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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날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칠판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옛 책을 풀어 주는 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어요. 분필을 쥐고 한자를 큼지막하게 쓰면서, 이천 년도 더 된 노자나 공자의 말을 마치 옆집 아저씨 이야기처럼 들려주던 분이죠. 손짓도 크고 목소리도 커서,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일단 눈이 가던 그 사람이 바로 도올 김용옥이에요. '도올'은 그가 스스로 지어 붙인 별명 같은 이름이고요.
보통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졸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이 사람은 반대였어요. 어려운 옛 글을 마치 밥상에서 반찬 집어 주듯이, 누구나 알아듣는 말로 떠먹여 주려고 한 사람이거든요.

김용옥은 1948년에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어요. 젊을 때부터 철학에 빠져서, 한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타이완, 일본, 그리고 미국 하버드 대학교까지 건너가 동양 고전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하버드에서는 옛 중국 사상가를 연구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요. 한마디로, 동양의 옛 책을 아주 오래, 아주 멀리까지 쫓아다니며 읽은 사람이에요.
그가 한 일을 쉽게 말하면 '번역'이에요. 그냥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번역이 아니라, 천 년 전 사람의 생각을 오늘 우리가 쓰는 말과 비유로 옮겨 주는 일이죠. 노자의 '도덕경', 공자의 '논어' 같은 책을 강의로 풀고 책으로 엮어서, 한문을 한 자도 모르는 사람도 '아, 저런 뜻이었구나' 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를 두고 '고전을 대중의 언어로 다시 쓴 사람'이라고 불러요.

여기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와요. 이렇게 책만 파던 철학자가, 어느 날 흰 가운을 입고 사람 몸을 진맥하는 한의사가 되었거든요.
사연은 이래요.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는데, 1986년에 스스로 교수 자리를 내려놓았어요. 시대가 답답하던 시절, 학생들 편에 서겠다며 사표를 던진 거예요. 그러고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어,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 들어가 몇 년 동안 한의학을 처음부터 배웠어요. 다 큰 어른이, 자기보다 한참 어린 동기들 사이에 앉아 침놓는 법과 약 짓는 법을 외운 거죠. 그렇게 한의사 자격증을 따서 실제로 환자를 보는 한의원까지 열었어요.
나이 마흔이 넘어 전혀 다른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건, 어른이 갑자기 자전거 대신 수영을 배우겠다고 물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해요. 보통은 엄두를 못 내죠. 그는 그걸 해낸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 한의학이었을까요? 여기에 그의 생각이 숨어 있어요.
서양에서는 오래도록 '생각하는 머리'와 '움직이는 몸'을 따로 떼어 보는 버릇이 있었어요. 철학은 머리의 일, 의학은 몸의 일, 이렇게요. 그런데 동양의 옛 사상은 달랐어요. 사람의 마음과 몸, 그리고 자연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봤죠. 김용옥에게 철학은 책 속에만 있는 멋진 말이 아니라, 우리가 밥 먹고 아프고 늙어 가는 진짜 삶의 이야기였어요. 그러니 사람 몸을 직접 만지고 고치는 한의학은, 그에게 철학의 반대편이 아니라 같은 길의 다른 입구였던 거예요.
그래서 그를 '철학자가 된 한의사', 또는 '한의사가 된 철학자'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그는 머릿속 생각과 손끝의 치료를 따로 두지 않고, 둘을 한 사람 안에서 이어 붙이려 한 셈이죠.

도올 김용옥은 천 년도 더 된 동양 고전을 누구나 알아듣는 우리말로 풀어 준 철학자예요. 그러면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의학을 처음부터 배워 한의사까지 된, 보기 드문 사람이고요. 이 두 가지가 따로 노는 취미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하나였어요. 생각과 몸, 옛 글과 오늘의 삶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믿음 말이에요. 그래서 다음에 어디선가 옛 책 이야기를 우렁차게 풀어 주는 그를 만나면, 저 사람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까지 더듬어 본 철학자라는 걸 떠올리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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