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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혹시 이런 친구 있나요? "내가 어제 너 봤다니까" 하고 누가 말하면, "증거 있어? 사진은?" 하고 되묻는 사람요.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만 믿고, 말로만 전해 듣는 이야기는 일단 한 발 물러서서 의심하는 사람이죠. 좀 깐깐해 보이지만, 사실 꽤 단단한 태도예요.
지금부터 만날 차르바카가 딱 그런 학파였어요. 약 2600년 전 인도에서, 이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직 지각만이 진리다."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해요.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것만 진짜로 인정하겠다는 거예요.

차르바카는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 그러니까 학파의 이름이에요. 로카야타라고도 불렸는데,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뜻에 가까워요. 발 딛고 사는 이 세상 이야기만 한다는 거죠.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당시 인도에는 여러 사상이 있었는데, 거의 다 신이나 영혼, 다시 태어나는 삶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모든 걸 "그건 못 봤잖아요" 하며 거부한 학파는 차르바카가 거의 유일했어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볼 때 혼자 반대편을 본 셈이죠.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되는 길은 여러 가지예요. 하나는 직접 보는 것. 다른 하나는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우리는 불을 직접 못 봤어도 '저기 불이 났구나' 하고 짐작하잖아요.
차르바카는 이 짐작을 영 미덥지 않게 봤어요. 연기인 줄 알았는데 안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짐작으로 쌓아 올린 이야기, 특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이나 천국 이야기는 믿지 않았어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 즉 지각만이 확실한 진리라고 본 거예요. 요즘 과학자가 "실험으로 확인되기 전엔 함부로 단정 못 합니다" 하는 태도와 닮았죠.

이 잣대를 들이대니 많은 것이 무너졌어요. 신을 본 사람? 없어요. 죽은 뒤의 천국이나 지옥을 다녀온 사람? 없어요.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 복을 받는다는 카르마? 그 다음 생도 아무도 못 봤죠.
그래서 차르바카는 이것들을 모두 거부했어요. 사람은 죽으면 몸이 흙과 물과 바람으로 돌아갈 뿐, 따로 떠도는 영혼 같은 건 없다고 봤고요. 몸이 사라지면 마음도 같이 꺼지는 촛불처럼요. 당시로서는 정말 대담한 생각이었어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워요. "그럼 막 살라는 거야?" 싶지만, 핵심은 좀 달라요. 내세가 없다면, 우리에게 확실한 건 지금 이 한 번의 삶뿐이에요. 그러니 미뤄 둔 천국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여기서 잘 살자는 거였죠.
전해지는 말 중에 "살아 있는 동안은 즐겁게 살라"는 구절이 있어요. 슬픔을 일부러 끌어안기보다, 눈앞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라는 거예요. 좋아하는 음식, 사랑하는 사람, 따뜻한 하루 같은 것들요. 보이지 않는 보상보다 손에 쥔 오늘을 더 귀하게 여긴 셈이에요.

차르바카의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대부분 이들을 반박하려던 다른 학파의 책 속에,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다'며 인용된 조각으로만 전해져요. 욕먹은 기록으로 겨우 살아남은 셈이죠.
그런데도 이 학파가 기억되는 이유가 있어요. 모두가 당연하게 믿는 것에 "정말 그래요? 본 적 있어요?" 하고 묻는 용기요. 그 질문하는 태도는 훗날 사람들이 세상을 더 꼼꼼히 살피게 만드는 씨앗이 됐어요. 답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묻는 법 자체가 귀했던 거예요.

차르바카는 약 2600년 전 인도에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진리로 인정한 학파였어요. 그래서 신과 내세와 카르마를 거부하고, 확실한 건 지금 이 한 번의 삶뿐이니 오늘을 잘 살자고 했죠. 영수증부터 보여 달라던 그 깐깐한 친구처럼요. 글은 거의 안 남았지만, '정말 그런지 본 적 있냐'고 되묻던 그 태도만큼은 오래 기억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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