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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태극기를 떠올려 보세요. 한가운데 빨강과 파랑이 도는 동그라미가 있고, 네 귀퉁이에 작대기를 쌓아 놓은 듯한 까만 무늬가 하나씩 있어요. 막대 세 개가 끊기지 않고 쭉 그어진 것, 가운데가 뚝뚝 끊긴 것. 이게 바로 '팔괘' 중 네 개예요. 팔괘는 이런 막대 그림 여덟 개를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고요.
이 여덟 개의 그림을 어떤 순서로 늘어놓을지를 평생 파고든 사람이 있어요. 천 년쯤 전 중국 송나라의 학자, 소옹이에요. 낙양이라는 도시에서 1011년부터 1077년까지 예순여섯 해를 살았고, 벼슬도 마다하고 가난하게 지냈지만 동네 사람 누구나 존경했다고 전해져요. 그가 남긴 생각이 바로 '선천역'과 '복희팔괘'예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알고 보면 켜고 끄는 스위치 이야기랍니다.

팔괘를 이루는 재료는 딱 두 가지예요. 끊기지 않은 긴 막대 하나, 그리고 가운데가 끊긴 막대 하나. 앞의 것을 '양', 뒤의 것을 '음'이라고 불러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전등 스위치를 떠올리면 돼요. 불이 켜진 상태가 양, 꺼진 상태가 음이에요. 동전이라면 앞면이 양, 뒷면이 음이고요. 옛사람들은 세상 모든 게 이 둘 중 하나로 시작한다고 봤어요. 밝음과 어둠, 낮과 밤, 따뜻함과 차가움처럼요. 딱 두 가지 상태, 이게 모든 것의 출발점이에요.

이제 이 켜짐과 꺼짐을 세 번 쌓아 볼게요. 맨 아래 한 칸, 가운데 한 칸, 맨 위 한 칸. 각 칸마다 켜짐이나 꺼짐, 둘 중 하나가 들어가요.
경우의 수를 세어 볼까요? 첫 칸이 두 가지, 둘째 칸이 두 가지, 셋째 칸이 두 가지. 둘 곱하기 둘 곱하기 둘은 여덟이에요. 그래서 만들 수 있는 그림이 정확히 여덟 개, 바로 팔괘예요. 동전을 세 번 던졌을 때 나오는 모든 결과를 적어 보는 것과 똑같아요. 앞앞앞, 앞앞뒤, 앞뒤앞 하고 세어 보면 어김없이 여덟 가지가 나오죠. 하늘, 땅, 물, 불, 바람, 우레, 산, 못. 옛사람들은 이 여덟 칸에 세상을 이루는 큰 것들을 하나씩 짝지어 두었어요.

소옹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건 이 여덟 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었어요. 그는 세상이 하나에서 시작한다고 봤어요. 이 하나가 둘로 갈라져 음과 양이 되고, 그 둘이 다시 각각 둘로 갈라져 넷이 되고, 넷이 또 갈라져 여덟이 돼요. 하나, 둘, 넷, 여덟. 갈라질 때마다 정확히 두 배예요.
세포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분열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또는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는 것과도 같아요. 소옹은 이렇게 두 배씩 불어나는 규칙에 '한 번에 갑절로 더하는 법'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세상이 마치 정해진 계산처럼 차곡차곡 펼쳐진다고 본 거죠. 이렇게 계속 갈라 가면 여덟에서 멈추지 않고 예순네 개까지 늘어나요.

여기서 '선천'이라는 말이 나와요. 풀어 보면 '하늘보다 먼저'라는 뜻이에요. 무슨 소리일까요?
소옹은 팔괘를 늘어놓는 순서가 두 가지라고 봤어요. 하나는 방금 본 것처럼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갈라지는 순서예요. 세상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있던 수학 같은 질서라서 '선천'이라 불렀고, 아주 옛 전설 속 인물인 복희가 그렸다고 전해져 '복희팔괘'라고 해요. 말하자면 물건을 만들기 전의 설계도 같은 거예요.
다른 하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고, 물과 불이 실제로 쓰이는 순서예요. 이건 세상이 굴러가는 모습에 맞춘 거라 '후천'이라 불러요. 설계도가 아니라 사용설명서인 셈이죠. 소옹은 이 둘 중에서, 눈에 보이는 쓰임 이전에 숨어 있는 설계도 쪽이 더 근본이라고 봤어요.

그러니까 소옹이 한 일은 점치는 막대 그림에서 '숨은 계산'을 찾아낸 거예요. 그는 이 두 배씩 갈라지는 규칙으로 세상의 흐름까지 숫자로 헤아릴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생각을 '황극경세서'라는 책에 담았어요. 우주의 긴 시간을 큰 숫자로 쪼개어 세어 보려 한 거죠.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에요. 소옹이 죽고 육백 년도 더 지나서, 서양의 학자 라이프니츠가 0과 1만으로 수를 세는 '이진법'을 만들었어요.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바탕이 된 그 방식이요. 그런데 누군가 소옹이 정리한 복희팔괘의 순서를 보여 주자 라이프니츠는 깜짝 놀랐어요. 끊긴 막대를 0, 이어진 막대를 1로 보면, 그 순서가 자기 이진법으로 0, 1, 2, 3을 세는 것과 똑같았거든요. 동양의 옛 그림과 서양의 새 수학이 같은 곳을 가리킨 셈이에요.

소옹의 선천역과 복희팔괘는, 결국 켜짐과 꺼짐 두 가지에서 시작해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갈라지며 세상이 펼쳐진다는 이야기예요. 어려운 점술처럼 보이던 그림 속에서 '두 배씩 자라는 질서'를 읽어 낸 것이 바로 소옹의 눈이었고요. 오늘 태극기 귀퉁이의 막대 그림을 다시 본다면, 그 안에 천 년 전 한 학자가 발견한 단순한 계산이 숨어 있다는 걸 떠올려 보세요. 세상은 의외로 켜짐과 꺼짐, 그 작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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