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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새로운 음식을 처음 먹어 본 친구에게 설명한다고 해 볼게요. "이거 좀 김치 같은 맛이야"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금방 고개를 끄덕여요. 익숙한 김치에 빗댔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 음식이 김치와 전혀 다른 거였다면요? 듣는 사람 머릿속엔 엉뚱하게 '매콤하고 시큼한 무엇'이 자리 잡아요. 빗댄 말이 오히려 진짜 맛을 가린 거죠.
새로운 생각이 다른 나라로 건너갈 때도 꼭 이런 일이 벌어져요. 낯선 것을 익숙한 것에 끼워 맞춰 설명하면 전달은 빠르지만, 원래 뜻이 슬그머니 휘어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끼워 맞추기'를 정면으로 넘어선 사람이에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어요. 문제는 말이었어요. 불교에는 인도 사람들이 오래 다듬어 온 어려운 개념이 가득한데, 중국 사람들에겐 그걸 담을 단어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초기 번역가들은 손쉬운 방법을 택했어요. 중국에 이미 있던 도교, 그러니까 노자와 장자의 말에서 비슷해 보이는 단어를 빌려다 불교 개념에 붙인 거예요. 이렇게 뜻을 끼워 맞춰 불교를 설명하던 방식을 격의불교라고 불러요. 격의라는 말 자체가 '뜻을 맞춘다'는 뜻이에요.
빠르고 친절했지만, 김치 비유처럼 함정이 있었어요. 빌려 온 도교 단어의 그림자가 불교 본뜻 위에 자꾸 덧씌워졌거든요.

대표적인 게 '공'이라는 개념이었어요. 번역가들은 이걸 도교의 '무', 즉 '없음'에 빗대 설명했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불교가 "세상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친다고 오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불교에서 공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에요. 무지개를 떠올려 보세요. 무지개는 분명 눈앞에 떠 있지만,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단단한 '무지개라는 물건'은 어디에도 없어요. 햇빛과 빗방울과 내 눈의 위치가 마침 맞아떨어질 때만 잠깐 생겨나죠. 공이 바로 이런 거예요.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기대어 잠시 나타날 뿐, 혼자 영원히 버티는 단단한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에요. 있다고도 없다고도 못 박을 수 없는 그 가운데를 가리키죠.
'없음'으로 옮기는 순간 이 미묘한 가운데가 통째로 날아가 버려요. 그래서 더 정확한 번역이 절실했어요.

그 일을 해낸 사람이 쿠마라지바예요. 그는 지금의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길목에 있던 구자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인도 사람, 어머니는 그 나라 공주였고, 어린 나이에 출가해 인도 불교를 깊이 공부했어요. 특히 용수라는 인도 스님이 세운 중관 사상, 곧 공을 논리로 또렷하게 풀어낸 가르침에 통달했죠.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중국 장군이 구자를 정복하면서 그는 포로로 끌려갔고, 중국 서북쪽 변방에서 17년 가까이 붙잡혀 지냈어요. 그런데 이 긴 세월이 뜻밖의 준비가 됐어요. 그사이 중국말을 깊이 익힌 거예요. 인도 불교를 속속들이 알면서 중국말까지 능통한 사람, 번역에 이보다 맞춤한 사람은 없었어요.
마침내 약 1600년 전, 그는 수도 장안으로 초청돼 나라의 지원을 받는 번역소를 이끌게 돼요.

장안에서 쿠마라지바는 수백 명과 함께 서른 편이 넘는 불경을 새로 옮겼어요. 도교 단어를 빌려 끼워 맞추는 대신, 불교가 말하려던 뜻을 그대로 담을 중국말을 골라냈어요. 특히 스승처럼 여기던 용수의 중관 책들을 번역해, 공이 '없음'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있음'이라는 걸 또렷이 보여 줬어요.
이 작업으로 중국 불교는 비로소 격의불교를 넘어섰어요. 빌린 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불교를 불교의 언어로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가 옮긴 금강경과 법화경 같은 불경은 16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절에서 그대로 읽히고 있어요. 우리가 아는 동아시아 불교의 말투가 상당 부분 이 사람 손에서 다듬어진 셈이죠.

낯선 생각을 익숙한 말에 끼워 맞추면 전달은 빨라도 본뜻이 휘어요. 불교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도교 말을 빌려 설명하던 격의불교가 꼭 그랬고, 그 바람에 '공'은 '아무것도 없음'으로 오해받았죠. 쿠마라지바는 인도 불교와 중국말을 모두 깊이 아는 드문 사람이었고, 빌린 말 대신 정확한 번역으로 공의 진짜 뜻을 되살렸어요. 번역가 한 사람이 한 문명이 생각을 담는 그릇까지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쿠마라지바가 남긴 가장 큰 자취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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