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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밤에 방 불을 켜 보면 재미있는 걸 발견해요. 천장의 등은 눈이 부실 만큼 환하고, 책상 위 스탠드는 그보다 부드럽게 퍼지고, 구석의 작은 무드등은 겨우 형체만 비추죠. 같은 빛인데 밝기가 저마다 달라요.
그런데 가만 보면, 무드등의 희미한 빛도 천장의 쨍한 빛도 결국 '같은 것'이에요. 빛이라는 점은 똑같고, 다른 건 오직 밝기뿐이죠. 종류가 다른 게 아니라 정도가 다른 거예요.
약 850년 전, 한 철학자는 이 평범한 장면에서 세상 전체를 풀어낼 열쇠를 봤어요. 그 사람의 이름은 수흐라와르디예요.

수흐라와르디는 지금의 이란 땅에서 1154년에 태어나 1191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서른일곱 해 남짓, 요즘으로 치면 한창 일할 나이에 짧게 살다 갔죠. 시리아의 도시 알레포에서 젊은 나이에 처형을 당했고, 그래서 뒷사람들은 그를 '처형당한 수흐라와르디'라고 부르기도 해요.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생각은 이슬람 철학의 한 갈래를 통째로 새로 열었어요.
그가 세운 철학에는 '조명철학', 곧 빛으로 밝힌다는 이름이 붙었어요. 그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질문 하나를 평생 붙잡았어요. "무언가가 '있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우리는 매일 '있다, 없다'를 말하지만, 막상 '있다는 게 정확히 뭐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잖아요. 수흐라와르디는 바로 그 막막한 질문에 빛으로 답하려 했어요.

수흐라와르디의 답은 뜻밖이었어요. 무언가가 진짜로 '있다'는 건, 그것이 '빛난다'는 뜻이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빛에는 묘한 성질이 있어요. 우리는 다른 물건을 빛 '덕분에' 봐요. 깜깜한 방에선 책상도 컵도 안 보이지만, 불을 켜면 비로소 드러나죠. 그런데 빛 자체는 무엇 덕분에 보는 게 아니에요. 빛은 스스로 드러나요. 다른 걸 보여 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환히 내보이죠.
한 가지 더. 빛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워요. 태어나서 한 번도 빛을 못 본 사람에게 "빛이 뭐냐"고 물으면, 더 쉬운 말로 풀어 줄 수가 없어요. 빛은 그 자체로 너무 분명해서, 더 쪼갤 수 없는 출발점이거든요. 수흐라와르디는 '존재'도 꼭 그렇다고 봤어요. 스스로를 환히 드러내는 것일수록 더 또렷하게 '있는' 것이고, 반대로 어둠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니 '없음'에 가깝다고요. 그에게 존재와 밝음은 거의 같은 말이었어요.

이제 처음의 방을 다시 떠올려 볼까요. 등마다 밝기가 달랐죠. 수흐라와르디는 세상 만물도 그렇게 봤어요. 모두가 똑같이 '빛'이지만, 그 밝기에는 위아래, 곧 위계가 있다는 거예요.
가장 밝은 빛은 더 환하고 더 또렷하게 존재해요. 약한 빛은 희미하게 존재하고요. 마치 밝기 조절 스위치를 천천히 돌리듯, 세상은 가장 환한 데서부터 가장 어두운 데까지 죽 이어진 하나의 띠가 돼요. 돌멩이나 흙덩이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것들은 그 띠의 맨 아래, 빛을 받아야만 겨우 보이는 쪽에 놓이고요. 위로 올라갈수록 더 밝고 더 살아 있는 빛이 자리해요.

밝기에 위아래가 있다면, 맨 꼭대기엔 무엇이 있을까요. 수흐라와르디는 그 자리에 '빛 중의 빛'을 두었어요. 더는 밝을 수 없을 만큼 밝아서, 다른 모든 빛이 거기서 흘러나오는 근원이에요.
햇빛과 달빛을 떠올리면 쉬워요. 달은 스스로 빛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해의 빛을 받아 되비추는 거잖아요. 수흐라와르디가 본 세상도 비슷해요. 아래쪽 빛들은 다 위쪽에서 빛을 빌려 와요. 그 빌림의 사슬을 자꾸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에게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환한 단 하나의 근원에 닿아요. 그게 바로 '빛 중의 빛'이고, 그의 철학에서 가장 높은 자리예요.

이게 왜 새로웠을까요. 수흐라와르디 이전의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 칸으로 나눠 정리하길 좋아했어요. 이건 이런 종류, 저건 저런 종류, 하고 상자에 담듯 분류했죠.
수흐라와르디는 그 상자들을 치우고, 대신 밝기 조절 스위치 하나를 그 자리에 놓았어요. 세상 모든 것이 결국 같은 '빛'이고 다른 건 오직 밝기뿐이라면, 복잡한 칸 나누기 없이 하나의 잣대로 만물을 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어려운 세상을 더 단순한 그림 하나로 묶어 낸 셈이에요.
재미있는 건, 그가 '안다'는 것까지 빛으로 봤다는 점이에요. 우리도 무언가를 문득 이해한 순간 "아, 머릿속이 환해졌다"고 하잖아요. 수흐라와르디에게 깨달음은 그냥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빛이 켜지는 일이었어요. 안다는 것도, 있다는 것도, 그에게는 결국 밝아지는 일이었거든요.

수흐라와르디는 '있다'는 어려운 말을 '빛난다'는 익숙한 장면으로 바꿔 놓은 사람이에요. 스스로를 드러내는 빛일수록 더 분명히 존재하고, 그 밝기에는 위아래가 있으며, 맨 꼭대기엔 모든 빛의 근원인 '빛 중의 빛'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만 손에 쥐면, 다음에 방 안의 조명을 켤 때 800여 년 전 한 철학자가 거기서 본 세상의 그림이 함께 떠오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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