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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여러분, 강가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본 적 있나요? 물은 쉬지 않고 아래로 흘러가죠. 선풍기 날개는 빙빙 돌고, 시계 초침은 째깍째깍 움직이고요. 세상 모든 게 움직인다는 건 너무 당연해서 굳이 따져 볼 생각도 안 들어요.
그런데 약 1600년 전 중국에, 강물을 보면서 "저 강물은 사실 흐르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거센 바람이 산을 무너뜨려도 그 바람은 늘 고요하고, 강물이 콸콸 쏟아져도 흐르지 않는다고요. 처음 들으면 그냥 말장난 같죠. 이 사람 이름이 승조예요. 오늘은 승조가 왜 이런 이상한 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게 왜 헛소리가 아닌지 같이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승조는 384년에 태어나 414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계산해 보면 서른한 살, 지금으로 치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죽은 거예요. 그렇게 짧게 살았는데도 중국 불교 역사에서 손꼽히는 사상가로 남았어요.
원래 승조는 집이 가난해서 남의 책을 베껴 써 주는 일을 하던 소년이었어요. 그러다 노자와 장자 같은 옛 철학책에 푹 빠졌죠. 그런데 어느 날 불교 경전 하나를 읽고 마음을 완전히 바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어요.
그 무렵 장안이라는 도시에 구마라집이라는 위대한 번역가가 와 있었어요. 인도에서 온 불교 사상을 중국말로 옮기던 사람이죠. 승조는 그 밑에서 공부하며, 인도의 '중관'이라는 어려운 사상을 중국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풀어내는 일을 했어요. '공', 그러니까 '모든 것은 고정된 알맹이가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정확하게 전할까가 그의 평생 숙제였죠.

이제 승조의 진짜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그는 '사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어요. 핵심은 딱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어요. "지난 것은 지금으로 오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해요. 어제의 내가 움직여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요. 마치 어제의 내가 시간을 타고 슝 날아와 오늘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승조는 고개를 저어요. 어제의 나는 어제에 그대로 있어요. 오늘로 건너온 게 아니에요. 오늘의 나는 오늘에 있고요. 사진첩을 떠올려 보세요. 다섯 살 때 찍은 사진 속 꼬마는 지금도 그 사진 안에 그대로 있어요. 그 꼬마가 사진 밖으로 걸어 나와 지금의 여러분이 된 게 아니죠. 다섯 살은 다섯 살 자리에, 열두 살은 열두 살 자리에 가만히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옛날의 것이 지금 보이지 않으니까 "사라졌다, 흘러갔다"고 말해요. 하지만 승조는 거꾸로 봐요. 옛날 것이 지금 없는 건, 그게 옛날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에요. 어디로 간 게 아니라, 제자리에 있는 거죠.

승조는 이걸 보여 주려고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줘요. 어떤 사람이 젊을 때 집을 떠나,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어요. 이웃들이 반가워하며 "아니, 옛날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네!" 하고 말했죠.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답해요. "나는 옛날 그 사람을 닮았을 뿐, 옛날 그 사람은 아닙니다." 젊은 그가 늙은 그로 슬그머니 변해서 여기까지 걸어온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젊은 그는 젊은 그 시절에 그대로 있고, 지금 돌아온 노인은 또 다른 사람인 셈이죠. 우리가 "한 사람이 늙었다"고 뭉뚱그려 말할 때, 승조는 그 안을 한 칸 한 칸 떼어 보라고 권하는 거예요.

조금 더 와닿게 영화 필름으로 설명해 볼게요. 옛날 영화는 1초에 스물네 장씩, 사진 같은 그림을 빠르게 넘겨서 만들었어요. 화면 속 인물은 분명 뛰고 춤추지만, 필름 한 칸 한 칸을 떼어 보면 전부 멈춰 있는 그림이에요.
움직임처럼 보이는 건 멈춘 장면들이 줄지어 있을 뿐이에요. 1번 칸의 그림이 2번 칸으로 옮겨 간 게 아니라, 1번은 1번 자리에, 2번은 2번 자리에 따로따로 박혀 있죠. 승조가 본 세상도 이랬어요. 매 순간은 그 순간 안에 완전히 멈춰 있고, 한 순간이 다음 순간으로 이사 가지 않아요.
이게 그냥 말장난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어요. 만약 변하지 않는 어떤 알맹이가 시간을 타고 쭉 이어진다면, 그 알맹이가 '움직였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승조가 배운 '공'의 생각에서는, 그렇게 시간을 건너 계속 이어지는 단단한 알맹이가 없어요. 순간마다 새롭게 있을 뿐이에요. 옮겨 갈 알맹이가 없으니, 엄밀히 따지면 '움직였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거예요.

승조의 말은 "그러니 아무것도 안 변하니 가만있어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예요. 우리가 너무 쉽게 "시간이 흘러갔다", "다 사라졌다"고 말할 때, 정말 그런지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죠.
지나간 일이 아쉬워 붙잡고 싶을 때, 승조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요. 다만 지금이 그 자리가 아닐 뿐이라고요. 움직임과 멈춤, 변함과 변하지 않음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갈라놓고 있었다는 걸 그는 콕 집어 보여 줬어요.
이렇게 인도에서 건너온 어려운 불교 사상을, 강물과 바람 같은 익숙한 장면에 빗대 중국말로 풀어낸 사람이 바로 승조예요. 그가 던진 질문은 160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신선해요. 흘러가는 저 강물은, 정말 흐르고 있는 걸까요?

승조는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사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짧은 글 하나로 깊은 질문을 남겼어요. 그의 핵심은 "지난 것은 지금으로 오지 않는다"였죠. 어제의 나는 어제 자리에, 오늘의 나는 오늘 자리에 머물 뿐, 한 순간이 다음 순간으로 건너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진첩 속 꼬마처럼, 영화 필름 한 칸처럼요. 세상이 움직인다는 너무 당연한 생각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시 물어볼 게 남아 있다는 것, 그게 승조가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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