다 본 적 없는 우리가 결코 완벽히 보장할 수 없다는 거죠. 증명하려 들면 같은 추론을 또 끌어와 제자리를 맴돌 뿐이고요. 그래서 그들은 직접 겪은 감각만 믿고, 추론으로 세운 신과 내세는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당연하게 믿기 전에 "그걸 나는 어떻게 알았지?"라고 한 번 더 묻는 태도, 차르바카가 우리에게 남긴 건 바로 그 깐깐한 질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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