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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요리책 한 권을 받았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그 책은 '공장이 가득한 도시'를 기준으로 쓰여 있어요. 재료 칸에는 온통 공장 노동자 이야기뿐이에요.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100여 년 전에 쓴 혁명의 요리책이 딱 그랬어요. 영국이나 독일처럼 굴뚝 연기가 자욱한 나라를 떠올리며, 도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세상을 바꾼다는 그림이었죠.
그런데 마오쩌둥이 살던 1900년대 초의 중국은 전혀 달랐어요. 100명 중 80명 넘게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나라였거든요. 공장도, 공장 노동자도 한 줌밖에 없었어요. 요리책 재료 칸에 적힌 주재료가, 정작 시장에 거의 없는 셈이었죠.

마오쩌둥은 이 나라의 형편을 두 단어로 짚었어요. '반식민지'와 '반봉건'이에요. 어려운 말 같지만 장면으로 보면 쉬워요.
바깥에서는 힘센 외국 세력이 항구와 큰 도시를 반쯤 쥐고 흔들었어요. 식당으로 치면 가게 절반을 남이 차지한 셈이죠. 안에서는 시골 땅 대부분을 소수의 지주가 쥐고, 농민들은 그 땅을 빌려 일하며 수확의 절반 넘게 바쳐야 했어요. 낡은 신분 질서가 그대로 남은 거예요.
유럽에서는 돈을 모은 중산층, 그러니까 자본가들이 앞장서서 옛 질서를 무너뜨렸어요. 그런데 중국엔 그렇게 앞장설 만큼 든든한 중산층이 자라지 못했어요. 주방을 이끌 주방장이 비어 있던 거죠.

그래서 마오쩌둥은 발상을 바꿨어요. 시장에 거의 없는 노동자만 기다릴 게 아니라, 가장 흔하고 숫자 많은 재료를 주재료로 쓰자고요. 바로 농민이었어요.
그는 일찍이 1927년에 고향 후난 지방의 농민 운동을 직접 살펴보고 보고서를 썼어요. 거기서 농민들의 힘이 '폭풍처럼 거세다'고 적었죠. 마르크스의 책에서는 조연이던 농민을, 중국에서는 혁명의 주력으로 끌어올린 거예요.
다만 농민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적은 수의 노동자, 도시의 소상인, 심지어 외국 세력에 맞서던 중소 자본가까지 한 식탁에 불러 모았어요. 여러 재료를 함께 넣어 한 솥에 끓이는 그림이었죠.

여기서 '신민주주의 혁명론'이라는 이름이 나와요. '신'은 새롭다는 뜻이에요. 무엇이 새로웠을까요.
옛 민주주의는 자본가들이 주인공이 되어 만드는 사회였어요. 마오쩌둥이 말한 새 민주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여러 계급이 함께 손잡는 단계였죠. 같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써도, 식탁에 앉는 손님이 달랐던 거예요.
또 하나, 그는 혁명을 두 걸음으로 나눴어요. 단숨에 사회주의로 건너뛰지 않고, 먼저 이 여러 계급이 함께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나라를 세운 다음, 시간을 두고 사회주의로 넘어간다는 순서였어요. 라면을 끓일 때 물부터 끓이고 면을 넣듯, 단계를 지킨 셈이죠.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해요. 남의 요리책을 그대로 베끼지 않고, 내 부엌에 있는 재료에 맞게 고쳐 썼다는 점이에요.
마오쩌둥은 유럽의 공장에서 태어난 사상을, 논과 밭이 펼쳐진 농업 국가에 맞게 다시 짠 정치사상가였어요. 그리고 이 구상은 종이 위 이론으로만 끝나지 않았어요. 오랜 내전 끝에 1949년, 그가 이끄는 세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는 바탕이 되었으니까요.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 혁명론은, 노동자가 주인공인 마르크스의 요리법을 농민이 가득한 중국 부엌에 맞게 고쳐 쓴 이야기예요. 농민을 혁명의 주력으로 세우고, 여러 계급을 한 식탁에 불러 '새로운 민주주의' 단계를 먼저 거친 뒤 사회주의로 가자고 했죠. 빌려 온 생각도 내 형편에 맞게 다시 끓이면 전혀 다른 한 그릇이 된다는 것, 그 점을 기억하면 이 사상의 핵심을 손에 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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