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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혹시 '도올'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나요? 도올은 김용옥이라는 한국 철학자가 쓰는 별명이에요. 1948년에 태어난 분인데, 노자와 공자 같은 동양 고전부터 서양 철학까지, 어려운 책을 누구나 알아듣게 풀어 주는 걸로 유명해요. 텔레비전 강의에서 칠판을 두드리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분도 많을 거예요.
그런 그가 어느 날 기독교 성경, 그중에서도 '요한복음'을 펼쳐 들고 강의를 시작했어요. 동양 철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웬 성경이냐고요? 그런데 그가 첫 문장을 읽는 방식이 좀 특별했어요. 서양 사람들이 오랫동안 읽어 온 방식과는 다른 눈으로 본 거예요.

예수의 삶을 전하는 복음서는 신약성경에 모두 네 권이 있어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이에요. 앞의 세 권은 예수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비슷한 시선으로 들려줘요. 마치 같은 사건을 본 세 친구가 비슷하게 증언하는 것 같죠.
그런데 마지막 요한복음은 분위기가 확 달라요. 사건을 줄줄이 전하기보다, 시처럼 깊고 철학적인 문장으로 문을 열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생각하게 만드는 복음서'로 불렸어요. 동양 철학을 평생 다뤄 온 도올의 눈에 이 책이 특별하게 들어온 것도 그래서예요.

요한복음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해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여기서 '말씀'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의 열쇠예요.
요한복음은 원래 그리스어로 쓰였는데, 이 '말씀' 자리에는 '로고스'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로고스는 입에서 나오는 말만 뜻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보이지 않는 질서,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원리까지 담은 아주 큰 말이에요. 사실 이 단어는 성경보다 훨씬 전부터 그리스 철학자들이 즐겨 쓰던 중요한 개념이었어요.
쉽게 비유해 볼게요. 요리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비법 레시피가 있죠. 세상에도 그런 '근본 레시피'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로고스가 바로 그거예요. 태초, 그러니까 세상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그 원리가 있었다는 말이에요.

도올이 무릎을 친 지점이 바로 여기예요. '로고스', 동양에도 이것과 똑 닮은 단어가 있거든요. 바로 노자가 말한 '도(道)'예요.
도는 원래 '길'이라는 뜻이지만, 동양 철학에서는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이치를 가리켜요. 로고스가 가리키는 것과 거의 똑같죠. 놀라운 건, 옛날 중국에서 성경을 한자로 옮길 때 요한복음의 이 첫 줄을 '태초유도(太初有道)', 곧 "태초에 도가 있었다"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이에요. 서양의 로고스가 동양의 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옮겨 간 거예요.
그러니까 도올은 이렇게 말한 셈이에요. "이 첫 문장은, 우리 동양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온 그 '도'와 똑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기독교는 서양 것, 동양 사상은 우리 것, 이렇게 따로 떼어 생각해요. 물과 기름처럼 안 섞인다고 여기죠. 그런데 도올의 읽기는, 그 둘이 사실 같은 산을 서로 다른 길로 오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보여 줘요.
요한복음의 첫 문장이 동양의 도와 통한다면, 예수가 전한 이야기도 한 종교만의 비밀이 아니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넓은 진리로 다가와요. 도올이 성경을 펼친 건 기독교를 믿으라고 권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멀어 보이던 동양과 서양이 결국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는 걸 함께 들여다보자는 초대에 가까워요.

도올 김용옥은 요한복음의 첫 문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동양 철학의 눈으로 다시 읽은 사람이에요. 여기서 '말씀'은 그리스어 '로고스', 곧 세상의 숨은 이치를 뜻하는데, 이것이 노자가 말한 '도'와 놀랍도록 닮았어요. 옛 중국 성경이 이 자리를 실제로 '도'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이 그 닮음을 잘 보여 주죠. 멀어 보이던 동양과 서양의 두 생각이 사실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 도올의 요한복음 읽기는 우리에게 그 다리를 살며시 건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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