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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여러분도 이런 적 있을 거예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노을을 봤거나, 꿈에서 너무 생생한 무언가를 겪었는데, 친구한테 말하려고 입을 열면 "그게... 그러니까... 말로는 설명이 안 돼" 하고 멈칫하게 되는 순간요. 분명 마음속에는 또렷한데, 입 밖으로 꺼내면 한참 모자란 느낌이 들죠.
지금으로부터 800년도 더 전에, 바로 이 문제를 평생 붙들고 고민한 철학자가 있었어요. 이름은 이븐 투파일이에요. 오늘은 이 사람이 "말로 다 못 하는 깊은 체험을 어떻게 남에게 전할까"라는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따라가 볼게요.

이븐 투파일은 지금의 스페인 남쪽, 그러니까 당시 이슬람 문화가 활짝 꽃피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살았어요. 1105년쯤 태어나 1185년쯤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와는 800년 넘게 떨어진 사람이에요. 그는 병을 고치는 의사이기도 했고, 왕을 곁에서 모시는 학자이기도 했어요.
그가 평생 궁금해한 건 이거였어요. "사람은 책도 선생님도 없이, 오직 혼자 힘으로 세상의 가장 깊은 진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어려운 질문 하나가 따라붙었어요. "설령 닿는다 해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고 투파일은 딱딱한 논문 대신 한 편의 '이야기'를 썼어요. 제목은 '하이 이븐 야크잔'. 우리말로 풀면 '깨어 있는 이의 아들, 살아 있는 자' 정도예요.
주인공 하이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섬에서 태어나, 암사슴 한 마리의 젖을 먹고 자라요. 글자도 모르고, 가르쳐 줄 어른도 하나 없어요. 그런데 하이는 포기하지 않아요. 불은 왜 뜨거운지, 동물의 몸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밤하늘의 별은 왜 도는지, 하나하나 직접 보고 만지고 따져 봐요.
그렇게 혼자서 생각의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요. 돌멩이와 풀에서 시작해서,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 저 높은 별,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걸 있게 한 어떤 큰 존재에까지 다다라요. 선생님도 책도 없이, 오직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해서 거기까지 간 거예요. 무려 일곱 단계에 걸쳐, 일곱 살씩 천천히 자라면서요.

그런데 하이가 다다른 맨 꼭대기 자리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져요. 가장 높은 진리를 마주한 순간, 하이는 더 이상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게 돼요. 너무 크고 너무 깊어서,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자꾸 어긋나는 거예요. 이렇게 말로는 도무지 담기지 않는 깊은 깨달음의 순간을 흔히 '신비 체험'이라고 불러요.
투파일은 이 체험을 '맛보는 것'에 빗댔어요. 꿀이 얼마나 단지 백 마디로 설명해도, 직접 한 숟갈 떠먹어 본 사람만 진짜로 알잖아요. 먹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멋진 말도 그림자에 불과하고요. 가장 깊은 깨달음도 꼭 그렇다는 거예요. 겪은 사람만 알고, 말로는 끝내 다 옮기지 못하는 무언가죠.

여기서 투파일의 진짜 솜씨가 나와요. 말로 다 못 하는 걸 그래도 어떻게든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직접 설명하기'를 슬쩍 내려놓고 '이야기로 보여 주기'를 골랐어요.
"진리는 이런 것이다"라고 딱 잘라 적는 대신, 한 아이가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 거예요. 독자는 하이 옆에서 같이 한 걸음씩 걷는 셈이에요. 그러다 보면 말로는 못 박는 그 느낌을, 이야기의 결을 따라 어렴풋이 짐작하게 돼요. 정답을 손에 쥐여 주는 게 아니라, 같은 길을 걷게 해서 비슷한 마음 앞까지 데려다 놓는 거죠. 이게 바로 말로 안 되는 것을 말로 빚어내려는 투파일의 방법, 곧 '신비 체험의 언어화'예요.

이야기 후반에는 이 고민이 더 또렷해지는 장면이 나와요. 어느 날 옆 섬에서 압살이라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 하이의 섬으로 건너와요. 둘은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 압살은 하이에게 말을 가르쳐 줘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이가 혼자 깨친 진리와 압살이 믿어 온 가르침의 속살이 똑같았어요.
신이 난 둘은 압살의 고향 섬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그 깊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려 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답답해해요. 결국 하이는 깨달아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벌거벗은 진리를 곧장 들이미는 것보다, 이야기와 비유에 담아 건네는 편이 낫다는 걸요. 가장 깊은 것일수록 그냥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투파일은 이렇게 한 번 더 짚어 준 거예요.

이 작은 이야기는 섬을 훌쩍 넘어 멀리까지 퍼졌어요. 수백 년 뒤 유럽 말로도 옮겨졌고, 혼자 섬에 떨어진 사람의 이야기인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작품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하지만 더 오래 남은 건 투파일의 고민 그 자체예요. 정말 소중한 경험일수록 말로 옮기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긴 설명보다 이야기 한 편이 더 멀리 가닿는다는 것이요. 노래나 영화가 백 마디 설명보다 마음을 더 잘 흔드는 이유와도 닮았어요.

이븐 투파일은 800년 전, 사람이 혼자 힘으로 진리에 닿을 수 있는지를 무인도 아이의 이야기로 풀어낸 철학자예요. 그가 붙든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그렇게 닿은 가장 깊은 체험은 정작 말로 다 옮길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곧장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같은 길을 함께 걷게 하는 이야기를 택했어요. 말로 안 되는 것을 이야기로 빚어 전하려 한 이 시도가 바로 '신비 체험의 언어화'예요. 무언가 너무 벅차 말문이 막힐 때, 그게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깊음의 표시일 수 있다는 걸, 투파일은 800년 전 이야기 한 편으로 슬며시 알려 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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