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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외국 영화를 봤는데 자막이 어색했던 적 있나요? 분명 우리말로 적혀 있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이 덜컹거려서 무슨 말인지 곱씹어야 하는 자막 말이에요. 단어는 다 옮겼는데 뜻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거죠.
천오백 년쯤 전, 중국 사람들이 인도에서 온 불경을 읽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어요. 글자는 한자로 바뀌어 있는데, 읽어도 머리에 그림이 안 그려졌거든요. 바로 이 어색한 자막 같던 불경을, 누구나 읽고 외울 수 있는 글로 바꿔 놓은 사람이 쿠마라지바예요. 한자로는 구마라집이라고도 불러요.

쿠마라지바는 지금의 중국 서쪽 끝, 사막 한가운데 있던 쿠차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목이라, 인도 말도 들리고 중국 말도 들리는 곳이었죠.
아버지는 인도 사람, 어머니는 쿠차의 공주였다고 해요.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출가해서 일고여덟 살부터 불교를 배웠고, 인도 쪽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그는 인도 말로 된 불경의 속뜻과, 그걸 받아들일 중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둘 다 아는 드문 사람이었어요. 두 나라 말을 어릴 때부터 같이 쓰며 자란 사람이 통역을 제일 잘하는 것과 비슷해요.

쿠마라지바 이전에도 불경을 한자로 옮긴 사람들은 있었어요. 그런데 인도 불교에만 있는 낯선 개념을 옮길 한자가 없으니까,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중국 전통 사상의 단어를 빌려다 끼워 맞췄어요.
예를 들면 외국 음식 이름을 우리에게 익숙한 '된장찌개'쯤으로 바꿔 부르는 거예요. 대충 느낌은 통하지만, 정작 그 음식만의 맛은 사라지죠. 이렇게 끼워 맞추다 보니 불교의 본뜻이 중국 옛 사상 속에 묻혀 버리고, 글도 딱딱하게 직역되어 읽기 힘들었어요. 뜻은 비슷한데 핵심이 자꾸 비껴가는 자막이 된 거예요.

쿠마라지바는 4세기 끝 무렵, 중국 장안이라는 큰 도시로 초청을 받아 와요. 당시 왕이 그를 국가의 스승으로 모시고, 번역만 하는 큰 작업실을 차려 줬어요.
여기서 그는 혼자 번역하지 않았어요. 인도 말을 아는 그가 뜻을 풀어 말하면, 한문에 밝은 수백 명의 학승들이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을 함께 찾았어요. 한 구절을 놓고 여러 사람이 '이 표현이 더 매끄럽다, 저 말이 본뜻에 가깝다' 하며 의논한 거죠. 그래서 그의 번역은 정확하면서도 소리 내어 읽으면 운율이 살아 있었어요. 좋은 번역가가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균형을 잡듯, 그는 뜻을 지키면서도 입에 붙는 문장을 만들었어요.

쿠마라지바가 바꾼 건 문장만이 아니었어요. 그는 인도의 나가르주나라는 사상가가 세운 중관이라는 사고방식을 중국에 제대로 전했어요.
중관은 쉽게 말하면 '세상 모든 것은 홀로 정해진 알맹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관점이에요. 책상이 책상인 건 나무와 못과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로 한 약속이 모였기 때문이지, '책상이라는 고정된 알맹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런 생각을 담은 핵심 경전과 해설서를 그가 번역해 주면서, 동아시아 사람들은 처음으로 불교 철학을 또렷한 언어로 토론할 수 있게 됐어요.

그가 옮긴 글 중에는 금강경, 법화경, 유마경처럼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 많아요. 절에서 외우는 익숙한 구절 상당수가 그의 번역이에요.
신기한 건, 그가 고른 한자 표현이 너무 잘 맞아서 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쓰인다는 점이에요. 더 정확한 새 번역이 나중에 나와도, 사람들은 입에 붙은 그의 옛 번역을 더 사랑했어요. 좋은 자막 한 줄이 영화의 명대사로 굳어지는 것과 같아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가 세상을 떠나 화장된 뒤에도 혀만은 타지 않고 남았다고 해요. 번역에 거짓이 없었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두고두고 전한 이야기예요.

쿠마라지바는 인도와 중국 두 세계를 모두 아는 드문 위치에서, 어색하던 불경 자막을 누구나 읽고 외울 수 있는 글로 바꾼 사람이에요. 혼자가 아니라 큰 작업실에서 수백 명과 함께 뜻과 운율을 같이 다듬었고, 문장만이 아니라 중관이라는 사고방식까지 또렷한 언어로 옮겨 줬어요. 그래서 동아시아 불교는 비로소 제 언어로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게 됐고, 그가 고른 표현은 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입에 남아 있어요. 번역이 단순히 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 문명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일 수 있다는 걸 그가 보여 준 셈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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