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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길에서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고 해 볼게요. 강아지를 좋아하는 친구는 "귀엽다!" 하면서 달려가 쓰다듬어요. 그런데 어릴 때 개한테 물린 적이 있는 친구는 같은 강아지를 보고도 그 자리에 얼어붙어요. 강아지는 똑같이 꼬리를 흔들고 있는데, 한 명은 웃고 한 명은 울 것 같죠.
여기서 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늘 "내가 강아지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강아지 위에 내 기억과 기분을 슬쩍 덧칠해서 보고 있다는 거예요. 무서운 기억이 있으면 강아지가 무섭게 보이고, 좋은 기억이 있으면 사랑스럽게 보여요. 같은 강아지인데 말이죠.
약 천 년 전 중국에 바로 이 "덧칠"을 알아챈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소옹이에요. 오늘은 소옹이 평생 매달린 한 가지 생각, 이물관물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소옹은 1011년부터 1077년까지, 중국 송나라 때 살았던 학자예요. 워낙 공부가 깊고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서, 나라에서 여러 번 "와서 벼슬을 하라"고 불렀어요. 그 시대에 벼슬은 요즘으로 치면 안정된 직장에 높은 자리까지 보장된 셈이라, 보통은 덥석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소옹은 그때마다 정중히 사양했어요.
대신 그는 뤄양이라는 도시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어요. 그 집에 "편안하고 즐거운 둥지"라는 뜻으로 안락와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큰 부자도 아니었고 밭을 갈며 검소하게 지냈지만, 스스로를 늘 즐거운 사람이라고 불렀어요. 손님이 찾아오면 차를 나누고, 한가하면 작은 수레를 끌고 동네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요.
그는 그 작은 집에서 평생 한 가지를 들여다봤어요. "세상은 도대체 어떤 규칙으로 굴러갈까?" 하는 물음이었죠. 특히 옛날부터 내려오던 점술책인 주역을 숫자와 그림으로 새롭게 풀어서, 우주가 마치 큰 시계처럼 일정한 박자로 돌아간다는 그림을 그렸어요. 이런 공부를 상수학이라고 불러요. 어렵게 들리지만, 그 뿌리에 있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해요.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나는 어떻게 봐야 할까?"

소옹은 무언가를 보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어요.
첫 번째는 "나로 사물을 보기"예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친구처럼, 내 기분과 욕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예요. 빨간 색안경을 쓰면 흰 종이도 빨갛게 보이죠. 마찬가지로 내가 화가 나 있으면 친구의 평범한 한마디도 시비처럼 들리고, 내가 배고프면 길거리 음식 냄새만 코에 들어와요. 이렇게 보면 같은 것도 내 기분에 따라 자꾸 다르게 보여요.
두 번째가 그 유명한 이물관물, "사물로 사물을 보기"예요. 내 색안경을 벗고, 사물을 그 자체의 모습 그대로 보는 거예요. 강아지를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네 발로 걷고 꼬리를 흔드는 작은 동물"로 보는 거죠. 친구의 한마디도 "나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그 친구가 정말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로 듣는 거고요.
소옹은 앞의 방식은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어둡고, 뒤의 방식은 마음이 공평해서 환하다고 했어요. 내가 끼어들수록 세상이 흐려지고, 내가 빠질수록 세상이 또렷해진다는 거예요.

이물관물을 그림 한 장으로 떠올리면 맑은 거울이 딱이에요. 거울은 예쁜 꽃이 오면 꽃을, 못생긴 돌이 오면 돌을, 자기 생각을 보태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춰요. 거울은 "나는 돌이 싫어" 하면서 돌을 안 비추거나 일그러뜨리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울에 때가 끼거나 색이 칠해져 있으면, 무엇이 와도 비뚤고 탁하게 보여요. 소옹이 말한 "나로 보기"가 바로 때 낀 거울인 셈이에요.
물론 색안경을 벗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아요. 우리 눈에는 색안경이 너무 익숙해서, 그게 안경인 줄도 모르고 "원래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거야" 하고 믿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소옹은 무언가를 판단하기 전에, "지금 이건 사물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내 기분이 칠한 색일까?" 하고 한 번 멈춰 묻는 연습을 중요하게 봤어요.

이게 왜 중요할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언가를 판단하면서 살아요. 친구가 던진 한마디, 처음 만난 사람의 첫인상, 뉴스에서 들은 낯선 소식. 예를 들어 새 학기에 전학 온 친구가 말이 없으면, 우리는 곧잘 "쟤는 차갑다"고 단정해 버려요. 하지만 그건 사실 그 친구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낯섦이 불편한 내 기분이 칠한 색일 때가 많아요. 그 친구는 그냥 부끄러움이 많은 것뿐일 수도 있죠. "내 기분"이라는 색안경을 잠깐만 내려놓아도, 상대가 진짜로 어떤지가 훨씬 잘 보여요. 화가 났을 때 곧장 답장하지 말고 한 박자 쉬라는 흔한 조언도, 알고 보면 소옹의 지혜와 같은 이야기예요. 흥분이 가라앉아야 거울이 다시 맑아지니까요.
놀라운 점은, 소옹이 이 단순해 보이는 태도를 그냥 마음가짐으로만 두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는 이걸 우주 전체를 읽는 큰 학문으로까지 키웠어요. 내 욕심을 빼고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면, 작은 강아지부터 별이 도는 하늘까지 같은 규칙으로 이어져 보인다고 생각했지요. 송나라 성리학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소옹은 이렇게 상상력의 폭을 하늘 끝까지 넓힌 사람으로 기억돼요.

소옹은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자기도 모르게 늘 자기 기분을 덧칠한다는 걸 알아챈 학자예요. 그가 말한 이물관물은 그 덧칠을 지우고, 사물을 그 자체의 모습대로 맑은 거울처럼 비추어 보라는 가르침이고요. 색안경을 잠깐 벗고 한 박자 쉬어 보는 것, 그 작은 습관 하나만으로도 강아지든 친구든 세상이든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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