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우리는 시간을 잘게 쪼개며 살아요. 하루는 24시간, 한 달은 30일쯤, 1년은 12달. 그 칸들 위에 약속을 적고 생일을 챙기죠. 시간을 토막으로 나눠 두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늠이 되니까요.
그런데 잠깐 상상해 볼까요. 우주 전체한테도 이런 달력이 한 장 있다면 어떨까요. 세상이 처음 열린 날을 1월 1일에 적고, 모든 게 사라지는 날을 마지막 칸에 적는 거예요. 지구의 일생을 달력 한 장에 통째로 담는 셈이죠.
놀랍게도 천 년 전 중국에 그 달력을 진짜로 만든 사람이 있었어요. 북송이라는 나라의 철학자 소옹이에요. 1011년부터 1077년까지 살았고, 큰 벼슬 한 번 안 하고 평생 책과 숫자만 들여다본 사람이었죠. 그가 그린 우주 달력의 이름이 바로 '원회운세'예요. 낯선 말이지만, 그냥 우주판 연월일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요.

원회운세는 어려운 마법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시간 단위를 그대로 크게 키운 거예요. 초가 모여 분이 되고, 분이 모여 시가 되듯이요.
우리 달력을 떠올려 볼까요. 1년은 12달, 한 달은 30일이죠. 소옹은 이 '12와 30이 번갈아 나오는 리듬'을 우주에다 그대로 옮겨 붙였어요.
이 '1원'이 바로 우주의 한살이, 그러니까 세상이 열렸다가 닫히는 딱 한 바퀴예요. 끝까지 곱해 보면 12만 9600년. 흔히 '12만 년'이라 부르는 그 숫자가 여기서 나와요. 우리한테 1년이 봄여름가을겨울 한 바퀴이듯, 우주한테는 12만 9600년이 봄에서 겨울까지 딱 한 바퀴인 셈이죠. 우리가 1년을 사는 동안, 우주는 한 호흡을 쉬는 거예요.

소옹은 이 12만 년짜리 하루를 다시 12토막으로 나눴어요. 옛사람들이 하루를 자시, 축시, 인시처럼 열두 시로 나누던 방식 그대로요. 우주에도 새벽이 있고 한낮이 있고 밤이 있다고 본 거죠.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가요. 첫 번째 토막에서 하늘이 열리고, 두 번째 토막에서 땅이 굳고, 세 번째 토막에 이르러 비로소 사람과 만물이 태어나요. 마치 깜깜한 새벽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면서 거리에 사람이 하나둘 나오는 풍경 같죠. 그리고 소옹은 자기가 살던 시대를 일곱 번째 토막, 그러니까 한낮에 해당하는 '오회'쯤으로 봤어요. 우주의 정오를 막 지난 때라는 거예요.
정오를 지났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앞으로 토막이 더 넘어가면 세상은 천천히 저녁으로 접어들고, 맨 마지막 토막에 이르면 모든 게 다시 처음의 고요함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또 새로운 1원이 첫 새벽부터 시작되고요. 끝이 곧 새 시작인, 거대한 벽시계 같은 우주인 거죠.

여기서 한 가지가 궁금해져요. 왜 굳이 이렇게 숫자를 쌓아 우주를 그렸을까요.
소옹의 공부는 '상수학'이라고 불러요. 세상의 이치를 숫자와 그림의 규칙으로 읽어 내려는 공부예요. 별자리를 보고 계절을 읽듯, 그는 숫자의 짜임을 보고 세상이 돌아가는 틀을 읽으려 했죠. 특히 점치는 책으로 알려진 '주역'을 깊이 파고들어, 거기 담긴 숫자의 규칙으로 우주라는 거대한 시계의 톱니바퀴를 맞춰 보려 한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12만 9600년이라는 숫자가 과학으로 증명된 건 아니에요. 실제 지구의 나이는 그보다 훨씬 길죠. 하지만 소옹이 해낸 일은 따로 있어요. 세상에는 사람의 도리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도리가 펼쳐지는 아득히 큰 시간의 무대가 있다고 상상하게 만든 거예요. 같은 시대의 다른 성리학자들이 마음과 도덕 같은 가까운 문제를 파고들 때, 소옹은 그 생각의 무대를 우주만큼 넓혀 놓은 사람이었죠.

소옹의 원회운세는 우리가 쓰는 연월일시를 우주 크기로 부풀린 달력이에요. 30년과 360년과 1만 800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12만 9600년, 곧 세상이 한 번 열렸다 닫히는 한 바퀴가 되죠. 그는 우리가 지금 그 한 바퀴의 한낮을 막 지나는 중이라고 봤고요. 숫자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따지기 전에, 시간을 이만큼 크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천 년 전 한 철학자가 우리에게 건넨 가장 큰 선물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